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34회

등록 2005.12.23 08:08수정 2005.12.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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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독고문은 구양휘의 손에 들려있는 술잔을 뺏듯이 받아들고는 술잔을 술독에 넣어 그득 채워 올렸다.

“잠시 기다려줄 수 있겠나?”


“후배는 내일 아침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소.”

“좋으이….”

독고문은 그득 찬 술잔을 들고는 반당의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갑자기 술을 허공에 흩뿌렸다. 기이하게도 술잔을 떠난 술은 사방으로 퍼지는 것 같았지만 한순간 비가 내리듯 반당의 시신이 든 관 위로 한 방울도 남김없이 뿌려지고 있었다.

“반제(班弟)… 이것은 자네를 위한 잔이네. 못난 우형이 저승 길 가는 자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구먼.”

철혈보에 있었다면 성대한 장례식이라도 치러 주었겠지만, 상대를 죽여 그 피라도 시신 위에 뿌려주었겠지만 이곳에서 무슨 장례를 치를까? 지전(紙錢)이라도 태울까 했지만 평생 무인으로 살아 온 반당에게 있어 그것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인의 죽음이란 이렇듯 허망하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 죽게 되면 모든 것이 그 순간에 끝나는 것이다.


독고문은 다시 들고 있는 술잔을 술독에 넣어 가득 채워 올렸다.

“좌승… 그리고 자네들도 한 잔 하게나. 가는 길에 무능한 이 사람을 탓하시게나.”


독고문은 또 다시 술을 흩뿌렸고, 그 순간은 안개처럼 퍼지며 좌승과 그 수하 네 명의 시신위로 뿌려지고 있었다. 촉촉이 시신 위로 술이 흩뿌려지자 독고문은 몸을 돌리고는 술독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낙화생은 나도 좋아하는 안주라네. 그래서 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지.”

독고문은 소매 속에서 조그만 가죽주머니를 꺼내 매듭을 풀더니 그 속을 구양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안주를 준비했으니 술을 마시자는 의미였고, 구양휘 역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남은 술잔에 술을 채웠다.

“반선배는 아마 강명이란 인물에게 당했을 거요. 그는 섭장천의 제자이자, 과거 강중이란 장군의 아들이오.”

독고문의 얼굴에 한줄기 의혹이 스쳤다. 강명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백련교 사형제 중에서 무공에서만 본다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이미 들었던 터였다. 하지만 그가 섭장천의 제자라는 사실과 강중장군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처음 듣는 터였다.

과연 은영전주(隱影殿主) 여후량(呂厚亮)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었음에도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일까? 왜 육능풍이 여후량을 의심해 급히 철혈보로 돌아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넨 나보다 많은 사실을 알고 있군.”

“우연히 그 자와 검을 나누었던 친구가 말해주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오. 그 친구는 상대가 강명이란 인물이라면 후배에게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소.”

“그럼 강명이란 자와 검을 마주 댔던 그 친구란 인물은 아직 살아있다는 말인가?”

“그렇소. 하지만 그가 강했는지 아니면 운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소. 그 친구는 분명 그랬소. 자신이 강명의 오른팔을 자르긴 했어도 분명 자신은 강명의 검에 죽어야 했다고…. 하지만 강명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고 했소.”

“오른팔을 잘라…?”

이것은 독고문으로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일이었다. 반당을 죽인 상대라면 이미 누구와 겨루어도 패하지 않을 정도로 최절정의 고수다. 그의 상대가 있을 것이란 생각조차도 사실 장담하기 어렵다. 구양휘마저도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지 않았던가? 독고문 자신 역시 반드시 상대를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장담을 할 수 없었다.

헌데 그런 상대의 오른팔을 자른 인물이라니… 그럼에도 강명이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가 누군가?”

“담천의요. 현 초혼령주이자, 이 제마척사맹의 맹주로 내정된 인물이오.”

독고문은 술잔을 훌쩍 들이키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구양휘 역시 독고문을 향해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훌쩍 들이켰다.

“그렇군. 그 인물이군. 그리고 자네의 형제 중 한 명이라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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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요사이 호사가들의 입을 바쁘게 만드는 바로 담천의란 사람이군.”

전월헌은 차가운 미소를 띠우며 담천의를 응시했다. 그는 입술이 살짝 비틀린 메마른 웃음은 그것을 바라보는 상대에게는 마치 조롱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귀하가 누군지 모르지만 나를 알고 있다니 매우 영광이구려.”

담천의는 상대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날아 내리는 신법의 움직임만으로도 이미 상대가 그 끝을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 순간 약간 켕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내가 글을 읽듯 말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전월헌. 백련교 열명의 사형제 중 일곱째. 연검을 사용하며 그 무공수위는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절함. 사영천을 이끌면서 주요 인물들을 주살했으며, 현재는 사형제들도 죽이려 함. 뭐… 이 정도면 충분한가?”

사내는 처음에는 담천의를 바라보면서 말하다가 끝에는 전월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정도면 이 우제(愚弟)를 아주 정확히 표현할 걸 거요. 하지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소. 여기서 한꺼번에 내 수고를 덜어주려 사형까지 계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소.”

전월헌의 남은 두 가지 일이 바로 담천의와 지금 앞에 있는 사내를 죽이는 일이다. 사내는 실소를 터트렸다.

“재미있군…. 좋아… 이렇게 된 바에 굳이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을 필요가 없지.”

사내는 자신의 목 뒤에서부터 아주 얇은 인피면구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너무 정교하고 교묘하게 만들어진 인피면구라 그런지 손가락이 비칠 정도였다. 인피면구가 벗겨진 맨 얼굴이 보이자 담천의 역시 그 사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하시오? 내가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것이라 하지 않았소?”

그렇다. 얼굴을 나타난 사내는 백결이었다. 그는 금방 만난 사람처럼 담천의에게 인사를 건넸다. 담천의는 그제 서야 왜 그의 눈빛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았는지 알았다.

“백형이라 그러셨던가?”

“그렇소. 입만 나불대는 재주를 가지고 있고, 이 일 저 일 참견을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소. 열 명의 사형제 중 둘째이고, 검을 사용했다가 장(掌)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은 없소.”

전월헌을 소개할 때 하는 말투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마치 딴 사람을 말하듯 하지만 모든 것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 같았다.

“본래는 백련교도지만 때에 따라서는 천지회의 일원이기도 하오. 또한 지금까지 중원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천(天)….”

그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전월헌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고막을 헤집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잘랐기 때문이었다.

“강남 송가의 후손이지. 그의 본명은 송결(宋缺). 바로 자네가 사랑하는 송하령의 사촌 오빠이기도 하다네.”

담천의는 놀랐다. 정말 놀랐다. 백결이란 인물이 송하령의 사촌오빠가 된다니…. 더구나 백련교의 둘째였다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그것은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닌데도 마치 자랑스럽게 말하는구나. 오히려 네가 내 입에서 나올 말을 막으려 했던 그 사실이 주위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백결의 얼굴에도 서서히 긴장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지체하는 사이 주위에는 이미 많은 인기척이 감지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적인가 아니면 우군인가? 그것을 확인시켜주듯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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