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후계자는 차남 김정철이라고?

외신들 '후계 확정설' 보도 잇따라... 국내 기관들은 부인

등록 2005.11.28 12:58수정 2005.11.2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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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평양의 24살 난 한 젊은이의 동정에 대한 한 외국 언론의 보도가 한국·중국·일본·미국 등 주변 4국의 정보기관을 긴장시키고 있다. 북한 내에서도 가장 민감한 주제 중 하나인 이른바 '후계구도'에 관한 보도 때문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지는 21일 "지난 10월 말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방북 때 김정철이 만찬에 등장했다"고 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인 김정철(24)은 2004년 여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고영희와의 사이에 낳은 두 아들 가운데 첫째이다. 그의 동생은 김정운(21)으로 알려졌다. 장남인 김정남(31)은 이들의 이복 형이다.

<슈피겔>은 그가 후진타오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만찬에 참석한 사실을 근거로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됐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후계자 확정설'을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김정철의 만찬 참석은 북한의 차기 지도자를 만나보려는 후 주석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고도 했다.

<슈피겔> 이어 일본 언론, '김정철 후계자 확정설' 보도

'김정일 가계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정보기관의 '정보수집목표 우선순위' 대상이다.
'김정일 가계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정보기관의 '정보수집목표 우선순위' 대상이다.
그러자 북한의 후계구도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일본의 한 시사월간지(포사이트)는 '북, 중국에 이미 정철을 후계자로 공식 통보' 제목의 최신호 기사에서 경쟁이나 하듯 이보다 한발 더 앞서나간 보도를 했다.

그 요지는 "후진타오의 평양 방문 최대 목적은 김정철 면담이었으며, 북한은 지난 여름쯤 중국에 김정철의 후계자 결정을 통보해 중국이 '위대한 민족의 후계자 결정을 충심으로 축하한다'는 찬사를 북한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사실로 공식 확인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국가정보원도 현재 김정철이 만찬에 실제로 참석했는지를 확인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후계자 확정설'은 현재로서는 그 다음 단계에서나 확인될 일이다.


김정철 후계구도설이 일본 등 주로 서방 언론에 집중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5월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 이후부터이다.

서방 언론은 1974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2세일 때 당시 62세인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내정되어, 그후 38세 때인 1980년 노동당 6차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위원회 비서, 당중앙위원회 군사위원으로 임명돼 후계자로 확정된 사실에 근거해 언론에 처음 노출된 김정남 후계자설을 보도했다. 권력자의 생물학적 수명과 후계자의 나이 등을 고려할 때 김정일 위원장이 회갑을 맞는 2002년에는 후계자가 내정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2002년 이후 북한에서는 김정철을 후계자로 옹립하는 듯한 징후들이 나타났다. 그해 8월 북한 군부는 그의 생모인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표현한 강연 자료를 내놓았다. 또 일각에서는 2003년 9월 국방위원에 임명된 백세봉이 김정철이란 주장도 내놓았다. 백세봉은 북한이 혁명의 성산으로 여기는 '백두산 세 봉우리'의 줄임말로, 후계 구축을 위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그럴 듯한 관측이었다.

외국 언론들, '조선왕조 500년'식 권력투쟁에 초점 맞춰 후계구도 보도

비교적 북한 사정에 밝은 중국·러시아 언론들조차도 ▲고영희가 자신의 둘째아들 김정운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당·군 고위간부들로 하여금 '샛별대장'으로 부르도록 하고 있다(2003년 9월 중국 <차이나뉴스넷>) ▲고영희의 교통사고는 김정남과 김정철 사이의 치열한 후계 다툼의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보이고 김정남은 동생 김정철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추진중이며 심지어 전문킬러까지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2003년 10월 러시아 <콤메르산트>) 등의 추측 보도를 쏟아냈다.

그나마 외국 언론 중에서 주목할 만한 보도는 유난히 북한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과 인간정보(휴민트)가 많은 일본과 북한에 대한 영상정보(시긴트)가 풍부한 미국의 언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언론(<워싱턴포스트> 2003년 11월 9일자)에 따르면, 미국 정보 당국은 후계자가 누가 될지에 대해서 기관마다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국방정보국(DIA)은 김정일 후계자가 군부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반면에 국무부는 두 아들(김정남·김정철) 중 1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북한 후계구도에 대한 추측 보도는 <워싱턴포스트>와 쌍벽을 이루는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다. 이 신문(2004년 8월 27일자)은 "고영희 사망이 사실이라면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권력승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면서 "한국은 수백년간 잔혹한 왕조정치를 겪어왔으며, 왕실의 남자들이 권력쟁탈 과정에서 서로를 죽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보도해 '조선왕조 500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게 했다.

그나마 현재까지의 후계구도설 중에서 가장 근거 있는 보도는 김정일 위원장 비서실에서 김정일의 지시 등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첩을 근거로 작성한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2004년 8월 30일)의 '김정일 비서실 日報의 목소리' 제하의 기사이다.

이 주간지는 2003년 3월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첩에 따르면 "김정일이 '정철 동지를 당조직부 실무학습이 끝나면 6개월간 고급당학교 과정을 거치도록 하라'고 하셨다"고 지시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를 근거로 이 주간지는 "이는 김 위원장이 김정철로 하여금 인사를 비롯한 조선노동당 전반을 관장하는 당조직 지도부에서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받게 하도록 부하에게 명령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회갑을 넘겨도 후계구도가 확정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60주년 때 김정철이 후계자로 공식화될 것이라는 외국 언론의 추측 보도가 난무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을 앞두고 후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 후계자 '면접'을 볼 것이라는 그럴 듯한 보도가 나왔다. 한 홍콩 언론은 "후 주석 방북 때 김 위원장은 후 주석을 초청한 비공개 가족연회에 차남 김정철을 소개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슈피겔> 기사는 그 보도의 연장선 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등의 동향보고엔 "공식직책에 임명된 동향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보기관들이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김정일 일가의 북한내 활동현황' 등에 따르면 "김정철은 스위스 국제학교에 유학 후 귀국해 대학과정을 마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공식직책에 임명된 동향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3남인 김정운에 대해서도 "스위스 국제학교에 유학 후 귀국하였으며 북한 내부동향은 파악된 바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심지어 전처인 성혜림 사이에 낳은 장남 김정남에 대해서도 '김정일 일가의 북한내 활동현황'은 "현재까지 공식 직책에 임명된 사실이 없으며, 2001년 5월 일본 밀입국 사건 이후 주로 마카오·베이징에 체류하면서 유럽 및 동남아 등지를 수시로 여행한다"고 돼 있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김정일의 2세들이 현재까지 아무런 공식 직책이 없다는 사실은 후계구도를 읽는 데 중요한 포인트이다.

실제로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명(明)과 조선의 관계도 아닌데 후계자 문제를 놓고 중국이 '면접'을 보자고 했다거나, 김정철을 공식만찬에 불렀다는 것은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것이라며 믿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히려 북한측과 교류접촉이 많은 실무적인 전문가들은 '포스트 김정일' 체제는 일종의 과도기로서, 후계자와 후견인 그리고 군부로 구성되는 '집단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도 정상적인 국가다"면서 "3대에 걸친 부자(父子) 권력세습보다는 테크노크라트와 군부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정황을 종합할 때 현재로서는 외국 언론보다는 정보기관과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외국 언론, 특히 서방 언론에 북한정권의 후계구도는 '흥미'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자칫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정보수집목표 우선순위'의 1순위 대상이기 때문다.

그래서 국가 정보기관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24시간 감시의 대상이다. 거기에는 정보기관이 작성한 '김정일 가계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해당된다. 물론 그 수단에는 도·감청에 의한 통신첩보와 인간첩보(휴민트) 등이 총망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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