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있던 이 두 마리의 돼지를 잡아 선물을 마련했습니다.유영수
벌써 6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1999년 11월 21일. 아내는 제가 성실하고 멋진 청년이라는 믿음과 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평생을 저에게 맡기기로 하고, 많은 친지들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한창 아름다움을 꽃피울 26살의 젊디젊은 시절 늦가을이었죠.
6살 연상인 저는 그 당시 힘들게 준비한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서초동 관공서에서 의기양양하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청년이었습니다. IMF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을 때라 취업의 벽은 높아지기만 했고, 덕분에 인기신랑감 순위에 상위권으로 랭크되는 직업 중의 하나였던 공무원이 되었으니, 결혼 당시 저에 대한 아내와 처가의 기대도 컸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결혼 후 채 2년도 못돼 저의 섣부른 판단으로 '평생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생활은 끝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동안 백수로 지내야 했고요. 뜻한 바가 있어 다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 전업을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겪은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지만, 말없이 곁에서 지켜보며 감내해야 했던 아내의 고통은 더 컸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내는 내색 한번 하지 않더군요. 그랬기에 아내에 대한 제 미안한 마음은 더 커져만 갔고요.
아무튼 지금은 안정이 되어 다른 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저를 믿고 자신의 인생을 올인한 아내에게는 참 못할 짓을 한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직장을 옮기면서 공백기간이 있어 아내의 월급으로 생활해야 할 때가 꽤 많았으니까요.
원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못 참고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지닌 저는, 진득하게 한 가지에 매진하지 못하는 탓에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별 불평도 없이 묵묵히 제 뒷바라지를 해온 아내는 저에게 고마운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저의 잦은 이직으로 인해 살림 꾸려나가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억척스럽게 저축을 해, 내년 봄에는 작지만 아늑하고 전망이 탁월한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