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래시장도 설 대목을 맞았습니다

이국에서의 정월 초하루 풍경

등록 2006.01.03 09:51수정 2006.01.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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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30일 오후 1시


"나현아, 엄마 시장 가는데 따라갈래?"

지난 12월 30일 오후, 둘째 아이를 데리고 우에노(上野) 아메요코(アメ横) 시장엘 갔습니다. 곰국을 낼 사골이며 불고기 거리 등, 정월 연휴 동안 먹을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집 근처 시장을 두고 굳이 우에노까지 가는 이유는 역시 싸고 좋은 고기감 때문입니다.

매년 연말에서 4~5일은 앞두고 미리 시장을 갔었는데 이렇게 임박해서 가는 일은 올해가 처음입니다. 30일부터 휴가가 시작 됐기 때문이죠. 일본은 올해 정월 연휴는 평균적으로 12월 30일부터 1월 3일까지입니다.

a 우에노에 있는 아메요코 재래시장

우에노에 있는 아메요코 재래시장 ⓒ 임미옥

아메요코 시장 입구부터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가뜩이나 좁은 시장(アメ横) 길이 가는 행렬, 오는 행렬 구분없이 섞여서 느릿느릿 간신히 발길을 뗄 정도였습니다. 행여나 아이를 잃을까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몰리는 인파 속에 섞여본 경험이 없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겁을 잔뜩 먹은 아이는 더욱 제 손을 힘주어 꽉잡고 제 뒤에 바짝 붙어 앞으로 앞으로 움직였습니다. 위쪽을 보니 건물의 난간에 삼삼오오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는 일본 경찰들이 보입니다.

a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움직이기 조차 힘들고…(위에서 확성기로 인파정리를 돕는 경찰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움직이기 조차 힘들고…(위에서 확성기로 인파정리를 돕는 경찰들) ⓒ 임미옥

저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걸 본 적이 없어서 참 낭패였습니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가격 비교도 좀 하면서 차근차근 시장을 보고 싶은데 말이죠. 이래서야 원, 꼭 사야 할 품목도 가능한 한 줄이고 얼른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엄마,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연말 대목때라 그런가봐. 어휴~ 다음부턴 꼭 미리 장을 봐야지 안되겠다."


사람이 너무 많아 걸음을 떼어놓기조차 힘들 정도인 것을 보면서, 그래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목답게 재미를 볼 수 있을테니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이 아메요코 시장에서 장사하는 올케를 두었다는 동네 한 언니(한국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말야, 그 사람 미어터지는 연말 대목 덕분에 일 년치 수익을 올린다니까. 우리 올케도 거기서 장사하고 있거든."

이렇게 연말 장사 한 번으로 일 년을 버틸 수익을 얻는다니 장사하는 사람은 역시 사람이 많이 몰려줘야 장사할 맛이 나겠지요. 시장 보기가 힘들긴 해도 활력 넘치는 분위기에 덩달아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집니다.

a 소꼬리를 잘라 이렇게 포장 판매를 합니다.

소꼬리를 잘라 이렇게 포장 판매를 합니다. ⓒ 임미옥

간신히 한 걸음씩 옮겨 드디어 시장 중간쯤에 위치한 정육점에 왔습니다. 평소보다 아르바이트 학생까지 두어 명 더 보충되었는데도 무척이나 바쁘게 보입니다. 저도 제가 사려던 소꼬리며, 사골, 소고기 불고기감을 골랐습니다. 이번엔 모처럼 갈비도 재볼까 하고 갈비를 찾았더니 벌써 품절이라네요.

일본에서는 소꼬리를 이렇게 잘라서 포장해놓고 팝니다. 너무 비싸서 한국에서도 쉽게 먹지 못했던 소꼬리 곰탕을 저희 가족이 일본에 와서는 실컷 먹고 있습니다. 보통의 소고기보다 더 싼 소꼬리(1킬로그램 약 15,000원)라서입니다. 그나마 한국인들이 많이 사먹어서 많이 오른 가격이라는데 말이지요.

a 이렇게 큰 게 반 토막 포장 한 봉지에 2천엔,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2980엔 하더군요.

이렇게 큰 게 반 토막 포장 한 봉지에 2천엔,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2980엔 하더군요. ⓒ 임미옥

"혼타라바가 후타츠데 욘센엔, 야수이요 야수이!"
(무당게가 두 봉지에 4천엔! 싸요 싸!)

이날은 유난히 저 무당게(동물학적으로는 '소라게'라고 합니다)를 파는 게 많이 눈에 띕니다. 아마 정월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카니나베(일본식 게 찌개)를 많이 해먹는가 봅니다. 살이 꽉찬 저 게를 한 봉지만 사도 우리 네 식구는 배가 부를 것 같아 한 봉지만 흥정을 했습니다.

"스이마셍~ 잇꼬다케데모 니셍엔데 이이나라 카우께도…."
(미안하지만 한 개만 사도 이천엔에 된다면 살텐데요.)
"하이하이, 이이데스요~ 쇼가나이나~"
(네네, 그러십쇼. 할 수 없쥬~)

제가 한 봉지만 흥정해서 사자 옆에서 너도나도 한 봉지만 달라고 합니다. 하긴 한 봉지만 사도 되는데 두 봉지로 묶어서 싸게 판다고 두 봉지를 다 사기엔 웬지 부담스럽니다. 그렇다고 한 봉지를 비싸게 사기도 내키지 않는 게 소비자 마음이죠. 그런데 이렇게 싸게 산 게를 동네 슈퍼마켓보다 980엔이나 더 싸게 사게 된 걸 알게 된 그날 저녁 저는 사실 배가 아팠답니다. 이렇게 많이 쌀 줄 알았으면 아예 두 개 살 걸… 하고 말이죠.

a 상여를 맞이할 조등을 켠 동네 안, 묘지 입구

상여를 맞이할 조등을 켠 동네 안, 묘지 입구 ⓒ 임미옥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귀가길, 동네 어귀에 있는 묘지 입구엔 조등(弔燈)이 밝혀져 있고 꽃도 꽂혀 있습니다. 누군가의 상여가 들어오는 날인가 봅니다. 가끔 이렇게 상여가 들어오는 날 조등 켜진 묘지 입구를 보면 마치 누군가 시집을 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말이죠. 동네 안에 주택가에 버젓이 들어 있는 대리석 무덤들들 늘 보아선가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나치는 묘지 입구에서 저는 늘 일본 귀신이 더 무서울까? 한국 귀신이 더 무서울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웃게 되니까요.

a 새해 아침, 만두를 잔뜩 빚었습니다.

새해 아침, 만두를 잔뜩 빚었습니다. ⓒ 임미옥

2005년 12월 31일

어제 사 온 사골뼈를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일전에 친정에서 보내준 김장김치를 꺼내 잘게 썰어 김치만두를 빚었습니다. 저희 집은 만두국물은 사골국물로 내고, 김치만두는 김장김치를 넉넉히 썰어넣고 다진고기와 두부, 삶은 당면을 넣어 만듭니다. 만두속이 준비되자 딸들이 서로 하겠다고 달겨듭니다.

"엄마, 저도 만두 만들래요."
"저두요. 오랜만에 만두 만드네~"

이제 둘째도 올해 중학생이 되어 둘 다 중학생이 되는 딸내미들은 만두 빚는데는 이골이 나 잘도 빚습니다. 만두 200여개가 단숨에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만두피는 슈퍼마켓에서 사다 하므로 더 시간이 단축 되기도 합니다.

a 빚는 김에 잔뜩 만들어 이렇게 투명팩에 넣어 차곡차곡 냉동실에.

빚는 김에 잔뜩 만들어 이렇게 투명팩에 넣어 차곡차곡 냉동실에. ⓒ 임미옥

끓여먹고 남는 만두는 이렇게 투명팩에 가지런히 넣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어두면 두세 시간만에 꽁꽁 얼지요. 충분히 얼었다 싶으면 비닐봉지에 한꺼번에 털어넣어 꼭 매두면 몇 달을 두고 먹어도 터지질 않아서 좋습니다. 만두속에도 계란 한두 개 섞고, 만두피 봉할 때도 계란 흰자로 봉하기 때문에 만두피가 터져도 속은 뭉쳐서 만두피에 붙어 있어 만두국이 깨끗하게 끓여집니다.

a 역시 새해 아침엔 떡만두국이 최고야~

역시 새해 아침엔 떡만두국이 최고야~ ⓒ 임미옥

2006년 1월 1일

기다리지 않아도 닥치는 매년 새해 아침, 한국의 가족들에게 두루두루 새해 인사 전화를 하고 빚어둔 김치만두와 사다둔 떡국떡을 섞어 떡 만두국을 끓입니다. 여기에 김장김치 한보시기 새로 썰어놓고 새해 아침상을 대합니다.

"어~ 맛있다. 역시 당신이 만든 김치만두는 최고라니깐."

남편이 새해 첫날, 기분 좋은 한 마디를 던지는 것으로 새해 첫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상을 물린 우리 부부, 나란히 정좌를 하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얘들아~ 세뱃돈 받고 싶음 얼른 세배해야지!"

아이들의 반가운 움직임을 들으며 얼른 남편에게 빳빳한 만엔짜리 지폐를 두 장 쥐어주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이 줘도 되는 거야?"
"우리 애들은 이곳에 친척이라곤 없잖아요. 친구들하고 비교되나 보던데…."

딸아이들은 개학하면 급우들이 세뱃돈이 얼마 모였네, 자랑들을 한다는데 늘 자신들과 차이가 너무 난다며 투덜거렸거든요. 이곳 일본 도쿄는 1월 10일, 3학기가 시작되니까 세뱃돈 얘기로 꽃을 피울만도 하지요.

엉거주춤 세배를 하는 아이들에게 덕담을 하고 큰맘 먹고 준비한 세뱃돈을 주며 우리 가족은 이렇게 이국에서의 정월 초하루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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