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KBS
21세기의 변학도는, 이몽룡보다 훨씬 단호하고 중후한 남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오랜 무명생활을 전전하던 이 배우의 진가는 <쾌걸 춘향>을 거쳐 복수를 꿈꾸는 <부활>의 1인 2역을 통하여 마니아들에게도 인정받았다.
겉보기에는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에 인색한 듯하지만, 내면에는 깊은 감성과 열정을 품은 남자의 캐릭터. <내 이름은 김삼순>이 브라운관을 장악하던 시절에도, 깊은 사연을 간직한 듯, 우수에 젖은 눈빛 연기의 진가를 알아본 팬들은, 역시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다.
<주먹이 운다>의 류승범
데뷔 이래 톡톡 튀는 신세대의 대명사로 불려왔던 배우. 아웃사이더에 가깝지만, 코믹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왔던 류승범은, <주먹이 운다>에서 기존의 설렁설렁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들끓는 열정과 분노를 링위에서 폭발시키는, 거친 청춘으로 돌아왔다.
당대 최고의 배우인 최민식과의 충돌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류승범의 진가는, 바로 갓 건져올린 생선처럼 활기넘치는 생명력 그 자체이다. 전문적으로 연기 교육을 받은 배우가 아님에도 천부적인 감각으로 인물에 대한 진심을 담아내는 류승범의 연기는, 기교로서 대체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발산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의 신구
저마다 '한 개인기' 하는 조연들의 잔치였던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원로배우 신구가 연기한 윤 반장은 그야말로 베테랑이라는 단어의 진가를 보여준다.
허허실실, 버릇없는 젊은 용의자의 독설에도 한줄기 느긋한 웃음으로 여유롭게 넘기고, 젊은 검사에게 쓸데없는 횡설수설을 늘어놓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사안의 핵심을 짚어내는 관록은 역시 베테랑의 몫이다. 근엄한 선비의 이미지 뒤로 산전수전 다겪은 노장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느긋한 여백의 미학은, 젊은이의 재기발랄함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내공을 보여준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주현
중년의 사랑이라면 곧장 불륜 밖에 떠올리지 않는 것은 지나친 선입견이다. 다양한 세대의 사랑풍경을 담아내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연애고백을 보여주는 커플은, 바로 중년의 열정을 과시하는 곽 회장 커플(주현-오미희)이다.
뒤늦게 찾아온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큰 수익이 보장된 멀티플렉스마저도 포기하는 곽 회장의 순애보. 극장주라는 어드밴티지를 활용하여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센스. 겉보기엔 수전노같지만 내면의 순정을 간직한 곽 회장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올해 최고의 로맨스 그레이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