"메주가 그냥 메주지, 예술은…."

한 덩어리의 메주를 얻기 위해 봄 부터 땅을 파 뒤집었습니다

등록 2005.11.30 15:10수정 2005.11.3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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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메주를 쑤었습니다. ⓒ 송성영

"뭔 메주를 멫 날 멫 칠을 쑨댜."

가마솥에 가득 삶은 콩을 꺼내 메주 덩어리를 만들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외손주 희준이를 데리고 마실 왔습니다.

"사람덜이 팔라구 해서유."

나흘째 쑤는 메주였습니다. 첫날은 청국장을 쑤어 사흘 낮밤을 사랑방 아랫묵에 묻어 뒀다가 난생 처음으로 판매를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효소나 솔잎차 등을 담궈 돈으로 바꿔 보겠다고 벼르고 있다가 단 한 차례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청국장을 20만원 어치나 팔았던 것입니다. 또 메주를 쑤어 된장까지 판매할 작정입니다.

"인효 아부지 인저 할아버지가 다 됐네유, 수염두 허여니…."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농사라고는 죽지 않을 만큼 짓고 온종일 아낙네처럼 쪼그려 앉아 메주 몇 덩어리 팔아보겠다고 주물럭 거리고 있으니 옆집 할머니 보기에는 제가 한심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희준아 아저씨한티 인저 할아버지라구 혀라 잉."

희준이 녀석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몇 번 데굴데굴 하더니 수줍게 '히' 웃으며 큰소리로 부릅니다.

"할아부지!"

부지런히 메주 덩어리를 만들고 있던 아내가 희준이에게 삶은 콩 한줌을 건네주며 한마디 거듭니다.

"이거 줄테니까 나한테두 할머니라구 해라."
"헤, 할머니!"

희준이 녀석은 생판 젊디젊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삶아 놓은 콩 알을 낼름낼름 잘도 받아 먹습니다. 입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더, 더 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맛있냐?"
"예."
"고만 먹어 이눔아 그러다 설사 할라."

"맛있으니께유, 지금 먹는 메주콩이 맛있는 겨유, 봄 메주는 딸네미 먹이고 가을 메주는 며느리 준다잖유."
"왜유?"
"가을 메주는 맛있어서 자꾸만 입에 댕기니께 잘 먹히잖유."

"맛있는 걸 딸보다 며느릴 준다구유?"
"며느리 실컷 먹구서 설사하라구 그러는 거쥬, 다 옛 말유, 지금은 누가 그런데유, 며느리두 딸네미나 마찬가진디."

"그럼 희준이 먹여서는 안돼겠네유."
"괜찮유, 쪼끔 먹는디."

사내자식이 메주나 만들고 있다고 한심하게 바라보거나 말거나 나는 옆집 할머니에게 잘 생긴 메주를 들어 보이며 우쭐거렸습니다.

"어뜌? 예술이지유?"
"메주가 그냥 메주지, 예술은…."

예술 옹호론자들은 예술이 다 얼어 죽었다고 하겠지만 나는 메주 만드는 것도 예술 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예술이 뭐 따로 있겠습니까? 어떤 예술가는 가만히 앉아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를 울린다지만 나는 잔머리 굴리지 않고 한 덩어리 메주를 만들기 위해 봄부터 미련 곰탱이처럼 땅을 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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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 부터 콩을 심기 위해 부지런히 삽질하여 맨땅을 헤집어 놓습니다. ⓒ 송성영

메주 한 덩어리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줄 아십니까? 도자기 만들기 저리 가랍니다. 도자기에 도예가의 예술혼이 깃들듯 메주에는 농민들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매끈한 도자기가 나오기까지 바람과 불과 흙을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못생긴 메주 한 덩어리가 나오기 까지 역시 흙과 바람과 불을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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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장마가 오락가락할 무렵 콩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 송성영

먼저 흙을 만납니다. 콩 알은 흙을 만나 레이더만큼이나 정확한 멧비둘기들의 눈을 피해 싹을 틔워야 하고 땡볕에서 풀을 뽑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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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에 나가 풀을 뽑고 튼실한 콩 수확을 위해 웃자라지 않도록 순을 질러 주었습니다. ⓒ 송성영

풀을 뽑고 나면 온갖 병충해를 피하기 위해 효소를 뿌려줘야 하고 튼실한 콩을 수확하기 위해 웃자라지 않도록 순을 잡아 줘야 합니다. 콩이 여물기 시작하면 또다시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노루며 토끼며 꿩들의 습격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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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콩깍지가 터져 나오기 전에 수확해 마당에 널어 말려 타작을 했습니다. ⓒ 송성영

다 여물어 콩깍지가 벌어지기 전에 수확을 하여 적당히 말린 다음 콩 타작을 합니다. 콩 타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키질 등을 통해 일일이 죽정이 콩이나 잡티를 속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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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타작한 콩에 섞여 있는 잡티나 죽정이 콩알들을 일일이 골라냈습니다. ⓒ 송성영

이 콩으로 메주를 쑤게 되는데 메주 쑤는 과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먼저 불을 만납니다. 아침 일찍 가마솥에 콩을 넣고 반나절 넘게 아궁이 불을 지펴 푹 삶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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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가득 콩을 넣고 아궁이 불 앞에 쪼그려 앉아 불조절을 해가며 반나절 동안 푹푹 삶아댔습니다. ⓒ 송성영

콩 삶을 때는 내내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가마솥이 철철 끓어 넘치면 장작불을 약하게 조절하고 불이 약하다 싶으면 찔끔찔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적당히 열을 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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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 뭉게 잘 삶아진 콩을 자루에 넣고 깨끗한 장화발로 밟기도 하고 절구로 찧기도 했습니다. ⓒ 송성영

뭉게뭉게 잘 삶아진 콩은 자루에 넣고 깨끗한 장화를 신고 밟거나 절구로 찧어 틀에 넣고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냅니다. 나름대로 잘 생기게 만든 메주는 짚으로 엮어 처마에 매달아 놓고 몇날 며칠을 단단하게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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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콩을 심은 지 반 년 만에 잘 생긴 메주 덩어리가 탄생했습니다. ⓒ 송성영

매달아 놓은 메주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면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씌워 거무스름한 곰팡이가 나오도록 띄웁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잘 띄운 메주가 탄생하게 되고 그걸로 장을 담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일일이 헤어려 보지 않았지만 메주 한덩어리가 나오기 까지 아마 스무 차례 이상 손이 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메주 한 덩어리에 얼마인줄 아십니까?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보통 두 말 정도의 콩을 수확하는데, 두 말(한 말에 8킬로그램)의 콩을 메주로 만들면 대략 열 덩어리 정도가 나옵니다. 한 덩어리에 보통 1만 5천원 정도 하니까, 15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게 되는 셈이지요. 메주를 만들지 않고 그냥 콩으로 내다팔자면 도시 근로자 하루 일당도 안나옵니다.

1년 가까이 공을 들여 얻은 수익이 15만원이면, 열 다섯 차례에 걸쳐 손이 갔다고 쳐도 하루 일당 1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단일 품목에 소규모 농사이긴 하지만 참으로 한심스럽지 않습니까? 이제 겨우 농사를 시작한, 나 같은 반거충이야 반쯤은 도시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지만 온전히 땅을 의지해 살아가는 농민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이유가 다 있는 것입니다.

심심풀이 피자 한판 값에 불과한 메주 한 덩어리와 도자기와 같은 예술품들과 비교한다면 과연 얼마간의 차이가 있을까요? 어떻게 천년의 예술품과 비교할 수가 있냐구요? 예술 옹호론자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얼마든지 비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게 도자기란 차 잎 우려 내 마시는 다기나 밥그릇, 국그릇, 간장 종지 등등 뭔가를 먹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도자기가 단지 먹을거리를 담아 먹는 도구가 아닌, 가슴으로 파고드는 어떤 느낌에 그 진가가 있다면 메주에게는 맛을 내는 진가가 있습니다. 도자기가 천년의 느낌을 지녔다면 메주 역시 천년의 맛을 지녔으니까요.

도자기는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예술품이라고 합니다.메주 역시 마찬가지로 영원합니다. 메주는 사람에게 한 생명 다 할 때가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온갖 질병 예방효과를 발휘해 가며 그 피가 되고 살이 된 것은 유전자로 형성돼 자손 대대로 전해지잖습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이 만든 예술품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예술가의 진면목이라고들 합니다. 콩이 싹을 틔워 메주가 되고 된장찌개로 사라지기까지 농민들 역시 메주에 전혀 집착하지 않습니다. 다음해에 또 다른 메주라는 예술품을 만들어 냅니다. 메주뿐만 아닙니다. 예술가들이 온갖 예술품을 만들어 내듯 농민들은 사시사철 식탁 위에 오르는 온갖 먹을거리들을 피땀으로 만들어 냅니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요?

날이 어둑어둑 해지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시작하여 다 저녁 때까지 오늘 분량의 메주를 다 만들었습니다. 사흘째, 청국장 두 말을 포함해 30덩어리의 메주를 만들어 냈습니다.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희준이 녀석이 고개만 돌려 한마디 툭 던져 놓습니다.

"할아부지 안녕히 계세요."
"오~냐."

"나한테는 인사 안하냐."
"할무니도 안녕 계세요."

"햐, 저 녀석이 끝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라네, 그려 우리가 할무니 할아부지다 이눔아!"

나흘 내내, 아니, 지난 반년에 걸쳐 공들여 왔던 메주라는 예술품을 만들었더니, 어깨가 절리고 온 삭신이 욱신거리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도자기 수십 벌 구워낸 것 이상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잘못 만들어지면 박살내 버리는 도자기 예술과는 달리 으깨서 버려야 할 메주가 단 한 덩어리도 없으니 얼마나 좋습니다. 메주 덕분에 사흘 내내 구들장 장판 늘어지게 덥힌 뜨끈한 방이 있어 참 좋습니다. 오늘 밤은 늘어지게 등허리 지져가며 못생긴 메주가 차별 받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꿔 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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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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