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지울 수 없는 기억들

[송년에세이] 역사 속으로 넘어가는 1년을 돌아보며

등록 2005.12.30 15:00수정 2005.12.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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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2005년이 잠기고 있다. 제주판 모세의 기적 '서건도'에서 바라본 해넘이. ⓒ 김동식

다시 한 해가 저문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던 2005년이다. 국민들의 가슴이 언제부터 뻥 뚫렸는지 감을 잡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는 여전히 허우적대고, 대립과 갈등의 진앙지인 정치권은 부끄러움의 속살을 아직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희망가'를 부르며 출발했던 삶의 열차도 한 해의 종착역에서 '절망가'를 토해내고 있다.

과거의 시간 속으로 시대는 흘러가 파묻히지만 지나간 역사는 새로 기록된다. 올 한해 다시 쓰일 역사는 어떤 궤적을 남기게 될까. 저무는 해 그림자를 밟으며 그 쓸쓸했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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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해그림자를 밟으며 그 쓸쓸했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 김동식


신음하는 지구촌, 절망의 끝은?

지구촌이 불안하기는 올 한해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파키스탄을 잇달아 강타한 허리케인과 강진, 유럽으로 상륙한 조류인플루엔자(AI)는 대자연이 인간에게 되돌려 준 끔찍한 재앙이었다. 특히 10월 8일 파키스탄과 인도를 뒤흔든 리히터 규모 7.6의 대지진은 8만8천여 명의 사망자와 350만여 명이라는 이재민을 남겼다. 지난해 12월 26일 23만 명 이상의 목숨과 삶의 터전을 앗아간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지구 대재앙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발생하던 조류인플루엔자가 전 세계로 급격히 확산되면서 지구촌을 긴장시켰다. 얼마 전에는 조류인플루엔자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각각 140명과 70명을 넘어섰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했다. 이 기구는 또 인간끼리 감염될 경우 최소 1억 명 이상이 숨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도 이 급성 바이러스의 대확산 가능성을 심각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테러공포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의 최대 우방인 영국 런던에서 G8 정상회의에 맞춰 7월 7일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해 56명의 사망자와 700여 명이 부상자가 속출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2005년에도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가담에 반발하는 잇따른 자살 폭탄 테러 등으로 평화의 길은 멀기만 했다.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미국의 전략에도 강한 의문을 남긴 한 해였다.

국제유가 폭등은 세계경제에 어두운 먹구름을 가져왔다. 이란 핵문제 악화, 중동정세 불안, 비 OPEC(석유수출국기구) 국가의 증산 전망 악화, 카트리나 재해로 인한 미국내 석유재고 감소 등은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을 끝까지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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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시간 속으로 시대는 흘러가 파묻히지만 지나간 역사는 새로 기록된다. 올 한해 다시 쓰여질 역사는 어떤 궤적을 남기게 될까. 제주시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도두봉 해넘이. ⓒ 김동식


한랭전선이 형성된 정치권, 국민에겐 실망

2005년 국내 상황은 큰 몸살을 앓았다. 유난히 우울증에 시달렸던 한 해였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굵직한 소식들이 연거푸 쏟아졌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이 올 해도 숨 가쁘게 진행됐다. 북한의 2·10 핵무기 보유 선언과 3월 31일 핵군축회담 제의 등으로 시작된 올 한 해는 민족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했다. 다행히 6·10 한미정상회담과 6·17 정동영-김정일 평양 면담으로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천명한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 낸 것은 큰 수확이었다.

아쉽게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미 사이의 대립은 팽팽하다. 민족의 앞날에 희망을 주리라던 소박한 기대도 물거품을 만났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가시덩굴이 에워싸고 있다. 새해에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념의 차이를 인정하는 '초례청(醮禮廳)'에 모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 가는 '아름다운 싸움'이 보고 싶다.

정치권의 한랭전선이 세밑에 이르러서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05년에는 무엇을 갖고 국민에게 희망을 전달했는지가 불분명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의 큰 물줄기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

민심이반과 지지율 하락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한 여권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에게 지지와 신뢰를 보냈던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 그 덕분에 한나라당이 불로소득을 많이 챙겼다. 17대 국회 들어 두 번 실시한 재·보선에서 27:0으로 참패한 여당성적표가 이를 말해 준다.

열린우리당은 이런 위기감을 사립학교법으로 돌파하기 위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역습을 당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집'을 나갔고, 맹추위와 폭설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국주도권을 잡으려는 두 당의 힘겨루기는 국회 안팎에서 내년 봄까지 계속될 것 같다.

여당이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니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 기반이 허약한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한나라당이 거부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정치가 불안정하다. 민생은 뒷전이다. 이제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다. 아직도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정치다.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고용없는 경제성장'

우리나라 경제는 연초만 해도 증시 호황과 함께 기업 투자심리와 가계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경기회복 시기를 앞당기는 듯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8% 정도에 그쳤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잠재성장률을 웃돌지 못했다. 경제정책도 1년 내내 세금과 부동산에만 매달린 듯하다.

수출이 성장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너무 올라 무역 손실을 줄이는데 역부족이었다. 무역흑자폭도 지난해보다 1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가운데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실적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우리나라 국민 중 채무상환 능력이 없어 실질적인 파산상태에 있는 사람이 최대 112만 명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2005년 3분기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상위 10% 가구의 월평균소득(770만원)은 하위 10% 가구(88만원)의 8.8배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3분기의 6.9배보다 크게 확대됐다. 올 3분기 30대 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10.1%를 기록했지만 그 외 기업은 4.9%에 그쳤다. 올 들어 10월까지 중소기업의 생산증가율은 7년 만에 마이너스로 주저앉았다. 제조업체들의 설비투자도 갈수록 뒷걸음질이다.

고용없는 성장은 국민의 시름을 안겨줬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6개월간 평균 실업자수는 85만6천명(평균실업률 3.6%)에 이르고 있다. 이 중 30세 미만 청년실업자가 36만1천명(전체 실업자의 42.2%)이다. 공식통계상 실업자에 주당 근무 18시간 미만 근로자와 구직단념자 등을 합한 준실업자가 171만 명이 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남긴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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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2005년이 역사 속으로 잠기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우리를 기쁨으로 이끌지 못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도 멈춘 듯하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바라본 해넘이. ⓒ 김동식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빠진 2005년

2005년은 국민의 고통지수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빠졌던 해였다. 정치권에서는 불법도청 'X파일' 파문과 '강정구 교수 발언' 수사지휘권 파동 등을 겪었다. 인혁당 사건이 '사법살인'으로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군 개혁에 첫발을 내디딘 국방분야는 그에 못지않게 우울한 해로 기록됐다. 전역 보름 만에 위암 판정을 받은 노충국씨 등 예비역병장들의 잇따른 사망은 우리 군대의 부실한 의료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뼈아픈 사건이었다. 최전방 GP에서 한 병사가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부대원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황우석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논란은 지역·성별·연령·학력·직업·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전 국민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통해 보고했던 환자맞춤형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는 결국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은 실망과 배반을 넘어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됐다. 한국과학의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국가과학기술 정책도 재진단이 불가피해졌다. 우리 과학의 위기이지만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에 희망을 걸어 본다.

쌀 관세화 유예협상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농민들의 분노는 꼭짓점에 이르렀다. 벼랑 끝에 몰린 농민들은 정부와 국회에 저항했다. 슬픔을 가누지 못한 농민들은 급기야 목숨을 끊거나 죽음에 내몰리는 최악의 사태로 번졌다.

올 해에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집회와 파업은 계속됐다. 특히 노동자 가운데서도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비정규직의 절규는 어느 해 보다 거셌다. 이역만리에서 날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2005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풀이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이 선정됐다고 한다. 언론매체에 칼럼을 쓰는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다.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뜻하는 것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올 한해 우리 사회가 끊임없는 정쟁, 행정복합도시를 둘러싼 비생산적인 논쟁, 지역 및 이념 갈등 등 소모적인 분열과 갈등 양상이 끊임없이 되풀이 된데 따른 결론이다. 그 와중에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져 농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층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휘청거리는 2005년이 역사 속으로 잠기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우리를 기쁨으로 이끌지 못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도 멈춘 듯하다. '상화하택'의 굴레를 벗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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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하택'의 굴레를 벗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진은 제주에 수학여행을 온 내일의 희망꽃들. ⓒ 김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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