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연날리자"

추위도 세찬 바람도 없었습니다

등록 2005.12.15 18:02수정 2005.12.19 10:02
0
원고료로 응원
기말고사도 끝난 대안학교의 교정에선 벌써부터 겨울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기대와 설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학식, 입학식 등 시작을 알리는 학교 행사를 치른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한 해가 마치 흐르는 물처럼 가 버렸습니다. 어느새 가버린 세월. 그것이 어찌 올해 뿐이겠습니까. 우리 일생도 그리 빠르게 지나가지 않던가요?

옛날 불교의 한 선사는 늘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 선사가 열반한 후에 제자들이 "스님께선 열반하시고도 바쁘실까?" 하고 웃었는데 문득 허공에서 "그럼, 바쁘지, 안 바빠?"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웃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지만 바쁘게 공부한 그 선사는 그렇게 영통하였음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짧은 세월, 수염에 불붙은 듯이 머리에 불난 듯이 다급하게 공부하라 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어쩌면 게으르게 살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가르치고 지식 중심 교육에서 생활교육을 지향하다보니 치열한 외우기 경쟁과 점수 따기 경쟁이 없기 때문이지요.

대안학교는 겉으로는 한가로운 듯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광범위하고 느슨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숙사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기숙사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들을 교육적인 관계 맺기로 인식하고 있으면서 '교육이 아닌 것 같은 것'을 교육하는데 애를 쓰고 있다고 해야 되겠지요.

a 전시된 다양한 연들 아래에서 한 아이가 연을 만들고 있다

전시된 다양한 연들 아래에서 한 아이가 연을 만들고 있다 ⓒ 정일관

갑자기 추워진 날씨는 학교와 아이들을 모두 움츠리게 합니다. 전국이 한파 속에 둘러싸여 있는 요즘 합천 적중의 벌판을 거침없이 달려온 찬 바람은 학교를 할퀴고 지나갑니다. 운동장에 나가거나 학교 앞 가게에 갔다 오는 아이들이 얼굴이 빨개 가지고는 교무실로 달려 들어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교무실이 떠들썩하기 일쑤입니다.

춥다고 마냥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겠죠. 이 세찬 바람이 지나가기 전 연날리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연날리기는 아이들의 겨울 놀이로 그만이지요. 연이 하늘 높이 날아오를 때는 그 매섭던 추위를 하나도 느끼지 않을 만큼 기분이 장쾌해지고 기운이 솟구치니까요.

a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대나무를 깎아 연살을 만들고 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대나무를 깎아 연살을 만들고 있다 ⓒ 정일관

아침부터 시간을 잡아 반별로 나눈 뒤에 담임 선생님과 함께 먼저 연을 만들었습니다. 대나무를 칼로 쪼개어 가늘게 살을 만들고 종이를 오려 연 꼴을 만들었습니다. 대나무를 마치 연필 깎듯이 깎는 아이들에게 칼로 쪼개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중살을 대고 머리살 또는 허리살을 붙이는 방법, 꽁숫구멍 뚫는 법과 연줄과 연실 매는 법, 그리고 가오리연과 방패연 마름질하는 법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그림도 그리고 색도 칠해 예쁘고 기발한 문양을 연에 새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a 아이 둘이 모둠이 되어 가오리연의 허리살을 붙이고 있다

아이 둘이 모둠이 되어 가오리연의 허리살을 붙이고 있다 ⓒ 정일관

아이들은 연을 빨리 만들어 하늘로 날리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연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교실이 마치 공방이 된 것 같았습니다. 조금씩 형태가 갖춰지는 연을 보며 아이들은 차츰 신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a 아이들이 미술 선생님에게 방패연 마름질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미술 선생님에게 방패연 마름질을 배우고 있다 ⓒ 정일관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도 맹렬한 겨울바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차 연을 띄울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연을 다 만든 아이들이 하나 둘씩 연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연들이 제대로 뜰 리가 만무하였습니다. 처음 만들어 보는 연이라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a 우리가 만든 연, 예쁘죠?

우리가 만든 연, 예쁘죠? ⓒ 정일관

그래도 아이들은 그 연을 날려보려고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띄워보기도 하고 빙글빙글 맴돌다 추락하는 연을 손보며 연을 날리고픈 마음을 내보였습니다. 연을 날리는데 성공하여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아이도 있었는데 여간 흐뭇해하지 않았습니다.

a 운동장이 연날리기로 떠들썩하다

운동장이 연날리기로 떠들썩하다 ⓒ 정일관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연이 왜 뜨지 않는가를 차차 깨달아 고쳐 나갔고 그러다보니 조금 더 많은 연들이 하늘을 날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가오리연의 양 날개를 달았는데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날개 하나를 떼어낸 후에야 아주 평안하게 연이 띄워 올릴 수 있었습니다.

a 연을 띄우려고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

연을 띄우려고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 ⓒ 정일관

그러는 동안에 추위는 없었습니다. 세찬 바람이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동안 교무실에서는 1979년, TBC에서 개최한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라이너스'의 노래 <연>을 운동장 가득 틀어 줬습니다. 연을 날리는 바람은 신바람이 되었습니다.

a 너울거리며 하늘을 나는 가오리연

너울거리며 하늘을 나는 가오리연 ⓒ 정일관

우리 아이들은 하늘로 연을 날리면서 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 한 번 제대로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을까를 생각할 정도로 하늘과 만나는 일이 적은 우리 모두에게 연날리기는 광활한 하늘과 만나는 소중한 작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과 희망을 띄우는 연날리기. 또는 한 해의 액(厄)을 연처럼 날려 보내며 복을 비는 연날리기는 깊어가는 겨울, 대안학교를 대안학교답게 만들어주었습니다.

a 연 두 개가 기분 좋게 날아올랐다

연 두 개가 기분 좋게 날아올랐다 ⓒ 정일관

세상사 답답한 일들도 많고 살기 팍팍하다고 한숨 내쉬는 사람도 많습니다. 겨울처럼 웅크린 우리 마음도 연을 날리듯이 시원하고 환하게 날려버렸으면 합니다. 지난 12월 9일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만든 연이 하늘을 박차고 날아올라 우리 교육을 속 시원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을 신나게 날리고 우쭐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a 한쪽 날개를 떼고 시원하게 날아오른 연. 연을 날리며 이 아이는 얼마나 마음이 뿌듯할까!

한쪽 날개를 떼고 시원하게 날아오른 연. 연을 날리며 이 아이는 얼마나 마음이 뿌듯할까! ⓒ 정일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