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99

새로운 시작

등록 2005.12.30 18:26수정 2005.12.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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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잡아 놓다가 일이 잘못되어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 게다가 고이 잡혀 있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는 객주에 싸그리 불이라도 지른 다음에 빠져 나가려는 건가?”

장판수는 다시 차분한 태도로 돌아가 말했다.

“정 그렇게 못 미더우면 꽁꽁 묶어 놓고 칼을 씌워 가두어 놓으라우! 내 맹세하지만 너희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가지 않게 하갔어.”

“글쎄 그걸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두청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장판수가 하는 양을 두고 보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장판수는 품속에서 짧은 칼을 꺼내들었고 이를 본 두청은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하려는 것이냐!”

장판수는 옷섶을 풀더니 칼을 자신의 가슴팍에 대고 길게 그었다. 가슴에 흘러내리는 피를 장판수는 칼에 묻혀 두청에게 내어 놓았다.

“내 담보로 내 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내 피가 묻은 이 칼에 대고 맹세하갔어! 심양에 잡혀간 우리 포로들이 돌아오는 건 너희들과 상관없는 일이지 않네? 내 이 사람들에게 일러두어 절대 후환이 없도록 할 작정이니 부디 그 두루마리를 필사하도록 해 주게!”

두청은 우뚝 서서 피 묻은 칼과 장판수를 번갈아 보았다.

“좋다. 하지만 나도 한 가지 청이 있다.”

“말하라우.”

“일이 여의치 않게 되면 나와 손을 잡아야 한다. 저 차선달과 마찬가지로 사금파리 조각을 나눠가지고 맹세를 해야 된다는 거다.”

장판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기렇게 하겠다우.”

“장형!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소!”

보다 못한 최효일이 장판수를 만류했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장판수는 가슴에 난 상처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최효일에게 부탁했다.

“내 저들이 가지고 있는 두루마리가 한 글자도 틀림없이 필사되는 것을 보고 올 터이니 기다리시라우. 최종사관에게는 어려운 일을 부탁해야 하니….”

두청은 서흔남과 두 명의 부하를 대동하고 장판수를 객잔 깊숙이 자리 잡은 방으로 데려갔다. 두청은 방안에 들어서기 전에 뒤따라온 장판수의 몸을 뒤져 볼 것을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허! 여기까지 데려 왔으면서 날 못 믿는단 말이네?”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말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말이야.”

이윽고 장판수와 좁은 방안에 마주 앉은 두청은 지필묵을 받은 뒤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뭘 하는거네?”

두청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렴 그 두루마리를 허술하게 놔두었을까? 흔남이 두루마리를 가지러 갔으니 곧 올 걸세.”

잠시 후 서흔남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와 두루마리를 펼쳐 놓았다.

“이 사람은 글을 잘 모르니 여기 있어도 상관없지. 자, 한번 보게나.”

두청이 펼친 두루마리의 앞머리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가득 차 있었고 홍타이지의 글임을 증명하는 옥새가 찍혀 있었다. 그나마 장판수가 확실히 알아 본 것은 끝에 적힌 대신들의 이름일 뿐이었다.

“이건 여진의 문자일세. 이런 건 필사해 봐야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할 거 아닌가? 우리도 이를 알지 못해 여진의 글을 아는 계화의 도움이 필요했네. 이런 건 아무려면 어떤가! 자네가 필요로 하는 건 끝에 있는 대신들의 명단이겠지!”

장판수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실 이 두루마리가 진짜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을 따진다 해도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어서 다 적어 내리기나 하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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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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