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내면으로 한 발 더 들어가다

난중일기 초서 13만자를 완전 해독한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록 2005.12.23 16:57수정 2005.12.2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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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승석이 옮긴 <이순신의 난중일기> 앞표지

노승석이 옮긴 <이순신의 난중일기> 앞표지 ⓒ 동아일보사

내가 <난중일기>를 맨 처음 산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다. 세로짜기로 시험지에다 인쇄하여 묶은 조악한 책인데 철없이 그것을 기념품으로 샀던 것이다. 현재는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엉터리 번역서를 꽤 오래 소중히 보관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번역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가. 대형서점에서 <난중일기>를 찾아보면 10여 가지가 넘고, 어린이들이 볼 수 있게 만든 책까지 더하면 30가지에 이른다. 그런데 왜 '뒤늦게' <난중일기>가 또 <이순신의 난중일기>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일까?

'뒤늦게' 나오기는 하였지만, 사상 첫 한글 완역 <난중일기>라고 한다. 초서연구가 노승석씨가 <난중일기> 초서 13만자를 완전 해독해낸 것이다. 이건 이순신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국방(國防)의 거대한 상징성만큼이나 아주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철저한 고증으로 기왕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을 바로잡은 것이 눈에 띈다. 지명 '소정(小頂)'을 '수정(水頂)'으로, '유도(柚島)'를 '묘도(猫島)로, 충무공을 연모한 한양 기생을 세산월(歲山月)이 아닌 내산월(萊山月)로 바로잡은 것을 들 수 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 동안의 진중일기(陣中日記). 초서연구가 노승석씨는 <난중일기> 필사본 9책(국보 제 76호)의 초서 13만자를 완전히 해독하여 8500여 자를 새롭게 번역했으며, 150여 자의 오류를 수정했다고 한다.

<난중일기>는 전시에 급하게 쓴 만큼 흘려 쓴 초서로 되어 있어 해독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글자가 닳아 사라진 부분도 있다. 일제시대에 간행된 판본을 근거로 1960년에 노산 이은상 선생이 한글 번역을 했지만 한계를 보였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친필 초서를 엄밀하게 고증하였으므로, 그동안 <충무공전서>나 <난중일기초>에 근거한 기왕의 번역서의 진실과 깊이를 뛰어넘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는 특히 이순신의 효성심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순신은 전쟁의 와중에도 사자(使者)를 보내어 어머니의 안부를 대신 묻게 하거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을 글로 적어놓은 것이다. 문득 '충신은 효자의 가문에서 나온다'는 말이 떠오른다.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경세유표>에다 '내가 일찍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니, 어머니를 그리워해서 밤낮으로 애쓰고 지성으로 슬퍼했음이 사람을 감동시킬 만하다'라고 썼다.


그 밖에도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충무공의 은거설과 자살설을 뒤집어엎는 전사와 장례 기록을 담고 있다. '이순신이 면주(免胄)하고 싸웠다'는 기록 때문에 '이순신이 투구를 벗고 자살하는 심경으로 전장에 나갔다'고 해석했지만 '투구를 벗는다'는 뜻의 '면주'란 '군인이 결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또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난중일기 8책 서간첩에 실린 이순신의 맏아들 이회의 편지는 노량해전 직후인 1598년 12월 13일 관리 현건에게 띄운 것인데, 이 편지에는 '지난번 직접 곡하시고 글을 지어 제문과 제물을 보내오셨다'고 감사를 나타낸 뒤 '사람들의 돌봐주심에 힘입어 상여를 무사히 빠르게 옮겨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충무공이 노량해전 당시 전사하지 않고 잠적했다는 은둔설을 반박하고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난중일기 -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서해문집,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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