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은 전쟁 때도 농담했다"

[인터뷰] 이계진 신임 한나라당 대변인 "유머 있는 정치에 일조할 것"

등록 2005.11.21 15:24수정 2005.11.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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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새대변인으로 선임된 이계진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 기자실에서 주요당직자 인선내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새대변인으로 선임된 이계진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 기자실에서 주요당직자 인선내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좀 유머 있는 정치, 재미있는 정치를 하는 데 대변인으로서 일조하고 싶다. 모든 대변인이 다 전투적이고, 전부 싸우자는 분위기 아닌가. 대변인이 대개 상대방을 '박박' 긁는데, 너무 긁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나라당 당직 인선 때마다 대변인으로 거론됐던 이계진 신임 한나라당 대변인은 '유머'와 '재미'를 강조했다. 우리 정치의 전투적인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대변인 임명 발표 직후인 21일 오전에 찾아간 의원회관 사무실은 일단 그의 이런 바람과 잘 어울렸다. 의원실 입구에는 해바라기 화분이 놓여있고, 의원실 곳곳에도 해바라기 장식과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있다. 그의 블로그 이름도 '해바라기 피는 마을'이다. 의원실 응접 테이블에는 다기 세트가 가득했다. 그의 30년 취미라고 한다.

"대변인 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으로 잠을 못 자 얼굴이 푸석해졌다"는 이 의원은 "전임 전여옥 대변인이 맡았던 때가 지난해 총선 이후로 '전쟁 중'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들어가 있으니 여기에서 내 색깔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그의 파트너가 될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에 대해 "내가 대학 선배지만, 집권 여당의 대변인이니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

또, "대변인 하면서 첫째 국민, 둘째가 당, 그리고 대표는 오히려 세 번째로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대표만을 위한 대변인을 하겠다는 생각은 박 대표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처칠은 전쟁 중에도 농담을 했다"는 대변인으로서의 그의 다짐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다음은 이계진 신임 대변인과 나눈 인터뷰 전문.

- 왜 본인이 대변인으로 선택됐다고 보나.
"주말에, 토요일인가 박근혜 대표가 전화를 하셨는데, 계속 고사했다. '좀더 공부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내가 당에 누를 끼치는 대변인이 되어서야 되겠나. 과거에 2∼3번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같은 말로 고사했다. '혹시 기회 되면 후반기에 일을 하겠다'고 답했는데, 박 대표는 '지금 필요하다'고 하시더라."


- 그러면 '사고'를 친 건가.
"하하. 사고친 거죠, 뭐. 이번에도 그런 말씀을 드렸다. '월요일에 번복할 기회를 주시는 걸로 하고 도와드려 보겠다'고. 그런데 박 대표가 안 된다고 월요일에 발표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주말에 고민을 많이 했다."

- 박 대표가 '사고초려'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웃음) 사고초려는 아니고, 모르겠다. 아마 (내가) 발음이 좋아서라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 평소 어떻게 평가했나.
"당을 잘 이끌어 주셨다. 그간 박 대표를 많이 흔든 사람들이 있었으니 몇 번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잘 헤쳐나가시더라. 어떤 때는 과감성도 보였고 어떤 때는 여성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의 걱정도 불식시키더라."

"'박 대표만을 위한 대변인' 생각은 그 분 위해서도 지워야"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오마이뉴스 이종호
- 박 대표와는 호흡이 잘 맞을 것 같나.
"박 대표에 대해서 더 많은 관찰을 하겠다. 그러나 박 대표만을 위한 대변인을 하겠다는 생각은 그분을 위해서도 지워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는 것이 결국 박 대표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아까 첫 브리핑에서도 대변인으로서 생각하는 순서를 말하면서 첫째가 국민이고 둘째가 당, 그리고 대표는 오히려 세 번째라고 말했었다. 농담으로 네 번째가 이계진이다. 결국 국민을 위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전임인 전여옥 대변인을 포함해서 평소에 각 당 대변인들을 어떻게 봤나.
"전여옥 전 대변인이 참으로 개성 있게 잘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대단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대단히 싫어하고. 그렇게 아주 극명하게 색깔을 보였다. 어제 전 전 대변인이 전화를 걸어와서 '어려운 일 맡아주게 됐는데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

전 의원이 대변인 맡았던 시기가 지난해 총선 이후로 '전쟁 중'이었다 고나 할까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당이) 안정 궤도 들어가 있으니 여기에서 내 색깔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유머 있는 정치, 재미있는 정치를 하는 데 대변인으로서 일조하고 싶다. 성명이나 코멘트도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부드러우면서도 현상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대변인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다. 모든 대변인이 다 전투적이고, 전부 싸우자는 분위기 아닌가. 대변인이 대개 상대방을 '박박' 긁는데 너무 긁지 않았으면 좋겠다."

- 전 전 대변인이 전화로 무엇을 당부하던가.
"당부는 못한다. 내가 방송사 선배다.(웃음) 전 전 대변인도 나에게 '선배'라고 그런다. '이 선배, 잘 하실 거예요'라고 격려하더라."

-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아마 내가 대학 선배일 것이다. 학연을 따지는 건 아니고, 전에 대학 모임에서 뵌 기억이 난다. 내가 선배이지만 집권 여당의 대변인이니 잘 모셔야 하지 않겠나.(웃음)"

"과거처럼 안 하면 기자들이 좀 싫어하겠지만"

- 지금까지 역대 여당이나 야당 대변인들 중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면.
"박희태 부의장께서 대변인 시절에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얘기도 퍽 여유 있게 한 기억이 남는다. 신문인 출신의 김철 대변인도 참 잘하셨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임인 전 전 대변인도 개성있게 잘 하셨다."

- 각 당 대변인이나 부대변인의 거친 논평에 많은 비판이 있었는데 어떻게 개선하려고 하나.
"과거처럼 안 하면 기자들은 좀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기자들이 그런 것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윈스턴 처칠은 전쟁 중에도 유머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 중도 아닌데 그렇게 (전투적으로) 할 필요가 있나. 재미있는 정치적 표현도 할 수 있지 않겠나."

- 최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40% 이상을 넘으며 고공행진을 계속 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확한 민심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자면 우리도 조금 정신 차린 모습을 보였고, 상대(열린우리당)의 어려움도 국민들은 불만으로 느끼지 않았겠나."

-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내가 경기도 광주에서 농사를 짓는다. 주말이면 꼭 내려가는데 올해로 꼭 10년 됐다. 어제도 거기서 뽑은 배추로 김장을 했다. 거기서 일하면 모든 잡념이 없어진다. 그런데 어제는 '앞으로 대변인 하면… 어휴' 하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잘 안 풀리더라.(웃음) 그래서 보쌈에 술 한잔 했다. 또 하나는 이거다(응접 테이블에 놓인 차와 다기를 가리키며). 차 마신 지 한 30년 됐다. 차 마시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져왔다."

- 국회의원 된지 2년 정도 됐는데 '정치인 이계진'은 어떤가.
"처음 정치 시작할 때 내 홈페이지에 '30년 전에 방송을 시작할 때도 무명 신인이었다. 그간 자리를 잡고 내 역할을 잘 해왔다. 지금도 신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라고 쓴 기억이 난다. (정치인 이계진도) 그런 대로 불합격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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