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아저씨와 휠체어 천사의 11년 인연

[사람들] 개그맨 김은우씨와 장은경 원장

등록 2005.11.28 13:37수정 2005.11.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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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저 김은우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너무 오래 잊고 살았네요. 저 그 출판기념회에 갈게요. 자주 전화 드리고 예전보다 더 자주 찾아뵐게요. 저를 기억해줘서 감사해요."


김은우씨는 울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그저 고맙기만 한 나를 향해 잘못했다는 말을 계속 하고 있었다. 나의 눈에서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흥분과 감사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나를 지켜보고 있던 우리 아이들도 울고 있었다.


장애우들의 공동체인 '작은 평화의 집' 장은경 원장이 개그맨 김은우씨와 관련해 지난 6일 한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의 일부다. 이 글은 그 날 이후 28만 건이 넘는 조회수와 1300여 건에 육박하는 추천글을 기록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a 1994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만난 개그맨 김은우씨와 작은평화의집 장은경 원장.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들은 반갑고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1994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만난 개그맨 김은우씨와 작은평화의집 장은경 원장.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들은 반갑고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최육상

1994년 맺어진 장은경 원장과 김은우씨의 인연

장은경 원장과 개그맨 김은우씨.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두 사람의 인연은 11년 전으로 돌아간다. 김씨는 1994년 당시 개그 프로그램인 '코미디전망대'에 출연해 '누가 나 좀 말려줘요~', '삐삐 좀 쳐주세요~' 등을 유행시키며 한창 인기를 끌던 개그맨이었다. 김씨는 라디오방송도 진행했는데 이 때 초대 손님이던 장 원장을 처음 만났던 것.

여기까지는 유명 연예인이라면 얼마든 겪을 수 있는 일. 본격적으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김씨가 최양락, 박미선, 이경애 등 당시 인기절정이던 동료 개그맨들과 함께 '작은 평화의 집'을 찾아 소리 없이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장 원장의 첫 시집 <날마다 고백을 해도 가슴에 남을 그리움> 출판기념회를 함께 치렀던 것도 이 때의 일.


장애우들은 이후 1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김씨를 '삐삐아저씨'로 기억한다. 장 원장이 두 번째 시집인 <둥기둥기 둥기야>를 펴내면서 김씨를 다시 찾으려고 했던 것도 '삐삐 아저씨도 오느냐'는 아이들 성화 때문이었다.

장 원장은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샅샅이 뒤지다 김씨의 미니홈피를 찾았다. 하지만 방문자도 별로 없고 관리도 안 하던 홈피를 보며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안부를 묻는 글을 남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씨가 장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잘못했다며 울먹였던 것. 이들의 인연은 이렇게 11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었다.

a '작은 평화의 집' 가족들은 13명의 장애우들과 여러 자원 봉사자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기념회 축하공연에 앞서 복도에서 한 컷~!

'작은 평화의 집' 가족들은 13명의 장애우들과 여러 자원 봉사자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기념회 축하공연에 앞서 복도에서 한 컷~! ⓒ 최육상

김은우 "봉사의 책임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요"

지난 26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장은경 원장의 시집 <둥기둥기 둥기야> 출판기념회에서 두 사람을 만나 그 동안의 사연을 들어봤다.

"11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한 번도 김은우씨를 잊어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저보다 아이들이 '삐삐 아저씨'를 더욱 애타게 찾았지만요."

오랜만에 만난 소감을 묻자 장 원장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답을 했다. 김씨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하지만 무척 진지하게(이런 표정이 정말 가능했다) 말을 이었다.

"제가 잘못했지요. 먹고살기 힘들다고 그러면 안 됐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저를 기억하고 찾아주니 정말 죄송하면서도 고맙더라고요. 이번에 느낀 건, 봉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에요. 11년 전에는 봉사를 하면 즐겁다는 기분에만 취했어요. 제가 떠나고 나면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는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죠. 이제라도 봉사의 책임을 알게 해 준 원장님과 아이들에게 고맙게 생각해요."

이 날 출판기념회 사회를 본 김씨는 개회사를 하는 내내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오랫동안 '작은 평화의 집'을 찾지 못한데 대한 속죄의 눈물을 참지 못했던 것. 김씨의 눈물이 신호탄이었을까. 이후 기념회는 잔잔한 감동 속에 눈물콧물로 범벅이 됐다.

기념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 원장을 '천사'로 불렀다. 하지만 수식어가 붙어 '휠체어를 탄 천사'다. 장 원장도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을 할 수 없는 1급 신체장애인이기 때문.

시평을 했던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명훈씨는 "얼마 전 아는 기자가 '요즘 천사 본 적 있어요?'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등기로 부쳐 온 장 원장의 시집을 읽으면서 천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여러분들은 날개는 없지만 분명히 천사를 보고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요즘 천사 본 적 있어요?" 장은경 원장은 휠체어 탄 천사

a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작은 평화의 집 장애우들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수화 공연을 펼쳐보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작은 평화의 집 장애우들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수화 공연을 펼쳐보이고 있다. ⓒ 최육상

출판기념회의 하이라이트였던 장 원장의 '둥기둥기 둥기야' 낭송. 시집 제목이기도 한 이 시를 장 원장이 읊기 시작하자 자리는 일순간 눈물바다로 변했다.

숨이 저린 통증으로 왼쪽 가슴이 뻣뻣하다
함께 가만히 누워 있을라치면 꼼지락 꼼지락
단풍잎 같은 손을 내밀어
내 머리카락을 헤집던 아이,
가느다란 다리에 아이의 머리를 베이면
어느새 고개를 돌려 강아지처럼 내 싸늘한 피부를
핥아주던 아이,
내 고달픈 어깨가 저절로 환해지던 그 때가
그리워 눈물이 쏟아진다.
죽을 떠먹여 주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면서
도리도리를 하던 아이가 그리워
또 눈물이 난다

둥기둥기 둥기야~
우리 대현이 둥기야~
-<둥기둥기 둥기야> 중 '둥기둥기 둥기야' 일부


"장애아동전문병원 세워 대현이와의 약속 꼭 지키겠다"

a 장은경 원장이 '둥기둥기 둥기야'를 낭송하자, 장애우들은 울음을 쏟아 냈다. 스님과 수녀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은경 원장이 '둥기둥기 둥기야'를 낭송하자, 장애우들은 울음을 쏟아 냈다. 스님과 수녀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 최육상

장 원장은 시 낭송을 마친 뒤, "품에 안고 살았던 대현이가 떠나던 날 대현이 앞에서 다짐한 것이 있다"며 "꼭 '장애아동전문병원'을 세우겠다고, 다신 허무하게 아이들을 떠나보내진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대현이는 3살 때 '작은 평화의 집'으로 왔고 12살에 작은 천사가 되었다. 뇌성마비 장애 때문에 9년 동안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도리도리' 밖에 없었던, 말 그대로 아기의 삶만을 살다 갔다. 장 원장은 대현이를 포함해 지금까지 여섯 명의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장 원장이 15년간 꾸려 온 '작은 평화의 집'에는 장애우 13명과 총무이자 시집을 출판한 '도서출판 산' 대표인 최요한씨 등 모두 15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최 총무는 "작은 평화의 집은 비인가 시설이지만, 굳이 인가를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다"며 "원장님과 제가 급여를 받고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장 원장과 최 총무 등 모든 이들은 장애우들을 항상 가족이라고 표현했다)들이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거동이 불편한 장 원장이 음식을 만들면 상을 차리고 청소하는 것 등은 가족들이 함께 한다고.

장애아동전문병원을 세우려면 후원계좌를 공개해 적극적으로 후원금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자 최 총무의 입에서 날카로우면서도 애정이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후원과 봉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정과 정성이 담긴 후원금은 당연히 받겠지만, 한 번쯤은 평화의 집 가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고 나서 후원을 해 달라는 거죠. 장애아동전문병원도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세울 수 있을 거예요."

"장애에 대한 편견 버리면 봉사활동 가능해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 원장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김씨와 나는 상체를 바짝 숙여 거의 앉다시피 해야 했다. 그렇게 눈높이를 맞추니 장 원장의 장애는 보이지 않았다. 김씨는 눈높이를 맞추던 따뜻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이 참 많이 각박해진 것 같아요. 이젠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김은우가 이번 일로 네티즌들에게 주목 받는 것을 보니까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11년 만에 다시 찾은 인연을 소중히 이어갈 거예요. 그리고 저를 비롯해 여러분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했으면 해요.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만 하면 가능하잖아요."

늦은 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캄캄한 고속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애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야말로 진정으로 타파해야 할 장애라는 생각. 그 어떤 편견과 장애도 없이, 아름답게 맺어진 두 사람의 새로운 인연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본다.

a 한 자원봉사자가 장애우에게 <둥기둥기 둥기야>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장애라는 편견을 넘어 선 '한 가족'이었다.

한 자원봉사자가 장애우에게 <둥기둥기 둥기야>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장애라는 편견을 넘어 선 '한 가족'이었다. ⓒ 최육상

덧붙이는 글 | 작은평화의집 카페 http://cafe.daum.net/peace5182
장은경 원장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peace5182
개그맨 김은우씨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silverrain60

덧붙이는 글 작은평화의집 카페 http://cafe.daum.net/peace5182
장은경 원장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peace5182
개그맨 김은우씨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silverrain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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