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박이 아들과 산 정상에 서다

[아름다운 동행] 아들과 떠난 화왕산 억새 산행

등록 2005.11.30 11:37수정 2005.12.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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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철교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남지철교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김정수
아들녀석이 만 3세 생일을 맞이하고 4일이 지난 10월말의 토요일에 가까운 창녕화왕산 산행에 함께 나섰다. 상쾌하고 맑은 하늘이 가을의 깊이만큼 높이 걸려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 통행권을 뽑자 아들 녀석이 한마디 거든다.

"그거는 왜 뽑아요?"
"응, 통행권이야. 고속도로는 돈 내고 가야하는데, 나중에 나갈 때 간 만큼 돈 내야 해!"


녀석의 궁금증에 답한 후 다시 달린다. 창녕군 남지읍 다리를 지날 무렵이었다.

"아빠, 저거 바다에요?"
"아니, 강이야. 낙동강. 저 아래로 계속 흘러가다가 나중에 바다가 되는 거야."
"근데 왜 고기가 안 보여요?"
"저 밑에 사는데, 지금 맘마 먹으러 가서 안 보이는거야."

녀석의 궁금증은 계속된다. 아직 강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물이 많이 있으니까 당연히 물고기가 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속도를 줄이면서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위로 햇살이 번들거린다.

'그 많던 물고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녀석의 질문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외갓집이 창녕이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버스타고 숱하게 지나쳤던 곳인데, 고기는 한 마리도 안 보인다. 20~25년 전쯤에는 아이들이 맨손으로도 심심찮게 고기를 잡아올렸는데 지금은 주말인데도 낚시하는 이조차 없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맘마 먹으러 갔다고 둘러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11월에 남지철교에 갔을 때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물고기 한 마리 발견하지 못했다. 잠시 딴 생각하는 사이 녀석이 또 뭐라 그런다.

"뭐라고?"
"집이 기차 같아요."


남지철교 아래쪽의 낙동강 풍경
남지철교 아래쪽의 낙동강 풍경김정수
집 3개를 붙여 놓은 것처럼 길게 늘어선 집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그토록 지나치면서도 아무 생각없었는데 녀석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다. 직업 특성상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이미 아들이 11개월 때 비행기, 배, 기차를 다 타 보았을 만큼 같이 많이 다녔는데, 때로는 아이의 시각에 내가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아 놀란다.

창녕IC를 빠져나와 화왕산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경이었다. 화왕산은 즐겨 찾는 산 중 한 곳이었는데, 최근에는 바빠서 2년 만에 다시 오게 되었다. 주말이라 입구부터 사람과 차들로 빼곡해 가을햇살 한 점 내려앉을 공간이 없다. 주차장 입구의 도로 양 옆에도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도로가 정체될 정도다.

매표소를 지나 주차를 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섰다. 배낭을 멘 채 산을 오르는 이들이 길게 늘어섰다. 벌써 손에 억새를 꺾어들고 내려오는 이들도 있다. 지금쯤이면 한창 화왕산 억새가 절정을 이룰 시기인데, 등산객 손에 쥔 억새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환경훼손에 대한 걱정으로 안타까웠다.

"아빠차랑 똑같아요. 같은 차 3개에요. 같은 차 왜 이케 많아요."

녀석은 그 많은 차들 중에서 내 차와 같은 차를 귀신같이 찾아낸다.

"아빠! 다리가 뿌러지겠어요."

등산로 갈림길이 시작될 무렵 녀석이 엄살을 떤다.

"조금만 더 가자. 아빠가 힘든 길 나오면 안아줄게."

그렇게 달래서 조금 더 걷게 했다. 환장고개 쪽은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고 복잡할 것 같아 도성암을 거쳐가는 3등산로쪽을 택했다.

"아빠! 힘들어요."

억새군락지에 자리한 창녕조씨덕성지비
억새군락지에 자리한 창녕조씨덕성지비김정수
도성암까지는 시멘트 포장길로 되어 있는데 경사가 급하다보니 힘들어한다. 할 수 없이 안고 갔다. 25kg에 이르는 배낭을 메고, 아이를 안고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조금 가다가 평탄한 길이 나와서 다시 걷게 했다.

"아빠! 저건 뭐에요?"
"솔방울이야."
"저것도 솔방울이에요?"

아이는 힘들어 하면서도 처음 보는 것만 나오면 계속 물어본다. 이 때문에 산행 속도가 더욱 더뎌진다. 소나무 숲이 하늘을 가릴 듯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등산로에 솔방울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등산로가 여기 저기 파여 있는데다 먼지가 많이 날려서 아이를 데리고 산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녀석은 간간이 힘들다고 할 뿐 별다른 불평없이 잘 따라준다. 절반쯤 올라왔을 때 배낭에서 귤이랑 음료수를 꺼냈다.

"왜 이케 맛있어요?"

화왕산 억새군락지 사이로 등산객이 지나고 있다
화왕산 억새군락지 사이로 등산객이 지나고 있다김정수
산행하면서 갈증이 난 상태라 그런지 녀석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역시 자연속에서 먹는 맛은 집에서 먹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법이다. 다시 힘을 내어 산을 올랐다. 정상에 거의 다왔을 무렵이다.
"아빠! 추워요. 빨리 집에 가요."

이제껏 잘 따라오던 녀석이 갑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정상에 가까워오자 햇살의 따스함 대신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탓에 힘든 모양이다. 잠바를 벗어서 입혀 주고는 이제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잠바를 입히니 신발만 간신히 보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옷속에 숨어버렸다.

거의 2시간 만에 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왔다. 드넓은 능선에 억새가 바람에 하늘대며 춤을 추고 있다. 마치 하늘을 보고 비질을 하는 듯하다. 억새의 비질에 하늘이 밀려 올라가서 가을하늘이 더 높아진 것은 아닐까? 이 일대에서 드라마 <왕초>, <대장금>, <서동요>를 촬영했으며 영화 <조폭마누라>도 찍었다.

잠시 아들을 억새밭 한 편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었다. 연인이 어깨동무를 한 채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슈퍼모델 못지않게 아름다워서 억새와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화왕산 억새군락지의 연인
화왕산 억새군락지의 연인김정수
대구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들이 인해 억새밭이 한결 생기가 돈다. 마음 같아서는 좀더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지만 이미 아들 녀석과 50m 가까이 떨어진 상태라 서둘러 올라갔다.

아이는 피곤한지 얌전히 앉아 있다. 아들녀석의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그래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김치하고 멋진 포즈를 취한다. 옆의 분에게 부탁해서 같이 찍기도 했다. 다시 안고 이동해서 사진 몇 컷을 더 찍고는 정상으로 올라갔다.

757m의 정상에 섰다. 억새밭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눈부시다. 정상 앞에 앉혀 놓고 녀석의 사진을 찍었다. 날씨가 쌀쌀한데다가 내 잠바를 걸친 탓에 V자를 그려 보이지는 못하고 김치만 외친다. 태어나서 만 3년 만에 처음으로 올라오는 산 정상이라 녀석이 그렇게 대견해 보일 수가 없다.

시계는 이미 3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려가는 일이 더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내려가는 도중에 녀석이 잠이 들 것만 같았다. 혼자라면 환장고개 코스로 내려오겠지만 할 수 없이 안전한 도성암 쪽으로 내려섰다.

억새군락지에서 폰카로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
억새군락지에서 폰카로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김정수
아니나 다를까 하산을 시작한 지 20분도 안되어 아이는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아이를 안고 내려오는 일은 두 배로 힘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30여 분 지나 잠에서 깼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님이 집에 가버리면 늑대가 나타나서 잡아먹을지도 모르니까 빨리 내려가자."
"아빠가 늑대 잡아먹으면 되자나요."

역시 못 말리는 녀석이다. 이 말에 산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내내 '추워요' 하며 힘들어 하면서도 한 번도 울지 않고 잘 따라다니더니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병찬이는 못 말려요."
"짱구는 못말려요. 아빠도 못말려요."

녀석은 끝까지 지지 않는다. 힘든 산행이었지만 녀석의 이런 재치 때문에 같이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안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녀석과의 아름다운 동행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쭈욱~

화왕산 정상에서 필자의 옷을 걸치고 포즈를 취한 아들의 모습
화왕산 정상에서 필자의 옷을 걸치고 포즈를 취한 아들의 모습김정수
◇ 교통정보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온 다음 중부내륙(구마)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창녕IC를 빠져나온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창녕읍내로 들어가서 화왕산 이정표를 따라가면 자하곡매표소가 나온다.

대중교통
영신버스터미널에서 창녕여종고행 시내버스를 타고 창녕여종고에 내려서 10분 정도 걸으면 자하곡매표소에 도착한다. 문의 : 창녕영신버스 055-533-4221~2

덧붙이는 글 | 11월 여행 이벤트 응모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며, CJ케이블넷 경남방송 리포터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도 출간되었다.

덧붙이는 글 11월 여행 이벤트 응모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며, CJ케이블넷 경남방송 리포터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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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로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금오산 자락에서 하동사랑초펜션(www.sarangcho.kr)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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