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쑤고 청국장 만들어도 콩이 남네

겨울 문턱에서 콩을 삶다

등록 2005.11.30 15:25수정 2005.11.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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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
며칠 동안 청국장을 만들었다. 잘 띄운 청국장을 냉장고에 뭉쳐 넣고 나머지는 모두 꼬들꼬들하게 말렸다. 여름이 시작될 때 심었던 콩이 이제 청국장과 메주로, 그리고 아궁이 불 프라이팬에서 향기롭게 굽혀 일생을 마감하고 있다. 싸리 채반지에서 잘 마르고 있는 청국장을 보며 콩의 일생을 떠올려 본다.


비가 온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 전날 허리를 두드려가며 엎드려 콩을 심었다. 잡초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콩 모종을 길러 옮겨 심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직파를 했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밭이랑을 떼굴떼굴 구르는 콩을 집어다 달래가며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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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심었던 콩을 가마솥에 삶다보면 문득 고향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들큰하게 콩 삶는 냄새가 집안에 꽉 차 오르면 그 옛날 향수어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어머니가 집어주는 삶은 콩을 한줌 먹다보면 너무 맛있어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다 끝내 설사를 하고 말던 기억.

청국장뿐 아니라 모든 콩 음식은 삶을 때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콩을 물에 서너 시간 불렸다가 삶는데,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줄여서 몇 시간을 더 삶는다. 콩국수를 할 때는 끓는 순간 불을 꺼야 하지만 메주나 청국장을 만들 때는 손가락으로 쥐어봐서 콩이 완전히 뭉개질 때까지 삶되 절대 넘치거나 타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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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을 말려서 먹으면 좋다. 채반지에 널기 전에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살짝 넣어 버무려 말리면 좋은데 그늘에 말려야 먹기 좋다. 너무 말리면 딱딱하다. 가루를 내서 물에 타 먹기도 하는데 식성 따라 먹을 수 있지만 빻지 않고 그냥 먹는 게 더 좋다. 딱딱한 음식을 꼭꼭 오래 씹어 먹는 것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아랫목에서 청국장을 띄울 때 대 소쿠리 밑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삼베를 펼쳐 놓고 삶은 콩을 담아 이불을 덮어두면 이틀쯤 될 때 콩이 뜨기 시작하면서 열도 많이 난다. 일주일이면 발효가 다 끝난다.


전희식
사실 콩 농사에서 제일 힘든 공정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잡티 가리기다. 주로 밤에 작업이 시작되는데 밥상 위에 펼쳐 놓고 잡티를 가려낸다. 이 사진은 서리태를 가리는 작업이다. 콩 속에 섞은 다른 종류의 콩도 가려야 하고 설익은 콩도 가려내야한다. 집에서 먹을 것이라면 다른 콩들이 좀 섞여 있어도 괜찮지만 팔 콩은 그럴 수 없다. 물론 체에 치고 선풍기로 검불을 다 날려도 마지막 이 공정은 꼭 거쳐야 한다.

전희식
올 해는 콩이 하도 많아 맥주도 한잔 해 가며 콩을 가렸는데, 무엇보다 아궁이에 프라이팬으로 콩을 구워먹으면서 콩을 가렸더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할 수 있었다. 프라이팬에 메주콩은 물론 약콩과 서리태, 그리고 콩나물 콩까지 섞어서 볶았는데 땅콩 생각이 나서 캐다 놓은 땅콩 자루를 열고 까 넣어 볶았더니 맛이 그만이었다. 나중에는 현미도 한 줌 넣어서 같이 볶아 먹었다. 간식으로 먹기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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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콩을 네 종류를 심었는데 메주콩(노란콩)을 제일 많이 심었다. 곱게 밭을 갈고 골에다 콩을 심었다. 콩 잎이 서너 개 날 때면 잡초도 뒤질 새라 불쑥불쑥 자라는데 이때 두둑을 괭이로 득득 긁으면서 콩 포기를 덮어주면 풀을 없앨 수 있다. 문제는 햇볕이 쨍쨍한 날 낮에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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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태를 심었던 밭은 애석하게도 때를 놓치고 비를 서너 번 맞혔더니 콩밭인지 풀밭인지 엉망이 되었다. '풀밀어' 기계를 가져가서 밀었는데 풀이 너무 자라 힘이 몇 배나 더 들었다. '풀밀어'로 민 다음 두 주 후쯤에 풀을 한 번 더 매 줬다.

콩은 한 뼘쯤 자랐을 때 순을 한 번 따 주고 다시 콩가지가 벌어서 꽃이 피기 직전에 한 번 더 순을 잘라 줘야 줄기가 안 뻗고 콩이 조랑조랑 많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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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 타작을 한꺼번에 하려면 힘이 부치지만 콩을 심을 때부터 한꺼번에 심지 않고 며칠 간격으로 심었고 또한 콩을 베는 것도 며칠 간격으로 베었기 때문에 콩 타작도 여러 날 나누어서 했다. 처음에는 살살 때리다가 겉 콩이 대충 떨어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도리깨를 힘껏 두드려 속 콩이 다 털려 나오게 한다.

도리깨 질은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한다. 한쪽으로만 하면 밤에 자다가 어깨가 빠지는 것 같은 통증을 만날 수 있다.

전희식
원래 들에서 부는 바람에다 콩을 날려야 하는데 산골마을에 부는 바람은 한쪽 방향으로만 불지 않는다. 산골짜기로 들어 온 바람이 이리저리 휘젓는 식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선풍기를 돌린다. 선풍기는 바람을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전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 편치 않다. 선풍기로 부치기 전에 먼저 얼기미로 흙이나 모래, 또는 콩깍정이들을 다 걸러낸다.

전희식
콩을 여러 자루 했다. 메주 쑤고 청국장 만들고 제법 남았다. 청국장이 잘 팔리면 청국장을 더 만들 생각인데 직접 청국장 만들어 먹겠다고 생콩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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