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발목잡힌 <이 죽일 놈의 사랑>

[포커스] 스타 시스템 활용하지 못한채 아쉬운 종영

등록 2005.12.22 01:24수정 2005.12.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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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지난 20일 막을 내린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은 최근 선보인 청춘 드라마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스타시스템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정확히 1년 전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수많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스타 작가 이경희가 극본을 맡고, <풀하우스> <상두야 학교가자> 등의 작품에서 연기자로서도 성공적인 기량을 보여주었던 한류스타 정지훈(비)의 만남만으로도 수많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하지만 시청률 면에서 방영 내내 기대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주인공 복구(정지훈)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막을 내린 최종회에 있어서도 13.4%의 시청률에 그치며 예상보다 다소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물론 단순히 시청률만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최근 시청자별의 채널 선택이 다원화되면서 예전처럼 특정 작품의 독과점 구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가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었던 <미안하다 사랑한다> 역시 방영 당시 눈에 띄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죽일놈의 사랑>은 고정팬들의 지지를 넘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낼만한 대중성을 보여주기에도, 혹은 <부활>같은 '마니아 드라마'가 되기에도 근본적으로 내러티브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KBS가 이 드라마의 스타시스템에 걸었던 기대에는 분명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경희 작가의 극본이 주는 매력은, 분명 통속적인 설정의 남발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감성을 절박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는 표현력에 있다. 전작이었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소한 일상의 장면이나 절제된 대사 가운데서 극중 인물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내는 솜씨는 놀라웠다.

KBS
그러나 <이 죽일놈의 사랑>의 이야기 구조는 전적으로 정지훈의 스타성에 기대는 비중이 커진 가운데, 오히려 이경희식 멜로드라마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풍부한 에피소드의 부족과 과장 및 우연에 기댄 전개의 남발이라는 약점이 더 두드러졌다.

<풀하우스>의 이기적이지만 귀여운 왕자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터프하면서도 순정적인 고전적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로 돌아온 정지훈은, 이제 가수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걷어내고 꽤 괜찮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의 패착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정지훈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드라마의 축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주어야 할 신민아와 이기우, 김사랑같은 배우들은 드라마 안에서 입체적인 생명력을 얻지 못한 채, 진부하고 전형적인 캐릭터를 맴돌며 들러리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4명의 주인공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들이 하나의 이야기구조 안에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스스로 만들어낸 우울증과 비극의 무게에 짓눌려 헤매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 죽일놈의 사랑>이 보여준 비극의 코드는 결국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감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장밋빛 인생>이 뻔한 신파라는 비판 속에서도 우리 주변의 소시민들의 일상에 대한 디테일한 재현을 통해 리얼리티와 공감대를 형성한 것과 달리, 이종격투기, 톱스타와 보디가드의 운명적인 사랑 같은 극적인 설정들은 소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미미하게 겉돈다.


결국 <이 죽일 놈의 사랑>은 좋은 소재나 재료가 반드시 최고의 작품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만을 확인시키며 아쉽게 종영을 맞았다. 드라마의 인기는 톱스타 한두 사람의 뛰어난 스타성이나 인상적인 몇몇 장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이렇다할 스타나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들의 성공 요인을 돌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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