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뛰게 해준 북한 길동무 '방민선'

[평양마라톤 참가기] 손 맞잡고 달리니 남북은 이미 하나

등록 2005.11.28 19:35수정 2006.10.0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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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마이뉴스 주최 '평양-남포 통일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남북의 선수들이 결승지점인 평양 서산축구경기장을 5km 앞두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앞을 달리고 있다. 맨 앞에 달리는 이가 필자.

오마이뉴스 주최 '평양-남포 통일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남북의 선수들이 결승지점인 평양 서산축구경기장을 5km 앞두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앞을 달리고 있다. 맨 앞에 달리는 이가 필자. ⓒ 오마이뉴스 남소연

마라톤을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네 개의 풀코스마라톤 완주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첫 번째 풀코스를 완주한 뒤로 마라톤은 때로는 수천, 수만이 함께 달리지만 철두철미하게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만 달려야 하는 고독한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독하게 달리면서 한편으로는 고독에 담긴 진실성, 정직함, 순수함을 체감하기도 한다. 철저히 고독한 자만이 인생의 참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그런지, 최근에 내가 즐겨 읊는 말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달려라!

그런데 이번 평양마라톤에서는 예전 대회에서는 미처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비록 마라톤과 인생이 고독한 경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온기를 나누며 함께 달리는 경주라는 점이었다.

11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출발지점인 서산축구경기장을 출발할 때 세운 완주목표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다. 처음에 평양마라톤에 참가할 때는 평양의 엄마와 함께 달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드는 잡지 이름이 <좋은엄마>인만큼 평양의 '좋은 엄마'와 호흡을 같이하며 정담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선수들이 10분 먼저 출발한 관계로 동반주할 평양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약 1km 지점에서 영화 <말아톤>의 원주인공 형진이를 만난 뒤 7.5km 급수대까지 바짝 붙어 달렸다. 형진이가 물을 마시는 사이, 급수대를 지나쳐 계속 달렸다. 나는 10km 전까지는 물을 마시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a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오른쪽)와 필자가 나란히 평양시내를 달리고 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오른쪽)와 필자가 나란히 평양시내를 달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얼마 뒤 북한 선수 두 명이 "힘냅시다" 하면서 격려를 한 뒤 앞질러 나갔다.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곧이어 또 한 명의 북한 선수가 "힘냅시다"하는 말과 함께 옆으로 다가왔다. 작은 키에 가무잡잡한 얼굴을 한 이 선수의 이름은 방민선이라고 했고,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아래인 마흔 두 살이었다.

"어디서 일합니까?"
"평양철도공장에서 일합니다."


"달리기 자주 합니까?"
"일주일에 네 번쯤 뜁니다."

"주로 언제 뛰죠?
"아침에 두 번 저녁에 두 번씩 뜁니다."


키는 자그마했지만 거친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숙련된 '달림이'였다. 아무래도 더 이상 내가 쫓아가는 것이 어려울 듯싶어 몇 차례 먼저 가라고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방민선씨는 정감어린 목소리로 "힘내서 같이 뜁시다"며 보조를 맞춰 주었다.

반환점을 지난 뒤에는 두 명의 북한 선수가 또 따라 붙더니 옆에서 함께 달렸다. 그 중 한 명은 스물네 살 먹은 여대생이었다.

반환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남측 참가 선수들이 "조국" "통일"을 연호하는 소리도 들렸다. 도로 주변에 모여 응원하던 북한 동포들이 박수를 보내며 함께 "조국" "통일"을 외치기도 했다. 함께 달리던 방민선씨에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통일을 못 이뤘지만 우리 세대엔 통일을 꼭 이뤄야죠."
"그럼요, 힘을 합쳐서 꼭 통일을 이루자고요."

웃음을 지은 얼굴로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때 취재를 하던 방송사 기자가 달려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함께 달리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마주 잡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렇게 우리는 벌써 남과 북이 통일되지 않았습니까?"
"평양의 공기가 깨끗하죠?"
"예, 상쾌합니다."

평양 공기만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손을 맞잡아 쥔 남북 마라토너의 심장도 순수 그 자체였다. 함께 달리는 우리 사이엔 더 이상 분단선도 경계선도 존재하지 않았다. 두 손 마주잡고 달린 남북의 선수는 이미 통일을 이룬 사이였다.

광복거리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부근에 설치된 5km 표지판 앞에서 사진 기자가 셔터를 눌렀다. 서울에 돌아와서 보니 이때 네 명의 선수가 나란히 5km 표지판을 통과하는 장면이 멋지게 찍혀 오마이뉴스 사진기사에 올려놓여져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3km 정도를 남겨놓은 지점에서 뒤쪽에서 동반주로 따라오던 북한 선수 두 명과 남측 선수 한 명이 앞질러 나갔다. 이를 본 방민선 선수는 "우리도 힘내서 쫓아갑시다"라고 말하며 나를 독려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속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막판에 치고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먼저 가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어이 먼저 가요. 뒤쫓아 갈 테니까."
"여기까지 함께 뛰어왔는데 같이 갑시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정감이 있고 진실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동포였다. 입술을 깨물며 얼마를 달리자 멀리 서산축구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1시간 가까이 함께 달려온 북한 노동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리는 길 위에서 어느 순간 두 명, 세 명, 네 명의 달림이가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다.

같은 달림이로서, 같은 동포로서, 따스한 숨결과 체온을 느껴가며 달려오면서 언어가 필요 없는 이심전심의 공감을 이뤄낸 것이었다.

결승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출발점에서 잡았던 예상 기록보다 10분이나 빠른 1시간 30분의 기록이었다. 옆에서 힘을 북돋아준 '길동무' 방민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네 명의 선수는 달리기의 고독함을 잊어버린 채, 손을 꼭 부여잡고 결승점을 통과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a 남북의 선수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결승점으로 들어오고 있다. 왼쪽에서 첫번째 112번이 북측 방민선 선수, 405번이 필자.

남북의 선수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결승점으로 들어오고 있다. 왼쪽에서 첫번째 112번이 북측 방민선 선수, 405번이 필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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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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