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를 개조해 미술관으로?

이영미술관서 90세 노장 화백 전혁림 개인전 열려

등록 2005.12.29 18:24수정 2005.12.2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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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술관은 돼지우리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으로, 지붕과 벽이 슬레이트로 되어 있어 겉모양만 보면 무슨 공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미술품들이 고요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겨울 찬바람이 조용히 거리를 메우던 날, 검 가방 대신 카메라 집을 메고 이영미술관으로 향합니다. 매일같이 큰칼을 휘두르며 뭔가를 베야 한다는 생각에 내 마음까지도 베어버리려고 하는 극한 수련의 마음을, 좋은 그림을 보며 셔터 한 번 누르는 것으로 달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저 내 마음만 달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그림을 보며, 그곳에 모든 것을 듣고 느끼며 칼 안에서 보다 더 자유로웠던 느낌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껴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은 글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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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수도 위를 새처럼 훨훨 날아 그곳의 푸르름을 드넓은 시각으로 펼쳐놓은 그림입니다. 1천호의 크기로 90이 넘는 할아버지께서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대작입니다. 그의 그림 앞에서 서면 아름다운 남도의 바다가 춤을 춥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전혁림 화백의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는 이영미술관은 돼지우리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으로, 지붕과 벽이 슬레이트로 되어 있어 겉모양만 보면 무슨 공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술관의 김이환 관장님은 3000여 두의 돼지를 기르던 곳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좋은 문화쉼터로 공간을 재구성하였습니다. 말이 그렇지 돼지우리가 미술관으로 변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했을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그 많은 땀과 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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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사이로 본 한려수도... 세상 모든 만물은 저 마다 자신만의 빛깔로 노래합니다. 전 화백의 눈과 붓은 그 빛깔을 한데 모아 넓은 캔버스 위에 그윽하게 펼쳐 보입니다. 장난기 가득한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안에 전통 오방색과 바다의 푸르름이 담겨 있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그런데 아쉽게도 이영미술관 한가운데로 신규도로가 개설된다며 여기저기 불도저가 지나가면서 그 좋던 풍광이 쓸려 나가고 김이환 관장님의 땀과 정성이 녹아든 미술관마저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할 상황이라는 말에 마음 한편에 찬바람이 부는 듯합니다. 그나마 현재 미술관 근처 산 너머 풍광 좋은 곳으로 이전할 부지가 마련되어 이영미술관이 계속 명맥을 이어 갈 수 있게 됐다니 작은 위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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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가 넘는 목기 위에 각각 그림을 그려 세상사 '만다라'의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전혁림 화백의 내공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틀 밖의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이런 뜻깊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국내 최고령의 현역작가 전혁림 화백. 그는 한국화단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불립니다. 그는 특별히 미술 관련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서 그림을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만의 그림세계는 가히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감추지 못할 그림으로 생기발랄함을 전합니다. 결코 화백의 나이가 90이 넘은 나이임을 상상할 수 없는 그림들은 제각기 화려한 원색의 푸른 빛깔로 우리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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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처럼 둥근 오래된 나무 위에 그림을 그려 또 다른 유화의 세계를 표현한 그림입니다. 저마다 다른 빛깔로 이야기 하다가 궁극에는 하나됨을 노래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전혁림 화백의 그림은 그의 고향이자 삶의 안식처인 다도해 풍광을 쪽빛과 전통적인 오방색의 어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저마다 마음 속에서 잠시 묻어 두었던 지난날 강렬했던 추억들이 이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가 이야기했던 '늙어 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듯 강렬히 뇌리에 박힙니다. 마치 뭔가에 심장을 찔린 듯 한 강렬한 느낌은 이내 내 눈을 자유롭게 하여 내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번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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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에는 작은 물새가 자주 등장합니다. 아마도 통영 앞바다에 삶을 터전을 둔 그 안에 자유로이 하늘을 날던 갈매기가 함께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순을 이렇게 정렬적으로 넘기셨으니, 이젠 백수를 넘기셔 좋은 작품 많이 전해주시길 희망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1949년, 광복 후 첫번째로 진행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상하고 수많은 '국전'에서 수상하는 등 화력을 쌓았지만 그는 고향을 버리지 않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그만의 쪽빛 그림세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예순 살이 넘어서야 중앙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시며 뭇 젊은 화백들에게 '정열이 무엇인지', '예술이 삶을 얼마나 젊어지게 하는지' 그의 두 손으로 당당하게 펼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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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나무판 아래 그만의 작은 세상이 녹아 있습니다. 출렁이는 바다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꾼 목어도, 해와 달이 함께 어우러진 조화의 세상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전혁림 화백의 전시회가 시작되던 날 예고 없이 노무현 대통령 부부께서도 그곳에 방문하셔 3시간 여 동안 작품을 감상하고 전 화백의 손을 붙잡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그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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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물인 자개장에 조개껍질은 어디 가고 오방색의 화사한 옷이 새로 입혀졌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햇살에 출렁이는 통영 앞바다, 그곳에는 수많은 한려수도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옛이야기 하는 모습들이 화백의 붓끝에서 정열로 피어오릅니다. 찬바람 부는 겨울 마음의 잔잔한 불을 지피고 싶다면 이영미술관으로 달려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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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미술관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소박한 매력이 이곳 이영미술관에는 담겨있습니다. 문짝 하나하나, 천장의 나무 하나까지도 정성이 가득합니다. 이전해서도 그 느낌 꼭 간질하길 기원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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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혁림 화백의 손을 꼭 붙잡고 계신 노무현 대통령 부부의 모습입니다. 소탈하게 버스를 타고 와서 작품을 감상하시고 '큰 성취 축하드립니다. 감동을 표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글을 남겨 전 화백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미술관은 그 자체로 교육공간"
[인터뷰]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님

▲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님
ⓒ푸른깨비 최형국
- 사립 미술관을 열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이곳에 자리 잡은 지 27년인데, 미술관을 연 지는 6년째입니다. 예전에 박생광 선생님이 알려지시기 전에 그의 작품에 빠져 인간적인 교류관계를 가졌는데, 그때 모은 작품을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을 열게 되었습니다.

전혁림 선생님 또한 그런 배경으로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지요. 지금까지 삶을 회고해 보면 나 혼자서 잘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주위의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이렇게 되었으니 좋은 작품도 함께 공유하려고 돼지우리를 개조해서 미술관을 열게 되었습니다."

- 전혁림 화백의 전시회를 개최하게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선생님의 연세가 벌써 90이 넘은 나이라서 좋은 작품을 계속 그리실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전시회를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시개막날은 '남해안별신굿'을 축수굿으로해서 오래 오래 사셔서 좋은 그림 많이 그려 주시도록 푸진굿도 펼쳐 드렸지요."

- 이영미술관이 도로공사 문제로 이전해야 하는데요, 관장님의 심경은 어떠신지요?
"미술관 구석구석에 내 정성과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을 이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특히 해질 무렵이면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큰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좀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 미술관을 더 알차게 만들고 싶습니다."

- 관장님께서 미술관을 운영하시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도심지에도 미술관이 필요하고 이렇게 조금 외진 곳에도 작은 미술관은 필요하다. 그런데 지자체나 국책사업으로 거대하게 건물만 크게 지어 놓고 내실은 없는 그런 사업은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미술관은 그 자체로 작은 교육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실 있는 작은 사설 미술관들에게도 정책적인 배려가 미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얼마전 대통령 내외가 직접 방문해 주시고 이곳에서 작품 감상을 하고 가신 것만으로도 참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여기 저기 이끌어 주시며 미술관을 소개해주신 김이환 관장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최형국

덧붙이는 글 | 전시회 소식: 『전혁림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2006년 1월 18일(수)까지 연장전시 

이영미술관 가는길 :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수원IC에서 수원시내방향으로 좌회전 합니다. 
1.2km 지점 고가도로 진입 전에 우측차선을 유지하여 LG주유소를 지나 
수원교회와 신한카센터 사이길로 우회전, 약 500m 정도 언덕길을 넘으면 이영미술관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사당역 4번출구에서 좌석버스 7000번, 강남역6번출구 양재역 7번출구에서 5100번, 5100-1번, 잠실역에서 1112번 등 경희대 영통행 버스를 타고 황골마을에서 내립니다. 내리신 곳에서 버스가 온 방향과 반대로 걸으시다가 고가도로 밑에서 건널목을 건너면 왕정갈비와 신한카센터가 있습니다. 이 사이길로 약 500m 정도 언덕길을 넘으면 이영미술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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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http://muye24ki.com 입니다.

덧붙이는 글 전시회 소식: 『전혁림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2006년 1월 18일(수)까지 연장전시 

이영미술관 가는길 :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수원IC에서 수원시내방향으로 좌회전 합니다. 
1.2km 지점 고가도로 진입 전에 우측차선을 유지하여 LG주유소를 지나 
수원교회와 신한카센터 사이길로 우회전, 약 500m 정도 언덕길을 넘으면 이영미술관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사당역 4번출구에서 좌석버스 7000번, 강남역6번출구 양재역 7번출구에서 5100번, 5100-1번, 잠실역에서 1112번 등 경희대 영통행 버스를 타고 황골마을에서 내립니다. 내리신 곳에서 버스가 온 방향과 반대로 걸으시다가 고가도로 밑에서 건널목을 건너면 왕정갈비와 신한카센터가 있습니다. 이 사이길로 약 500m 정도 언덕길을 넘으면 이영미술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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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http://muye24ki.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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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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