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86

심양으로

등록 2005.12.06 17:06수정 2005.12.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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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라! 따르지 않으려거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지 어디서 강짜를 부리려 드느냐!”

장판수의 뒤에서 사내들이 큰 소리를 치며 몽둥이를 든 패들에 맞서 죽 늘어섰다. 그들은 탈주를 시도했다가 잡혀서 처형당할 뻔했던 사내와 그 일행들이었다.


“오호라...... 육서방, 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해줬다고 지금 역성을 드는 것이냐? 그래 다시 도망치면 틀림없이 빠져 나간다는 보장이라도 있는 것이냐?”

“너희들이나 여기서 개돼지 마냥 주는 밥이나 쳐 먹으며 남탐거리(심양의 큰 거리 이름)에서 되놈들 하인으로나 팔려가라! 난 죽어서 혼백이나마 고향으로 갈테다!”

양측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맞붙을 태세였다. 평구로가 칼을 뽑아들어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만두어라. 저기서 지켜보고 있는 청나라 사람들이 비웃을 일이 아닌가?”

묶여있던 청나라 병사들은 평구로가 칼을 든 채 자신들을 가리키자 부들부들 떨었다. 험상 궂은 사내가 썩 나서서 평구로에게 몽둥이로 삿대질을 해대었다.


“어이 말투 이상한 늙은이! 당신도 저들과 같은 패거리라고 칼을 들고 설치는 모양인데 조용히 물러가시지!”

순간 평구로의 칼이 바람을 갈랐고 사내가 든 몽둥이는 그의 손아귀에서 짧은 자루만 남긴 채 잘려서 바닥에 툭 떨어졌다. 모골이 송연해진 사내는 입을 딱 벌린 채 재빠르게 칼을 집어넣는 평구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아 있을 사람은 남아 있으라우! 내래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강제로 끌고 가진 않갔어!”

사내 중 하나가 몽둥이를 놓으며 말했다.

“이런 젠장...... 여기 있어 봐야 우리도 한패로 몰릴 텐데 한번 가보기나 하자고! 우리야 운이 좋아 심양 밖에 있지 심양 안으로 들어가면 성문을 뛰어넘는 재주가 없는 한 천금이 있어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가다가 잡혀도 위협 때문이었다고 할 말은 있잖아.”

장판수는 그 말을 애써 탓하지는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 조선으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알기에 막상 떠날 채비가 된 사람들도 망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 사람들은 삼백은 족히 되오. 요행이 병사들의 추적을 피한 다 해도 가는 도중에 굶어죽을 염려도 있소이다. 이곳에 있는 먹을 것을 박박 긁어먹어 모아보아도 이틀이면 동이 날 것이오.”

도주로 인해 끌려와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자들 중에서, 평양에서 포로로 잡혀 심양까지 끌려오게 되었다는 육태경이 마을의 사정에 대해 설명해 주자 장판수의 염려는 커졌다.

“하지만 방법이 있소. 이 가까이에 식량창고가 있는데 그곳을 기습하여 식량을 가져가면 의주까지 당도할 수 있을 것이외다.”

“허! 여긴 제 몸 하나 건사 못할 사람들뿐인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오?”

짱대가 혀를 내두르며 한숨을 짓자 육태경이 코웃음을 쳤다.

“돌을 던져 사람을 구하던 기백은 어디 간 것이오? 그곳은 사실 방비가 취약하오. 사람들을 몰아서 달려간다면 그곳을 지키는 수 십 명의 병사들로는 막아낼 수 없을 것이외다.”

“그래 한번 해보자우! 하지만 노약자와 아녀자들까지 갈 필요가 있갔어? 앞서 보낸 후에 사람을 추려 뽑아 가자우. 그런데 누구를 딸려 보내지?”

그때까지 장판수의 가까이에 있던 계화가 나섰다.

“그건 제게 맡겨 두세요. 길을 아옵니다.”

짱대가 계화를 보며 어딘지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장판수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좋아! 장정들을 모아보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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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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