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 해를 비는 마음

새롭게 맞이한 한해에는 버릴 것은 버리고 유순하게

등록 2005.12.24 18:16수정 2005.12.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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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시방 자연은 깊은 동면 상태이다. 머지않아 일어날 채비를 할 것이다. 자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다. 하릴없이 도타운 햇살에 등에 지고 앉아 숲속을 돌아보니 가슴 속 밑바닥으로부터 밀려오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잔잔한 슬픔과 아득함이 느껴져 짧은 명상에 잠겼다.


a 등불의 심지를 돋우면 온 방안이 환해지듯이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그 속이 얼마 깊고 좋겠는가

등불의 심지를 돋우면 온 방안이 환해지듯이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그 속이 얼마 깊고 좋겠는가 ⓒ 박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오늘 오후, 삶의 화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걸고 연약한 이웃을 절망의 벼랑 앞에 몰아세워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종교적 권위의 허상을 앞세워 약한 이웃을 판단하는 몰인정한 종교지도자도 아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아보면서 그들에게 베푼 봉사가 자신의 위로나 위안이 되지 못할 때, 하나님과 이웃을 원망하는 옹졸한 사회사업가도 아니다. 그리고 엄격한 계율로 자신을 다스려 그 어느 곳에도 치우침이 없이 몸과 마음이 단련된 수행자로서, 자신을 끝없이 비하하면서도 타인의 허물과 약점을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는 냉기가 감도는 수행자도 아니다.

그는 불의 앞에 분노하고 정의를 앞세워 구조적 모순의 사슬을 끊고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마침내 그 악의 세력 앞에 자신과 하나님과 세상을 원망하고 절망하는, 자신의 힘만을 믿는 혁명가도 아닐 것이다. 그는 '존재의 집'인 언어를 찾아 헤매는 시인은 아니나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처럼 한 마디 말씀을 삶으로써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는 존재의 내면에 흐르는 우주적 하모니를 실어 나를 음률을 찾아나서는 음악가는 아니나, 못자리에 물을 갈아대는 농부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명과 기쁨을 기적처럼 창조해내는 음악가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그는 세상 사람들 앞에 너무나 잘 알려진 어느 명사(名士)일 수도 있고, 봉쇄수도원 골방에 숨어사는 수도승일 수도 있다. 또 그는 부랑자 수용소에 갇힌 오명의 과거를 누비며 목청을 높이는 평범한 장사꾼이나 아낙네일 수도 있을 것이다.

a 그의 두 손은 이웃과의 나눔으로써만이 자신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의 두 손은 이웃과의 나눔으로써만이 자신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일 것이다. ⓒ 박철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사람, 그의 과거가 어떠하든, 직책과 신분이 어떻든 간에 무엇보다 먼저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신의 실존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 자신의 약함과 허약함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이 그 누군가의 손에 의하여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두 눈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진실을 더 눈여겨보고, 그의 두 귀는 이 세상 모든 것에 열려 있으되 자신의 이기심에 쏠려 치우치지 않고. 그의 두 손은 끊임없는 창조의 세계로 향하는 조각가처럼 부지런하되 자신의 창조와 생산이 이웃과의 나눔으로써만이 자신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이웃을 위해 봉사하되 이웃을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자신은 이웃과 작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분임을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의 지혜는 세상이 그를 향해 불러주는 자신의 허명에 급급하지 않게 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은혜와 은총이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그의 모습에서는 뽐냄도 비굴함도 성급함도 나태함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평상심(平常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일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그가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가난 속에 태어나 모멸과 수치의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 나자렛 예수의 십자가 의미를 깨달은 사람일 것이다. 그가 만약 불자(佛子)라면,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석가여래의 자비심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은 사람일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그렇다. 그는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 속에서 자기를 닦음으로써 이웃을 편안하게 하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길을 걷는 사람이고, '수행해 가려는 노력이 곧 깨달음이다'라는 수증일등(修增一等)의 성실함을 몸과 마음으로 익혀 가는 사람일 것이다.

a 꼼짝없이 밝음의 포로가 되어 환하고 밝게 살아간다면 그 속이 얼마나 따습고 좋겠는가

꼼짝없이 밝음의 포로가 되어 환하고 밝게 살아간다면 그 속이 얼마나 따습고 좋겠는가 ⓒ 박철

그리하여 그는 서두름도 게으름도 없이 함께 사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으로,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이웃의 손목을 잡고, 그분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일 것이다.

조용한 아침
새롭게 맞이한 한해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꺼이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리라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순하고 정한 마음으로 살면
그 속이 얼마나 편하겠는가

등불의 심지를 돋우면
온 방안이 환해지듯이
내 비뚤어진 심보를 바로잡고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그 속이 얼마 깊고 좋겠는가

새롭게 맞이한 한해에는
매사에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지 말고
천천히 느릿느릿
버릴 건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
물 흐르듯 유순하게

항상 밝은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내 마음의 창을 열어 두겠다
꼼짝없이 밝음의 포로가 되어
환하고 밝게 살아간다면
그 속이 얼마나 따습고 좋겠는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 박철. <한해를 비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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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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