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가는 쌀보다 채우는 손길이 더 많아요"

전북 익산 모현동사무소 '사랑의 뒤주', 어려운 이웃과 희망 나눠

등록 2005.12.28 14:59수정 2005.12.2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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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우리 옆집아이들이 끼니거리가 없어 굶고 있는데 쌀 푸러오기는 쑥스러운게벼. 내가 대신 퍼가. 이게 있응게 좋긴혀. 굶는 사람도 웁고…."

지난해 12월부터 전북 익산시 모현동사무소 한 귀퉁이에 마련된 쌀뒤주가 훈훈함을 전하고 있다.

아무리 굶는 사람 없이 사는 세상이라도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모현동은 살기 좋은 곳이지만 한 끼 밥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상위계층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집은 있는데 직장이 없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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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이 뒤주는 플라스틱 빨간 통에 동사무소를 찾는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입구에 설치되어 있고 뒤 벽면에는 이 뒤주에 대해 설명해 놓은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끼니 걱정 되세요? 우리 동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아진 쌀로 사랑의 뒤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3일분(2㎏)만 담아 가세요."

지난해 7월 용동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 모현동으로 발령받은 김규철 동장은 한 끼의 식사로 고민하는 주민들을 보고 생각한 것이 '사랑의 뒤주'였다. 사랑의 뒤주운동은 시민들의 작은 정성이 모아져 어려운 이웃에게 정을 나누는 사랑의 쌀 모으기 운동으로 끼니 걱정이 되는 이웃은 언제나 동사무소를 찾아 쌀을 가져갈 수 있다.


1년 열두 달 항시적으로 동사무소에 마련된 '사랑의 뒤주'는 주민 누구나 한주먹의 쌀이라도 갖다놓으면 어렵게 사는 이웃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처음 실시할 때는 모현동 지역 46명의 통장들과 부녀회장들이 솔선수범해 쌀을 가져다놓았고 차츰 입소문으로 알려져 동사무소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일부러 한 주머니 쌀이라도 가지고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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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2㎏이면 한 사람이 3일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좀도리 쌀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이 유용하게 가져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기증한 쌀만도 1600㎏이나 됩니다. 쌀 은행이라고 보시면 쉬울 겁니다. 특별히 쌀을 가져가도 장부에 게재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몇 명이 온지는 모르겠지만 뒤주에 바닥이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사무소 안에 마련된 사랑의 뒤주가 쌀을 담아놓는 사람은 괜찮은데 가져가는 사람에게는 곤욕이다. 그래서 지난 6월부터는 '사랑의 뒤주'를 밖으로 내놓았다.

대체로 주민들은 적당히 먹을 만큼만 가져가는데 역전에 있는 노숙자들이 큰 배낭을 가져와 가져갈 때가 있다. 한꺼번에 많이 가져가면 다른 사람들이 가져갈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가슴 아프다는 김 동장.

작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는 어렵게 사는 독거노인도 한눈에 들어왔는데 3만여 명이 사는 모현동은 인구가 많아서 일일이 챙길 수가 없다고 한다.

지금은 모현동 만이 아닌 신동이나 남중동 등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등 호응이 좋다.

일 년 정도 운영하다 보니 입소문으로 전해져 뒤주가 마를 날이 없다. 언젠가는 경기도 용인에 사는 독지가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백만 원 어치 쌀을 기증해 잔잔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열 사람이 밥을 한술씩만 보태어도 한사람이 먹을 밥은 된다는 십시일반.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사람쯤은 구제하기 쉽다는 우리네 말처럼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사랑의 뒤주가 훈훈한 인정이 되기를 기대하며 쌀 한 움큼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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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형숙

덧붙이는 글 | 익산교차로신문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익산교차로신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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