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인권의 재발견

2005 인권전 '그 속에 내가 눕다', 13일까지 조흥갤러리에서 40여점 전시

등록 2005.12.07 13:31수정 2005.12.0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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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노동의 권리,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누릴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세계인권선언)

a 달력, 2005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다큐멘터리로 엮은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사진은 네팔 이주노동자 라디카씨의 다락방 생활 (양철모 작)

달력, 2005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다큐멘터리로 엮은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사진은 네팔 이주노동자 라디카씨의 다락방 생활 (양철모 작) ⓒ 양철모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은 언제나 '기타 국민'이다. 여기에 비정규직노동자, 계약직노동자,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주변부 인생이 있다. 이들에게 국제인권기준은 호사스러운 사치다. 더욱이 사회적 배제와 양극화가 구조화되면서 이들의 꿈과 희망도 경제성장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 흩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인권 현주소를 되돌아보고 해법을 고민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소개한다. 세계인권선언 57주년을 맞아 인권시민단체 새사회연대가 주최한 '오늘의 인권전-그 속에 내가 눕다'가 그것. 6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광화문 조흥갤러리에서 계속된다.

올해 인권전의 주제는 '일하고 쉴 권리'. 인간은 스스로 노동하고 발전하는 존엄한 존재임을 깨치자는 뜻을 담았다. 인효진, 강홍구 등 11명의 젊은 작가들이 힘을 불어넣고 있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조흥갤러리에 가면 사진과 그림, 다큐멘터리 영상물 등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는 받지 않는다.

a 노숙인 L씨 우리 사회에 더 이상 기막힌 풍경이란 없다. 그저 평범한 길거리의 일상들이고 장면일 뿐이다 (Area Park 작)

노숙인 L씨 우리 사회에 더 이상 기막힌 풍경이란 없다. 그저 평범한 길거리의 일상들이고 장면일 뿐이다 (Area Park 작) ⓒ Area Park

주최 쪽은 "오늘의 인권전은 세계인권선언일을 기념하면서 예술가의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현실을 돌아보고 일할 권리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미학적으로 해석, 이를 통해 인권 친화적인 변화 방향에 대해 공감을 나누고자 기획됐다"고 밝혔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20세기 혁명가 체 게바라는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고 갈파했지만 이제 그 말에 대한 공감을 철회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곤란은 영속되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회는 꿈이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확인하고 스스로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인권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사회적 연대가 꼭 필요한 사회 약자들의 삶에 주목하며 "언제까지 이 모순된 현실을 두고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실천을 우리 사회에 호소하고 있는 것.


작가 이제씨의 유화 '그 안에 눕다'는 한강둔치의 일상 풍경을 통해 잊고 사는 우리의 인권 현실을 일깨우고 있다. 금방이라도 물감이 번질 것 같은 캔버스에는 오후의 햇살이 가득하다. "문득문득 숨겨진 인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작가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풍경의 발견, 그런 것이 인권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a 그린벨트-공터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생적 공간이 제도적 놀이공원으로 되면서 자유롭게 쉴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강홍구 작)

그린벨트-공터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생적 공간이 제도적 놀이공원으로 되면서 자유롭게 쉴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강홍구 작) ⓒ 강홍구

도시 변두리의 놀이 공원을 카메라에 담은 강홍구 작가의 '그린벨트-공터'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다. 작가는 태초에 있었던 자생적 공간이 놀이 공원화 되면서 자연이 주는 서정이 파괴된 것에 분개하고 있다. 자연 생태 환경운동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운동이라는 주장이 엿보인다. "성미산이나 대모산 같은 야산을 지키려는 싸움도 결국에는 인권운동"이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듯하다.


'달력, 2005'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초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작가 양철모씨가 1년여의 공을 들여 완성한 다큐멘터리다. 14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라디카씨, 한국정부에 난민신청을 한 버마 이주노동자들, 한국인 아내를 얻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라붑씨.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작가는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러한 편견과 차별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a 계약직 노동자의 자화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계약직노동자 손씨' (손성진 작)

계약직 노동자의 자화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계약직노동자 손씨' (손성진 작) ⓒ 손성진

꼬이고 얽히고 어긋나기만 한 인생. 손성진 작가는 조직 사회에 환영받지 못하는 한 계약직노동자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캔버스에 담아냈다. 작가는 현저하게 부족한 머리칼과 적지 않은 나이가 조직사회에 적응하는데 태생적으로 불리한 환경이 되는 외모 지상주의 풍조를 비판한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가족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의 인권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우리가 힘없는 사람의 인권에 더 주목하는 것은 그들에겐 자신의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힘도 자본도 없기 때문이다."

이원정 작가와 함께 '아주 사소한 것들, 하찮은 것들'이라는 제목의 52분짜리 싱글채널 비디오를 공동출품한 김선주 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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