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10회

등록 2005.11.21 08:17수정 2005.11.2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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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5 장 기국공(淇國公) 구복(丘福)

곤혹스런 일이었다. 자신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오히려 방해만 된 꼴이었다. 차라리 묵연칠수(墨煙七首)의 추적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면 지금쯤 상대들의 면상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날아오는 전서에 있는 내용은 오히려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묵연칠수가 찾아 낸 흔적과 육능풍 일행의 위치를 전해주는 전서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았고, 그것이 더 추적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 육능풍 일행의 코빼기도 보지 못한 것이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미세한 균열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로 큰 틈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운령의 말이 사실이었던가?”

자신들의 조직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강명은 애써 그녀의 말을 믿지 않으려 했었다. 그의 확고한 믿음 속에서는 사형제 중에서 다른 마음을 가진 자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모든 일이 진행되어왔다. 오차는 언제나 수정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이러한 틀린 정보가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계속 된 적이 없었다. 분명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정보가 누출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형제가 보내준 것이라면 몰라도 운령이 보낸 전서구에 실린 정보였다. 아홉째 사제를 구하기 위해 철혈보의 육능풍 일행을 쫓는다고 했을 때 보내 온 육능풍 일행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일부 맞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과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이번 전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묵연칠수가 조사한 그들의 흔적과 보내온 전서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 패로 나뉘었습니다. 전혀 방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항인(恒寅)이었다. 종륜(宗侖)과 함께 용화사에서 자신의 부친을 모시고 있었던 충실한 심복. 그들은 강중 장군의 장례 후에 곧바로 강명을 따랐다. 좌우산인이 있음에도 강명의 수족이 되어 오히려 좌우산인이 황당해 할 정도.

“묵연칠수는?”

지금까지 추적을 맡았던 인물들이 그들이었다.

“한 패는 철혈보로 돌아가는 것으로 판단되고 또 한 패는 연동(蓮洞) 입구로 향한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주공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홉째 사제인 정운학과 사부의 수하인 오독공자 남화우가 상대의 수중에 있었다. 정사제야 어떠한 고통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겠지만 남화우라면 연동의 위치를 토해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상대는 철혈보의 서열 이위인 육능풍이다. 노회한 심계와 경험은 남화우가 아무리 버틴다 해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반당과 진독수도 있다. 두 패로 어떻게 갈렸는지 모르지만 섣불리 인원을 나누어 추적하다가는 그리 크지는 않아도 수하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이 이상기류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령을 먼저 만나야했다.

“추적을 포기하고 전력을 다해 연동으로 간다.”

이렇게 우왕좌왕 헤매는 것보다는 먼저 가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어차피 연동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육능풍은 반드시 올 것이다. 철혈보를 공격할 것인지 여부는 그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사부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무슨 일이 있기에 모습을 보이시지 않는 것일까?)

의문이었다. 그의 사부인 섭장천은 무슨 일로 어디에 가있는 것일까? 운령도 섭장천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연락을 끊은 것일까? 강명에게는 모든 게 의문이었다.

-------------
천마곡의 입구가 무너져 내리고 천마곡으로 진입했던 선발대 삼진이 당황하는 사이 급작스레 첫 접전이 이루어졌다. 결과는 제마척사맹의 참패. 지리적인 이점을 안고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던 공격에 제마척사맹의 군웅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변변히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당했다.

천마곡으로 제일 먼저 진입했던 철혈보의 철혈대가 급히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더욱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것처럼 위세당당하게 진입했던 제마척사맹의 군웅들로서는 기세가 한풀 꺾이는 참패였다.

더구나 천마곡의 입구가 막힘에 따라 퇴로(退路)가 막히고, 후발대와의 연결로가 막혔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은 적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극도의 불안한 상황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이미 적들이 노리던 터일 것이다.

“피해 상황은?”

철혈보의 보주인 독고문은 힐끗 옆에 앉아있는 만박거사 구효기를 보고나서 철혈대의 대주 독고좌에게 물었다. 구효기가 아무리 제마척사맹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독고좌에게 직접 묻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중상 칠십육 명, 사망 칠 명이오.”

단 한번의 접전으로 칠십육 명이나 부상당했다는 말에 구효기는 나직하게 탄식을 불어냈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고는 하나 심각한 타격이었다. 상대는 이렇게 지리적인 이점을 안고 기습을 해올게 뻔했다. 그 때마다 이렇게 속절없이 당한다면 제대로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지리멸렬(支離滅裂)할 것이다.

“철혈대의 피해는?”

독고문이 재차 물었다.

“경상자 두 명이오.”

이러한 위급한 상황 속에서 제 몫을 해주는 것은 철혈대였다. 사실 무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과 이러한 다수 인원의 싸움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고수가 많으면 물론 전력에 도움이 되겠지만 고수가 많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훈련을 한 철혈대는 이런 싸움에서 그 위력이 훨씬 돋보였다. 그들은 집단전투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병진을 가미한 조직력은 일반 무림인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전술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서른두 명의 인원을 후발대에 남겨두고 선발대 일진으로 들어온 철혈대의 인원은 모두 구십육 명. 갑작스런 기습으로 인한 난전(亂戰)에서 겨우 두 명만이 경상을 입을 정도라면 철혈대의 위용이 어떠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터였다.

“언제 기습해 올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해두게.”

독고문이 나직이 말하자 독고좌가 부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현재 기습에 대비해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이 철혈대다. 일단 선봉에 서 있으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철혈대가 군웅들의 생명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명을 받드오이다.”

독고좌가 나가는 것을 본 구효기는 또 다시 탄식을 터트렸다. 상대의 계략에 철저히 말려 든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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