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외로운 존재

시집 <외로워서> 펴낸 유숙렬 방송위원

등록 2005.12.29 12:40수정 2005.12.2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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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
[채혜원 기자] "…공기는 바람처럼 가볍고 숨은 영겁처럼 무거운데 시간은 보이지 않고 영혼은 가슴을 찌른다.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장소에 가야했을까. 아무데도 가기 싫다, 이제 난. 그냥 고요하게 가라앉아 내 영혼을 보고 싶다." -유숙렬, 하루 中

소설가 이문열 논쟁과 여성 징병과 관련한 논란을 앞서 제기하는 등 가부장제 사회를 향해 직격탄을 날려 온 페미니스트 논객 유숙렬씨가 <외로워서>란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최근 3년 동안의 그의 영혼에 대한 기록인 이 시집을 통해 유숙렬 시인은 태어나기 전 아버지를 여읜 개인적 아픔에서부터 여성운동가로서 끝없이 싸우면서 느꼈던 소회를 털어놓았다. 자신이 유복녀(遺腹女)란 사실도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이야기한다.


3년 동안 그는 13년간 재직한 직장을 관두었고 22년간 결혼생활을 한 남편과 이혼했으며 어느새 나이는 오십을 넘고 있었다. 3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정체성이 없어지고 자신의 존재기반이 흔들렸다.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끈이 없어 더 이상 삶을 계속할 이유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그에게 다가온 한 영혼이 있었다. 토니 모리슨, 앨리스 워커와 함께 대표적인 흑인여성시인으로 뽑히는 오드리 로드(1934∼1992)다. 오드리 로드는 유숙렬 시인에게 스승이자 영혼의 어머니였다. 1992년 암으로 인한 투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오드리가 '시(詩)'로 다시 찾아온 것이다.

우먼타임스
"3년 동안 시를 쓰면서 시에는 치유능력이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어요. 시를 쓰는 동안은 무의식상태에 빠져 내 유년시절로 돌아가기도 했죠.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썼다면 이제는 시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그에게 시를 쓰는 작업은 아무도 보거나 들어주지 않아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작업이었다. 영혼이 죽어가던 3년 동안 그를 지탱하게 해준 작업이었다. 그렇게 시를 통해 자신의 몸과 영혼을 치유한 유숙렬 시인은 여성들에게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것을 권한다.

"여성은 내면을 고백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해요, 그게 그림이든 글이든. 살다보면 여러 가지 고비가 오는 위기는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자신만의 배출구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러면 지지 않고 이겨나갈 수 있으니까요."

시집 '외로워서'를 통해 유숙렬 시인은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아플 때 다시 돌아와 자신을 지켜준 남편과 딸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그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로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분노만이 아니라 사랑을, 투쟁만이 아니라 위로를 안고 싶다고.

현재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과 방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숙렬 시인은 1978년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미주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며 뉴욕 헌터컬리지 여성학 학부과정과 뉴욕시립대 대학원 여성학 석사과정을 수료한다. 1991년 한국으로 돌아와 2004년까지 문화일보 기자로 근무했으며, 단행본 '버자이너모놀로그'를 번역했고 '한국에 페미니스트는 있는가' 총론 집필, '엄마 없어서 슬펐니'를 공저했다.

외로워서

유숙렬 지음,
이프(if),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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