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피해현장에서 숨진 고 이승희씨 영결식 열려

28일 부안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부안군청장으로

등록 2005.12.29 15:41수정 2005.12.2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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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에서 절규하는 유족들 ⓒ 부안군청

지난 21일 오후 3시께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농업기술센터 육묘농장의 제설작업도중 사고로 숨진 고(故) 이승희 지도관 영결식장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고 이승희 지도관의 영정을 바라보던 노모 김순례 여사(74)와 미망인 서일순 여사(47)의 처절한 절규는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폭설피해 복구 작업에 나섰다 참사를 당했던 40대 공무원의 영결식장은 유족들과 동료 공무원의 오열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지난 24일 오전 10시 부안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부안군청장'으로 치러진 고 이승희 지도관 영결식장은 고인을 애도하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영결식장에는 이 지도관의 모친인 김순례 여사(74)와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미망인 서일순 여사(47)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었다.

미망인 서일순 여사는 어렵게 마련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5분여 동안 말을 잃고 울먹였다. 삼오제를 마친 지난 28일 오전 10시께 기자의 전화를 받은 서 여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주던 자상한 남편이었는데…"라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퇴근해 아내 부업 도맡아주던 자상한 남편

고(故) 이승희 지도관은 '애처가'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아내에게는 듬직한 버팀목이었고 자녀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버지였다. 미망인 서 여사는 전주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며 살림을 거들어 왔다. 전주에서 부안군청까지 녹록치 않은 출퇴근 거리지만 이 지도관은 퇴근 후에 아내의 일을 도맡아 챙겨줄 정도로 헌신적인 남편이었다. 이 지도관은 고1과 고2에 재학중인 남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서 여사는 "너무 충격이 커 건강원도 운영하지 못할 것 같다"며 "평소에 미안할 정도로 잘 해주던 남편이 곁에 없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며 울먹였다.

서 여사는 남편의 직장이 있는 부안의 변산반도에서 해넘이를 바라보며 나눴던 수많은 대화들도 이제는 파도에 흩어지는 물보라처럼 사라져 버렸다며 먼저 떠난 남편을 원망했다.

농어촌 발전 위해 한 평생 헌신

진혼곡이 울려 퍼지며 시작된 지난 영결식은 김종규 부안군수의 조사와 동료들의 애도사 등이 이어졌으며 유족의 오열은 이승을 떠나는 고 이승희 지도관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고 이승희지 도관은 지난 1982년 4월 농촌진흥청 농촌지도사로 공직에 입문해 23년 8개월 의 재임 기간 동안 농가 소득 향상에 기여해 지역 주민은 물론 직장 동료들로부터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의인이었다.

덧붙이는 글 | 미망인의 얼굴사진과 자녀들의 실명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영결식 사진은 부안군청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미망인의 얼굴사진과 자녀들의 실명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영결식 사진은 부안군청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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