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싶다. "아저씨, 왜 앵벌이 했어?"라고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베디의 항공료 문제로 일어난 일

등록 2005.12.27 10:24수정 2005.12.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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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추위에 약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에게 뭔가 색다른 느낌을 주기라고 하는지, 우리 쉼터 공동체 식구들이 하루 종일 들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6일 출입국단속에 걸려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있는 베디(Beddy) 이야기가 흘러 나왔습니다.


a 화성외국인보호소 입간판

화성외국인보호소 입간판 ⓒ 고기복

공동체 마당발인 스띠아완이 "베디가 돈이 없다고 해서 친구들이 15만원을 모았으니, 목사님이 보내주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22일 '보호소에 수감된 지 2주가 지나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실직해서 돈이 없다. 항공권만 마련하게 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어렵사리 돈을 마련하여 직접 화성을 찾아가 예치해 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베디의 부인이 전화를 해 와서, "베디가 부족하다는 돈만큼 송금했으니, 전달됐는지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연락까지 받았던 저로서는 베디가 앵벌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베디는 출입국에 붙잡힌 이후 본인이 알고 있는 사람마다 전화를 하여 도와달라고 했지만, 평소 주변머리가 없었는지 보호소에 돈을 넣어 주는 사람이 없는 듯했습니다. 베디는 보호소에 들어간 다음날부터 저와 공동체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20일부터는 엉엉 울면서 "출입국에서 나에게 벌금까지 물렸는데,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이다"는 말을 하면서 매 시간마다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벌금을 물었다는 부분이 믿기지 않아 출입국 담당 직원에게 확인 결과, "베디가 항공권을 구매할 돈이 있으니 예약을 해 달라고 하여 예약을 했는데, 출국 당일 갑자기 돈이 없다고 하여 항공권 환불 수수료를 물었습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어찌됐든, 베디에게 항공권 취소 환불 관련한 규정을 말해 주고,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예치시키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당시 잘 가라는 말을 하고 나오면서도 속이 편치 않았습니다. 베디가 하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돈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디가 자신의 처지를 이용해 앵벌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 하였느니라"(마25)라는 성경 말씀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결국 '나는 준 것이 없이 거저 받았으나, 거저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면의 소리에 베디를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어 스띠아완과 함께 28일에 다시 베디를 방문키로 약속했습니다.


베디는 부인이 자진출국한 후 뜬금없이 쉼터에 들러 안부를 묻곤 했었는데 동작은 느리지만 목소리 하나만큼은 늘 자신감이 있어 보이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도 불법체류 단속에 걸리고 나니 담담해지는 모양인지, "빨리 출국하고 싶은데, 문제가 있어요. 여권이 공장에 있는 바지 주머니에 있거든요. 회사에 연락해서 갖다달라고 해 주세요"라고 연락을 해 왔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오히려 잘 됐다. 이렇게 된 바에야 홀가분하게 가자'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 땅을 떠나면서 어쩌면 그동안 당해 왔던 한풀이를 그나마 받아줄 만한 사람들에게 하는 걸까요?

베디는 한국에 오기 전 대만에서도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 베디는 대만에서 일을 할 때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일단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십년은 젊었던 나이였고 말이 통하고 생김새가 비슷하다 보니 일할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보수를 원했던 그는 부인과 함께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부인과 함께 일하면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임금체불도 많이 당하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렇게 4년을 지냈던 그가 원치 않는 고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앵벌이를 한 것입니다. 지난 4년간 숱한 억울함만 당하다 떠나는 베디가 인도네시아에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다신 해외이주노동을 하다 강제 출국되는 일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금도 베디가 앵벌이나 진배없는 행동을 한 사실에 자꾸만 화가 나고, "아저씨, 왜 앵벌이 노릇했어?"라고 따지고 싶은 건, 그동안 즐겁고 슬픈 일들을 함께 했던 많은 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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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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