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18회

등록 2005.12.01 08:41수정 2005.12.0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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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7 장 건곤일척(乾坤一擲)

사신을 살해한 행위는 곧 전쟁을 의미한다. 더구나 호전적인 성격의 영락제가 이를 용납할 리 없는 일. 오히려 기다렸던 사건이었는지 몰랐다. 언젠가 달탄을 정벌할 계획을 가진 영락제로서는 이 사건을 기화로 달탄 정벌을 공표했다.


최초에는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자신이 직접 친정(親征)할 계획을 세웠지만, 조신(朝臣)들이 아직 안정되지 못한 정국을 이유로 반대의견을 건의하면서 친정을 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렇다고 정벌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사신 살해에 대해 응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달탄을 비롯 원의 후예들은 중원에서 쫓겨 가기는 했지만 항상 중원 대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중원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사실 원이 멸망한 것은 외부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내부의 분열로 인한 것이었다. 본래 광활한 초원에서 태어나 초원에서 지내는 몽고족은 한 군데 머무는 일이 드물었다. 부족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먹는 것이 문제였기에 흩어져 사는데 익숙한 민족이었다.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분열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만약 다시 초원의 영웅이라도 태어나 아직까지 중원에 대한 열망을 가진 모든 부족들을 통일한다면 언제든지 중원으로 향할 민족이 몽고족이었다. 영락제 자신이 황위에 오를 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군병이 바로 원의 패잔병으로 자신이 휘하로 거두어들인 몽고족의 기마대였다. 그런 연유로 그들의 용맹성과 민첩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영락제는 고민 끝에 달탄을 정벌할 장수를 지목했다. 안휘성(安徽省) 봉양현(鳳陽縣) 출신인 구복(丘福) 대장군이 바로 그였다.

기국공(淇國公) 구복(丘福). 그는 매우 특이하게 무장(武將)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군문에 병졸(兵卒)로 들어갔는데, 병졸의 신분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각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장군이 된 입지전(立志傳)적인 인물이었다.


득세하던 개국공신들이 모두 태조 주원장에 의해 제거되고, 더구나 그 뒤를 이었던 대장군들도 정난의 변에 의해 희생되자, 영락제가 즉위한 첫 해에 구복은 기국공(淇國公)에 봉해졌고, 곧 중군도독부(中軍都督府) 좌도독(左都督)에 임명되었다.

영락제는 이번 달탄 정벌을 위하여 기국공 구복을 정로대장군(征虜大將軍)으로 임명하고 정병 십만(十萬)을 주었다. 사신 일행을 살해하고, 대명에 뚜렷하게 적의(敵意)를 보이고 있는 달탄부(韃靼部) 본아실리(本雅失理)를 정벌하는 군 병력으로서는 대군(大軍)이라 할만했다. 시작된 초원의 우기가 지나기를 기다려 출정을 할 터였다.


전쟁을 수행하는데는 병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군량미(軍糧米)와 병기(兵器), 화약과 군수물자를 준비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전쟁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되는 것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었다.

이득을 보는 자들은 바로 산서상인들이었다. 막대한 군량미와 의복 등 군수물자, 병기 등을 납품하여 돈을 벌어 온 산서상인들은 또 다시 이 전쟁으로 인하여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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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당의 도는 단순한 듯 했지만 치명적이었다. 다양한 변화나 화려함이 배제된 대신 상대를 베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기쾌했다. 몸놀림 역시 눈에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다. 하지만 느리다가는 섬광처럼 빠르고, 빠른 듯 하다가 단순하게 찔러오는 속도의 변화는 갈피를 잡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당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하수들의 견해일 뿐이었다. 다양한 변화가 극히 배제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절제되어 있을 뿐이었다. 언제라도 기회만 온다면 누구보다 훨씬 다양한 변식을 펼칠 수 있었다. 상대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강명의 검은 화려하다고 할만했다. 끊임없이 유성우(流星雨)와 같은 불꽃을 일으키며 허공을 수놓았다. 위맹한 힘이 실려 있어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도 고막을 찢을 듯 했다. 확실히 섭장천의 성하구구검을 배웠으되 그것과는 달랐다.

펼쳐지는 검초(劍招)의 시원스러움과 거침없는 동작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더구나 무서운 것은 그 화려한 유성우 속에서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암검(暗劍)이었다. 그것은 그 어느 것보다 더욱 치명적이었으며 무서웠다.

장장 두 시진을 넘게 끌어 온 혈투였다. 자시(子時)가 지나 시작된 혈투는 동녘이 밝아오고 있을 묘시(卯時) 말에야 중원최고의 검과 도라고 자부하는 두 사람의 승부가 결정되고 있었다. 서로 모험을 했다면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당한 승부를 원했을 뿐 아니라 승부 자체를 즐겼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벌이는 대결이었지만 승부를 하는 그 시간은 그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줄 정도로 열락의 시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일생을 통해 한 번만이라도 찾아오길 바라는 그러한 기회였다.

“최고로군… 최고의 검이었어….”

반당은 애써 웃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사람의 몸이 무쇠로 만들어졌다 해도 버티지 힘든 시간이 흘러버렸다. 수백 초를 넘긴 혈투에서 단 한 번도 완전한 승기를 잡아보지 못했다. 고수의 대결에 있어서 한 순간의 방심은 곧 승부와 직결되는 터. 최선을 다했으나 분명 자신보다 상대가 강했다. 아마 상대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이리 오래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전신에 일곱 군데의 상처를 입어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불꽃 속에 숨어있는 강명의 마지막 암검은 그의 심장을 갈라버렸다.

“반선배의 도 역시 처음 경험해 보는 무서운 것이었소.”

행색은 강명도 다를 바 없었다. 그 역시 네 군데나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 운이 좋았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강명이 우위에 있었다.

“그… 암검… 정말 멋진… 검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심장에서 선혈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반당의 몸은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반당이 패한 것이다. 무적을 자랑하던 철혈보의 일륜(一輪), 일창(一槍), 일편(一鞭), 일도(一刀)라 알려진 사천주 중 일도인 냉혈도(冷血刀) 반당(班堂)이 죽은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혈보로 돌아가며 이 일을 맡겼던 육능풍도, 그 사실을 보고받았던 철혈보의 보주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니 이 사실이 중원에 알려진다 해도 무림인 누구라도 믿지 못할 결과였다.

반당이 패했다는, 그것도 정당한 승부에서 패해 죽었다는 사실보다도 더 큰 파장을 가져올 일은 무적을 자랑하는 철혈보의 네 개의 기둥, 사천주 중 하나의 기둥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그것은 이백년 간 중원 최고의 문파로 자리매김해왔던 철혈보의 패배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

강명은 검을 거두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을씨년스런 바람이 장내를 스쳐 지나가며 피비린내를 풍겼다. 반당의 시신이 놓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원월만도 좌승과 그 수하 네 명의 시신도 피투성이가 된 채 뒹굴고 있었다.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다. 이미 도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달한 반당은 너무 강했다. 고수들의 대결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강명은 미세한 차이로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한 사람은 죽고, 또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 누렸던 위명까지도 얻게 만드는 것이다.

“관을 준비하도록….”

그는 신형을 돌리며 그를 보고 있던 종륜과 항인에게 말했다. 비록 적이었지만 훌륭한 상대였다.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반당의 시신을 보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확실히 이 사당은 관왕묘는 아닌 모양이었다. 관왕묘는 그 가운데 관성제군(關聖帝君)의 상이나 족자가 걸려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가운데는 기이한 상이 놓여 있었는데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인지 아니면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인지 매우 모호한 모습이었다.

그 양옆 벽 쪽으로 매우 많은 상들이 세워져 있거나 부조(浮彫)되어 있었는데 그 모양들이 각양각색이어서 도무지 이 사당이 어떠한 목적으로 세워졌는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한(羅漢)들의 상이나 사대천왕상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고, 심지어 도가의 신선(神仙)의 상이나 아기동자의 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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