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코롬 존 세상에 산디..."

어머니와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길②

등록 2005.12.02 17:52수정 2005.12.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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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주도 땅에 발을 디뎠다. 울 엄마가 무척이나 좋아하고 흐뭇해한다. 물설고 땅 설고 낯선 제주도 땅을 생전 처음 밟아보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아내도 다르지 않다. 여태껏 제주도 땅을 한 번도 밟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모두 모두 설렐 수밖에 없었다.


공항 주차장에는 미리 빌려 놓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로 이틀간 묵을 곳을 향해 내리 달렸다. 처음엔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차 속에서 길 안내를 해 주는 기계가 있어서 그런지 그리 어렵지 않게 그곳까지 찾아 갈 수 있었다.

'소인국테마파크' 안에서 찍은 울 엄마 모습, 한사코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지만 기어코 한 장 한 장 곳곳에서 찍었어요.
'소인국테마파크' 안에서 찍은 울 엄마 모습, 한사코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지만 기어코 한 장 한 장 곳곳에서 찍었어요.권성권
"와따매(우와) 정말로 편한 세상이다이(세상이다)."
"뭐가요?"
"저 기계가 다 갈켜(가르쳐) 주니까야(주니까)."
"아, 이거요. 그렇죠. 좋은 세상이죠."
"돈만 있으면 이러코롬(이렇게나) 존(좋은) 세상에 산디…."
"그런데요…?"
"아니다야(아니다), 혼자서 해 본 말이어야."

아마도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두 분은 정말로 좋은 세상을 구경하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혼자서 편하고 좋은 세상을 구경하고 있으니 못내 미안하고 아쉬웠던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혼잣말로 되뇌었던 것이다.

그날 밤에 불어 닥친 파도 모습이에요. 어찌나 무섭든지 파도에 집도 배도 다 떠밀려 가는 줄 알았어요. 제주도 바다는 정말로 검은 바다였어요.
그날 밤에 불어 닥친 파도 모습이에요. 어찌나 무섭든지 파도에 집도 배도 다 떠밀려 가는 줄 알았어요. 제주도 바다는 정말로 검은 바다였어요.권성권
우리 식구들이 묵을 숙소는 '외도'라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외도'라고 하니 어디 멀리 떨어진 섬 같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제주도 내에 붙어 있는 육지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둘레 밖으로 멀리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엔 파도가 무척이나 거칠고 세게 불어왔다. 그 정도 바람이라면 차가 떠밀려 갈 것 같았고, 지붕도 허물어질 것 같았다.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자다가도 일어나서 차가 그대로 있는지, 지붕이 허물어지지 않았는지 몇 번이고 밖을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이 정도 바람은 우리 신안도 불제."
"그렇죠. 괜한 걱정이겠죠."
"그라먼(그럼) 그냥 맘 놓고 자 부러라(버려)."
"알았어요. 푹 자쇼, 엄마."
"잠깐만아, 이것 챙겨부러라(챙겨 넣어라)."
"뭔 돈이에요?"
"내 몫은 내가 해야제(내야하지)."
"무슨 말이에요. 그냥 넣어 두세요."
"아니어야. 나도 내야 내 맘이 편히야(편해야)."

하는 수 없이 울 엄마가 내민 돈을 나는 받아 넣었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래도 꼬깃꼬깃한 돈을 챙겨서 주는 돈을 막무가내로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울 엄마 얼굴을 생각해 그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반반을 나눴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그 반을 챙겨드릴 생각이었다.


외도 숙소에서 바라본 아침 일출이에요. 멀리 한라산 너머로 성산 일출을 엿보는 듯했어요.
외도 숙소에서 바라본 아침 일출이에요. 멀리 한라산 너머로 성산 일출을 엿보는 듯했어요.권성권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여덟시가 훌쩍 넘었다. 태양은 저 산 기슭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한라산 너머에 있는 성산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 같았다. 아침잠이 없는 울 엄마는 벌써부터 일어났는지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또 태양을 쳐다보기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아침을 먹었을 것이고, 또 일찍 논밭으로 나가서 일도 많이 했을 때였다.

"민주 애미야(엄마야), 아침 안 먹을래?"
"어머니, 배고프셔요?"
"그라믄(그럼) 때가 언젠디(어느 때인데). 아직까지 안 먹어야 쓰겄냐(쓰겠냐)?"
"그럼 된장찌개로 드실래요?"
"아무 것이나 먹으면 어쨌대냐(괜찮다)…."

울 엄마를 위한 여행길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을 더 챙기는 울 엄마였지요.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어요. 또 울 엄마도 그걸 좋아하셨구요.
울 엄마를 위한 여행길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을 더 챙기는 울 엄마였지요.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어요. 또 울 엄마도 그걸 좋아하셨구요.권성권
때늦은 시간에 그렇게 아침을 먹고서 우리 식구들은 곧바로 '소인국 테마파크'로 달렸다. 그곳은 전날 아내와 울 엄마가 입을 맞춘 곳이었다. 나는 아무 곳이나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아내와 엄마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을 가면 세계 유명한 곳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제주공항을 선두로 에펠탑에다, 자유 여신상, 타워브리지, 수원성, 피라미드, 태국 불상, 그 밖에 서울역 등 다양한 볼거리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었다. 실제 크기를 아주 적게 세워 놓은, 꼭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와 파리에 있는 에펠탑 그리고 영국에 있는 타워브리지를 직접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꼭 그 나라에 가서 보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아내와 울 엄마가 이곳 소인국테마파크를 고집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인국테마파크 안에 있는 사람 인형들이에요. 우리 딸 민주가 이 곳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어요. 울 엄마도 이런 우리 딸을 보고 참 좋아하셨지요.
소인국테마파크 안에 있는 사람 인형들이에요. 우리 딸 민주가 이 곳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어요. 울 엄마도 이런 우리 딸을 보고 참 좋아하셨지요.권성권
"이렇게나 좋은 것들이 우리나라에 다 있다 이."
"그렇죠. 세계 곳곳에 있는 것들을 다 모아 놓은 곳이에요."
"그런께야(그러니까). 진짜 이러코롬(이렇게) 생겼대냐(생겼을까)?"
"그렇죠. 그저 크기만 작게 해 놓았을 뿐이죠."
"여기 온께(오니까) 꼭 온 시상을(세상을) 다 본 것 마냥 헌다야(한다)."
"좋아요?"
"그라믄, 안 좋냐?"

한 바퀴를 그렇게 빙 돌고 돌았다. 곳곳에서 기념 촬영도 했다. 그런데 그 한 바퀴 길목이 울 엄마에겐 무척이나 힘든 길이었는지 많이 피곤해 했다. 온 세상천지를 다 둘러 본 것 같은 생각에 기쁨이 일고 또 일었지만 아픈 다리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다음 길목부터는 구경거리가 생겨도 그저 차 속에서만 바라보기로 했다. 울 엄마를 위한 여행길이니, 엄마 걸음걸이에 맞추는 것도 도리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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