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별명은 '거북이'?

기일을 맞아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등록 2005.12.04 12:16수정 2005.12.0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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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2월 3일은 아버지 기일(忌日)이었습니다. 아버지는 1978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아계셨으면 올해로 92세이십니다. 저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조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조카들에게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a 아버지의 유품입니다

아버지의 유품입니다 ⓒ 박희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그것부터 시작하는 거야. 저는 제구(祭具) 상자에서 누런 공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공책은 손수 아버지께서 한지(韓紙)로 만드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유일하게 남겨 놓으신 유품이기도 합니다.

"얘들아, 할아버지께서는 조상님들을 이렇게 기록하셨단다."

아이들이 신기한 듯 공책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한문을 모릅니다. 그런데 공책에는 모두 한문뿐입니다. 저는 첫 장부터 설명합니다.

"이건 기제부(忌祭簿)라는 글자인데, '제삿날을 적어 놓은 책'이란 뜻이란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는 다음 장을 넘깁니다. 한문이 빼곡합니다. 조상님들의 돌아가신 날짜와 산소 위치가 적혀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공책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이 공책이 존재하는 한 할아버지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합니다.


옆에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둘째형님도 한 말씀 하십니다.

"조상님의 제삿날을 기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조상님의 산소를 기억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른 집안에서는 종종 산소를 분실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할아버지가 남겨 놓은 공책 덕분이다."


그러면서 둘째형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a 아버지의 기록입니다

아버지의 기록입니다 ⓒ 박희우

"할아버지께서는 한문을 참 잘 하셨단다. 동네사람들은 할아버지를 '거북이'라고 불렀어. 왜 '거북이'라고 부른 줄 아니? 할아버지 글씨 쓰시는 모습이 꼭 '거북이' 같았단다. 무릎을 꿇고 왼손을 바닥에 받치고 오른손으로 붓을 놀리는 모습이 흡사 거북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렇게 부른 거야."

둘째형님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서 보통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시대를 잘 만났으면 훌륭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20년 가까이 동네 이장을 보셨다. 그만큼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어느새 아이들처럼 저도 듣는 입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몸이 무척 약하셨어. 거기에다 병까지 드셨단다. 집이 하도 가난해서 보약 한 첩 해드리질 못했어.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 너희 큰 고모부가 뱀장어를 잡아온 것이야. 배가 누런 게 무척 오래된 뱀장어였어. 크기는 또 얼마나 컸다고. 그걸 드시고 할아버지께서는 원기를 회복하셨단다."

저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그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유독 키가 작았습니다. 허리도 굽었습니다. 귀까지 먹었습니다. 언제나 기침을 달고 다니셨습니다. 가끔씩 각혈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얘야, 길을 걸을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단다. 옆도 보지 말거라. 옆 눈질도 해선 안 된단다. 몸을 곧추 세우고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단다."

a 제사상입니다

제사상입니다 ⓒ 박희우

저는 아버지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후회뿐이었습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살아왔습니다. 헛된 꿈은 또 얼마나 많이 꾸었습니까. 그런데 말이지요. 그래도 제가 아버지의 피는 제대로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이만큼이라도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가족 모두는 제사상 앞에 섰습니다. 제사상에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살아 생전에 아버지께서 이 음식들을 드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마음이 여간 애잔한 게 아닙니다.

"자, 절을 올리자."

둘째형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두들 옷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경건하게 절을 올립니다. 저는 나지막하게 말합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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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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