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몇 달새 '참고인'서 '피의자'로 바뀌어졌다"

검찰, 불구속 기소 방침... "X파일 국민적 의혹 이렇게 넘어가나"

등록 2005.12.08 14:47수정 2005.12.0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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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옛 안기부 도청테이프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가 지난 8월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조사에 응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옛 안기부 도청테이프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가 지난 8월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조사에 응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안기부의 도청테이프와 녹취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이상호 MBC 기자가 8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전날(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최근 심경을 밝히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이 기자는 자신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이 정해진 것과 관련 "불과 몇달 사이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달라져 있더라"며 "사회적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린 사이 삼성 비자금과 검찰로비 등 숱한 국민적 의혹은 이렇게 넘어가기로 한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홍석현 전 주미대사나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은 무혐의나 불기소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이건희 회장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지 오래"라며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앙일보>는 어느새 '황우석=국익=이건희' 공식을 들고 되치기 한판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로서 X파일 아젠다를 끝내 지켜내지 못한 책임이 어깨를 짓누른다"면서, 'X파일' 취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상황을 떠올린 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았기에 딴에는 짐짓 비장했던 그날의 각오가 새삼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기자는 또 최근 '황우석 논란'과 관련 MBC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한 것에 대해 "분노한 네티즌들이 인혁당 사건 조사결과마저 'MBC 살리기 위한 물타기', '노빠의 불끄기' 라며 맹렬히 비난하는 걸 보면서 이내 익숙한 절망과 조우했다"라며 "상식적인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속에 던져지지 못한 질문은 혀를 굳게 하고 안으로 안으로 삭아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록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남의 질문이 들릴 수 있도록 내 목소리를 낮춰주는 것이 민주시민의 최고 덕목인데 지금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사방에 고함과 욕설이 난무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떡값 검사' 폭로한 노회찬 의원 등도 소환 예정


한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안기부의 도청테이프와 녹취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이상호 MBC 기자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국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호 기자는 지난 7월 21일 안기부 'X파일' 보도 이후 지난 8월 5일 첫 소환된 데 이어 8일 오전 두번째 소환돼 1시간여동안 조사를 받았다. 첫 소환 당시에는 참고인 신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사법처리가 가능한 피의자 신분이다.


이 기자의 변호인은 "검찰로부터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편집국장이 도청테이프 내용을 보도한 것과 관련 불구속 기소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기자를 상대로 재미교포 박인회(구속)씨에게서 도청테이프 1개와 녹취보고서 3건을 제공받은 뒤 불법 도청 자료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테이프 내용을 보도한 경위 등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검찰은 또 "<월간조선> 편집국장을 조만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월간조선>은 지난 9월호에서 안기부 도청테이프 녹취록과 요약보고서의 전문을 게재했는데 여기에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전 <중앙일보> 회장)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의 대선자금 제공 관련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김연광 편집장은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공표에 관하여 우월한 공공의 이익이 있거나 그 공표가 공적인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더구나 헌법에 보장된 독자의 알 권리 충족이 언론의 존재이유라는 판단에 따라 'X파일'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은 안기부 도청테이프에 삼성 측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거론된 전ㆍ현직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했던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도 다음 주 중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노 의원 측과 출석 날짜를 조율하고 있다.

검찰은 또 2002년 대선 직전 국정원 도청 문건을 폭로한 한나라당 김영일ㆍ이부영(현 열린우리당) 전 의원에 대해 13일께 출석토록 서면통보를 하기로 했다. 두 전직 의원은 그동안 두 차례에 걸친 검찰의 구두 소환통보에 불응해왔다.

"인혁당 사건 조사결과마저 'MBC 살리려는 물타기'라고 비난하다니"

다음은 이상호 기자가 7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이다.

'인혁당 사건'의 진실이 오늘 결국 빛을 보았습니다. 30년만의 일입니다. 지난 어둠의 시절, 가슴속 깊은 곳 내내 진한 그늘로 남아있던 그 곳에도 한줄기 진실의 빛이 비춰졌습니다. 그 곳엔 ‘추악한 시대의 야만'이 그득했습니다.

눈먼 재판부의 엉터리 판결이 있었고 불과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어 버렸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살인집단'으로 전락했고 이성의 힘은 종언을 고했습니다. 예상대로 전격적 처형의 배후에 독재자 박정희의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반복되는 역사의 허탈함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국민포털' 네이버에 오른 인혁당 관련 기사를 읽고나서 언제나 처럼 댓글을 열어봤습니다. 그리곤 이내 익숙한 절망과 조우합니다. 분노한 네티즌들이 인혁당 사건 조사결과 마저 'MBC 살리기 위한 물타기', '노빠의 불끄기'라며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속에 던져지지 못한 질문은 혀를 굳게 하고 안으로 안으로 삭아들어갑니다. 그리곤 결국 우리의 내일을 어둡게 만듭니다. 역사의 발전이란 아무리 하찮은 질문이라도 던져질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지켜내기 위한 합의의 과정이었습니다.

비록 나와 생각과 다르더라도 남의 질문이 들릴 수 있도록 내 목소리를 낮춰주는 것이 민주시민의 최고 덕목인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방 고함과 욕설이 난무합니다. 농민이 맞아죽어도, 역사가 후퇴하고 가짜가 판을 쳐도 관심조차 없습니다. 창밖엔 빈틈없이 완성된 겨울이 얼음장처럼 빛납니다.

내일 오전 저는 검찰에 출두합니다. 저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불과 몇달 사이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달라져 있더군요. 사회적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린 사이 삼성 비자금과 검찰로비 등 숱한 국민적 의혹은 이렇게 넘어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수사도 도청 자체에 집중되는 바람에 X파일의 내용 쪽으로는 한발짝 진전이 없었습니다. 결국 홍석현 전 대사나 이학수 비서실장은 무혐의나 불기소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이건희 회장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지 오랩니다.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앙일보>는 어느새 '황우석=국익=이건희' 공식을 들고 되치기 한판을 시도하고 있군요.

그래도… 각오했던 길이기에 피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로서 X파일 아젠다를 끝내 지켜내지 못한 책임이 어깨를 짓누릅니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각입니다. 그동안 철없는 제 행동과 부질없는 기사 몇 줄 때문에 상처 받으신 분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특히 몇몇 분들께는 인간적으로 죄송한 마음도 금할 수 없습니다. 조용한 때가 오면 한 분 한 분께 소주 한잔 따라 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벌써 일년이 지났군요. 작년 12월 이맘때, X파일 테잎을 구하러 미국으로 떠날 무렵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몰라 그 땐 짐짓 비장했었습니다. 그 일로 일년 내내 참 많은 눈물을 버텨내야 했고, 참 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 고생하기도 했었지요.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낙담하지 맙시다. 제법 살다보니 봄에 대한 확신이 들더군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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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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