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혀가 천성산 위기 또 부른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약속 위반하고도 떳떳한 철도시설공단

등록 2005.11.29 12:00수정 2005.11.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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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004년 당시의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공사구간.

지난 2004년 당시의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공사구간. ⓒ 안현주

뇌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길어야 이틀이다.

다음달 1일 천성산 관통터널 구간 발파공사가 재개되는 것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또 다시 커다란 갈등이 야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조선일보>는 지난 24일 한국철도시설공단 영남지역본부의 말을 빌려 천성산 공사가 재개된다고 보도했다. "지율 스님 측과 공단 측 위원 14명의 천성산 구간에 대한 환경영향 공동조사 결과, 공사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 것으로 나타나 오는 30일 공사를 속개키로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 보도를 이틀 만에 정정했다. "공동조사를 착수할 때의 합의에 의해 공사가 (다음달 1일) 재개되는 것"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오늘 <중앙일보>는 또 다른 보도를 내놨다. 천성산 환경영향 공동조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일보>에 보도된 철도시설공단의 말에 반발한 지율 스님 측 조사위원들이 다음 달 완료할 예정이던 조사보고서 작성을 중단했고, 공단 책임자의 공개사과 등이 없을 경우 조사 자체를 거부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지율 스님 측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약속을 어겼다는 점 때문이다. 애초 공동조사 결과는 최종 보고서가 작성될 때까지 일체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철도시설공단이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섣부른 말 한 마디가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좌초시킬지도 모를 최악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철도시설공단의 대응은 태연하다. "말실수일 뿐인데 (지율 스님측이)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명자료까지 뿌려 사후 조치를 다 했는데도 괜히 꼬투리 잡는다는 식의 사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율 스님 측 조사위원들이 어제 공단측을 만나 거듭 공개사과를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약속 위반 불구하고 철도시설공단은 사과마저 거부

단지 '말실수'에 불과했다면 깨끗하게 사과하면 될 일을 거꾸로 상황을 나쁜 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태도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철도시설공단이 '잘못된 설명'을 한 바로 그날 청와대 관계자도 입을 열었다. "지율 스님이 최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지율 스님 쪽에서 선정한 조사위원들도 그 동안 지율 스님이 주장해 온 내용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철도시설공단의 설명과 다를 바가 전혀 없을 뿐더러 더 나아가 지율 스님 측을 강하게 자극하는 말이었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기자들 앞에서 버젓이 한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이 선연하게 다가온다.

지율 스님 측이 제시한 사과 시한은 내일 오후다. 이때까지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공동조사는 좌초된다. 그럼 어떤 상황이 연출되는가?

철도시설공단과 지율 스님의 애초 약속사항은 이렇다. ▲11월 말까지 공동으로 환경영향을 조사하되 조사결과와는 상관없이 12월 1일 공사는 재개하고 ▲조사결과 양측이 통일된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각각의 조사결과를 대법원에 제출하지만 공사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과는 무관하게 진행한다.

결국 핵심은 하나다. 공동 조사의 '판'이 깨지든 안 깨지든 공사는 12월 1일부터 재개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청와대와 철도시설공단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올 법 하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큰 화를 부른다. 대형국책사업을 둘러싼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신뢰를 쌓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를 쌓는 유일한 방법은 공정한 절차를 세우고 투명하게 이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부안사태'에서 얻은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현재로선 이런 추측이 억측이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지켜볼 일이다. 지율 스님 측이 정한 시한 내에 사과를 한다면 문제는 정리될 수 있다. 이제 하루 하고 한 나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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