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실험실에 없다?

[새책] 존 그리빈이 엮은 <한번은 꼭 읽어야 할 과학의 역사>

등록 2005.12.19 15:55수정 2005.12.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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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존 그리빈이 엮은 <한번은 꼭 읽어야 할 과학의 역사> 앞표지

존 그리빈이 엮은 <한번은 꼭 읽어야 할 과학의 역사> 앞표지 ⓒ 에코리브로

나는 서울살이를 시작하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수학과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다. 1학년 때는 상위 성적이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 전학한 서울의 K중학교 수학선생이 춘천의 S중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게 가르치기에 질문을 했더니 "임마, 시골에서 배운 것과 같냐?" 하고 꾸중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뒤로 수학과 담을 쌓았다. 그 선생은 아침 테스트에서 틀린 만큼 수를 세어 박달나무 몽둥이로 종아리를 때리는 구타가 특기였다. 수학과 담을 쌓은 것은 물상과 화학으로 이어졌고, 수학·물상·화학 성적은 똑같이 바닥을 기었다.

요즘엔 과학이 일반인들의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생명 윤리 논란에 휩싸이더니, 이제는 아예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많이 하는 줄 알았더니 자연과학 쪽에서도 거짓말이냐?" 하고 세상이 시끄럽다. 어느 음식점에 들렀을 때 뉴스에 황우석 박사 관련 소식이 나오면 모두들 브라운관으로 눈을 보내고 귀를 기울인다. 무슨 사정인지 정확히 몰라도 관심을 가진다.


이럴 때 자연과학에 어느 정도의 상식을 지니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자연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없을까?

마침 그러한 책이 최근에 나왔다. <한번은 꼭 읽어야 할 과학의 역사>(2005년 12월 5일 에코리브로 펴냄). 리처드 도킨스, 이언 슈트어트, 존 그리빈, 닉 플라워스, 데이비드 브래들리, 피터 워드, 제럴드 M. 로언스타인, 에이드리엔 L. 질먼이 이 책의 집필에 참여했으며, 존 그리빈이 엮고 리처드 도킨스가 서문을 썼다. 원제는 수식어가 없는 < A BRIEF HISTORY OF SCIENCE >. 엄밀히 번역하면 <과학의 약사(略史)>다. 수학·물리학·천문학과 화학·지구과학·생물학 두 권으로 나누어 묶어져 있다. 각 장별 차례와 글쓴이(괄호)는 아래와 같다.

서론 : 오늘의 과학(리처드 도킨스)
수학 : 혼돈과 질서(이언 슈트어트)
물리학 : 에너지와 운동(존 그리빈)
천문학 : 공간과 시간(닉 플라워스)
화학 : 물질의 성질(데이비드 브래들리)
지구과학 : 역동적인 지구(피터 워드)
생물학 : 생명의 맥박(제럴드 M. 로언스타인/에이드리엔 L. 질먼)


이 가운데 생물학의 시작은 이렇다.

약 100억 년 전 우주는 팽창을 시작하여 각각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포함되어 있는 1000억 개의 은하계를 생성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성이 이 별들의 궤도를 따라 돌고 있지만, 현재까지 판단할 수 있는 바로는 그 수많은 행성 가운데 우리 지구에서만 생물이 발생했다. 46억 년 전에 태양계가 형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 40억 년 전, 단세포 형태의 생명체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났다. (중략) 생명체가 어떻게, 그리고 왜 지구상에 발생해 시간 속에서 진화했는지 연구하는 것은 생물학의 핵심이다. - <한번은 꼭 읽어야 할 과학의 역사> 138~139쪽에서


이 책은 이처럼 호기심을 끌어당기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씌어진 본문 외에 중요한 사실이나 재미있는 일화, 실험 등은 박스로 다루어 놓았다. 또한 인물 사진이나 위성 사진, 천체나 지구 그림, 모형 등 이미지 500여 컷을 필요한 곳에 함께 넣어 과학에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토머스 헉슬리를 잇는 다윈의 신봉자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과학자로 손꼽히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이로운 현상에 대한 흥미를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과학이다. 흔히 사람이 살아가려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질 세계뿐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반드시 채워 넣어야 할 빈 곳이 있는 것이다. (중략) 꼭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꼭 가스버너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상상으로만 좇던 필요를 따라잡고 그 가상의 빈틈을 메울 수 있을 만큼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과학은 실험실에서 해방되어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과학의 역사> 26~27쪽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중고 시절의 수학 교과서가 이렇게 호기심을 끌어당기도록 재미있었으면 어땠을까? 물상 교과서와 화학 교과서가 이렇게 호기심을 끌어당기도록 재미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그랬다면, 아무리 수학선생에게 실망하고 얻어맞았다고 하더라도 수학을 송두리째 던져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번은 꼭 읽어야 할 과학의 역사 1

리처드 도킨스 서문.존 그리빈 엮음, 최주연 옮김,
에코리브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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