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내게 들어와 그 아이를 죽였다"

[해외리포트] 페루남성 일본여아 살해사건으로 양국 긴장

등록 2005.12.14 13:52수정 2005.12.14 17:36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1월 말 히로시마에서 발생한 페루인 남성의 일본여아 살해사건으로 일본-페루 양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일본에 경제의존도가 높은 페루 당국과 페루 국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페루인 남성 일본여아 살해사건

a 키노시타 아이리양의 사체가 든 박스가 발견된 장소(검은 시트가 깔려진 부분).

키노시타 아이리양의 사체가 든 박스가 발견된 장소(검은 시트가 깔려진 부분). ⓒ 츄고쿠 신문

지난 11월 22일 히로시마시의 한 소학교 1학년인 키노시타 아이리(7)양은 오전수업을 마친 뒤 귀교하다가 실종, 3시간 만에 자동차관련 공장 밀집 지역인 아키구(安芸区)의 허름한 창고건물 옆 공터에서 가스레인지 상자에 담겨 목 졸려 버려진 채 발견됐다. 학교와 집 사이의 중간지점이었다.

오후 3시 경, 아이리양은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되어 곧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사망해 있었다. 이어 사건 발생 8일 뒤인 11월 30일, 히로시마켄 경찰은 아이리양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페루인 남성 카를로스 피사로 야기(30)를 체포했다.

카를로스 야기는 사건당일 오후 1시경에 아이리양과 얘기하는 것을 목격한 주민들의 제보로 체포됐으나 "알리바이가 있다"며 범행일체를 부인하다가 12월 2일, 아이리양의 상의에서 그의 체액(땀) DNA가 발견되자 "악마가 내게 들어왔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가 죽어있었다"며 범행일체를 자백한 상태다. 그러나 왜,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계속 횡설수설 하고 있는 상태다.

이 가운데 5일, 당초 일본계 3세 페루인이자 일본 정주권자로 알려졌던 그가 위조여권 소지자였음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일본-페루 양국의 문제로 확산됐다. 피사로는 일본계 3세가 아닌 것은 물론, 본국인 페루에서 다수의 성폭행 전과(92년~94년간 성폭행 미수 3건)가 있으며 본명도 호세 마누엘 토레스 야케(33)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외국인 출입국 관리 허점과 페루 리마에서 흔하게 거래되고 있는 여권 위조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된 것. 그는 현재 페루 리마에 아내와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한편, 호세 야케의 위조여권 때문에 발칵 뒤집어진 일본국 출입국 관리국은 외국인 출입국 심사를 보다 강화하기로 방침을 세우는 등 일본 내 외국인 사회에도 긴장이 확산되고 있다.


재일 페루 인에 의존하는 페루경제 '흔들'

a 일본여아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페루인 호세 마누엘 토레스 야케가 12월 13일 히로시마 간이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일본여아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페루인 호세 마누엘 토레스 야케가 12월 13일 히로시마 간이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 츄고쿠 신문

페루인의 일본여아 살해사건이 알려지면서 페루공화국과 일본 내 페루인들의 긴장도 높아졌다.


페루 유력지 <코멜시오>의 도쿄 특파원인 마리오 카스트로 기자는 <마이니치신문> 11월 30일자에서 "페루인들에겐 폭탄 같은 쇼크다"라며 "약 5만5천명의 재일 페루인들 사이에서 일본사회로부터 배척당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페루의 국가경제는 일본 내에서 각종 3D업종에 종사하는 페루인들이 1인당 평균 500달러씩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5만5천의 페루인들이 페루공화국 전체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이런 상황에서 일본 사회로부터 페루인이 배척되는 현상이 일어나면 페루 본국에도 사회적, 경제적인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카스트로 기자는 "용의자 체포 뉴스가 나간 후 아파트를 찾고 있던 친구가 다 결정되었던 임대계약을 부동산업자로부터 거절당했다"며 이런 케이스가 계속 될 것을 우려했다.

후지모리와 호세 야케, 두 전과자 때문에

페루공화국은 인구 2754만의 다인종국가로 남미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일본과는 100년도 넘는 교류역사를 갖고 있다. 1873년 일본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무역 및 문화교류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페루 내에 약 8만 명의 일본계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2004년 현재 일본교민 수만 1627명이다.

그러나 대정부테러조직과 마약조직 등이 번성해 국민대다수는 빈곤과 마약, 테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가운데 1990년 일본계 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페루인들의 일본 경제의존도도 높아졌으나 2000년,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불명예 실각으로 두 나라 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다. <박스 참조>

일본계 페루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대통령

▲ 칠레를 향해 출국하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마이니치 신문 12월 7일자.

일본-페루 양국은 1899년 790여명의 일본인이 배를 타고 건너와 페루에 정착한 이래 100년 넘는 교류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페루로 건너간 일본인들은 이민 2세대, 3세대를 거쳐 현재 4세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페루 정치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계 페루인인 후지모리의 대통령 당선은 일본과 페루의 오랜 역사가 가져온 결과였다.

1938년 페루의 수도 리마 출생에서 출생한 일본인 이민 2세인 후지모리(66)는 1990년 미국과 일본의 지지에 힘입어 페루 대통령에 당선됐다.

후지모리는 당선 후 "의회 안에 마약재배와 테러리즘에 의해 이익을 챙기는 무리가 있다"며 의회를 압박, 폐쇄(92년)시키기까지 하면서 마약 재배와 테러를 대폭 감축시키는 강압정치를 폈다. 또 점점 미국의 간섭에 맞서기도 했다. 그 대가로 독재정권으로 낙인찍혀 미국 부시정권으로부터 모든 원조를 동결 당했으나 국민 대다수의 지지에 힘입어 1995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 재선 대통령이 됐다.

이어 2000년 3선에 성공했지만 그해 11월, 무기 구입에 따른 국방성의 뇌물 수수를 둘러싼 부정이 발각됐다. 여기에 특정기업 지정 뇌물 수수를 비롯한 20여건의 이상의 죄목으로 소추되자 이를 피해 2000년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지난 11월 7일, 칠레에서 체포돼 구속된 상태다.
일본에 경제적 의존을 하고 있는 페루공화국이지만 일본 여아 살인사건 이전만 해도 페루정부는 전 페루 대통령이었던 일본계 2세 알베르토 후지모리(66)의 신병인도 문제 등으로 일본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90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페루 대통령을 지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000년 4월, 3선에도 성공했으나 그해 11월 재임 시의 독재와 부정이 발각되면서 실각, 구속 직전 일본으로 망명한 바 있다.

일본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일본국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망명을 받아들였고, 페루측은 20여 가지의 죄목으로 국제수배중인 '범죄자'를 감싸고도는 일본에 시위 및 주일페루대사 소환 등으로 맞서며 신병인도를 요구해왔다. 그런 와중에 후지모리가 내년 4월에 있을 페루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지난 11월 7일 칠레에 입국했다가 인터폴에 의해 체포, 구속됐다.

후지모리가 구속된 지 1개월여가 지난 최근까지도 와이즈먼 페루 부통령은 일본과의 외교단절을 표명할 정도로 강경한 자세를 보여 왔으나 이번 사건으로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번 호세 야케의 일본여아 살해사건은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페루에 설상가상의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3. 3 방치된 폐가였는데 이젠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방치된 폐가였는데 이젠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4. 4 일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관계일까 일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떤 관계일까
  5. 5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