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친일파 청산만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영화 <청연>을 둘러싼 또 하나의 오해

등록 2006.01.04 17:45수정 2006.01.0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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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재적 의미

우리에게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은 2004년입니다. 그러나 동북공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던 것은 그보다 2년 전의 일이었지요. 제16차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야 했었습니다만, 당시엔 "자본가들의 입당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것만 주목 받았을 뿐입니다.

사실 동북공정은 동북진흥이라는 것과 하나의 패키지로 2002년 전인대에서 결정되었던 겁니다.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 동북의 3개 성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광동성의 2배에 달하는 경제력을 과시했었습니다만, 2001년엔 63%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동북 3성의 생산 시설이 워낙 낡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제성장이 경공업과 조립 생산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동북 3성의 중화학 단지는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없는 셈으로 치고 운용되어 그런 겁니다.

거기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족이 아닙니다. 절대 다수가 망한 청나라의 후손인 만주족과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의 소수 민족들입니다. 거기에 이 지역의 노조는 화끈하기로 중국 내에서도 유명했습니다. 그랬던 까닭에 경제성장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국가 통합을 위해 남의 나라 역사를 같이 챙겨갔던 겁니다.

우리가 2년이나 지난 이후에 반응을 보인 것도 문제였지만, 그 맥락을 잘못 이해했던 것도 지금은 지적해야 합니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역사바로잡기(?)를 위해 고구려사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되어 말 그대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젊은 석박사 연구원들은 만세를 불렀다지요.

그러나 정작 동북 진흥 전략과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어떤 경제, 정치적 영향을 미칠까에 대해선 지금도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역 발전 전략과 결합된 역사 왜곡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는 점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들 않았던 겁니다.

친일파의 활용

동랑(東朗) 유치진은 일제 말기에 내선일체의 깃발을 들고 학도병으로 나가는 것을 독려하는 여러 편의 희곡을 썼습니다. 모윤숙과 김활란과 같은 여류 문인들도 자식을 텐노 폐하에게 바치는 것이야말로 영광이라고 선동하는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특히 그 5년 뒤인 한국 전쟁에선 똑같은 작품의 말만 몇 마디 바꿔서 다시 발표합니다. 괴뢰군에 맞서 조국의 영광을 위해 죽으러 나가라고 말입니다. 이 작품들은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국어 교과서에 올라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철저하게 진행하지 못했던 '친일 청산'의 과거를 통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일까요?

19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집권한 전두환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습니다.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이상 없다'고 진단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내각 조사실만 '북한의 동태가 심상찮다'는 정보를 흘린 겁니다. 이 이외에도 드라마 <제5공화국>에 묘사된 것처럼 일본의 우익 정치 집단으로부터 상당한 차관도 얻어냅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시절에 착공된 건물 중 하나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입니다. 1987년 직선제를 쟁취하기 이전까지 우리의 대통령들은 정통성에 상당히 문제가 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때마다 때로는 '빨갱이'를, 때로는 '쪽발이'의 위협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했던 겁니다.

그랬던 그들에게 자신들 대신 '스피커' 역할을 해주는 이들의 과거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친일의 문제가 길게 끌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왜곡된 정치지형도 한 몫을 했습니다.

기억의 정치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실제로 교통사고 현장 목격자의 진술이 심심찮게 엇갈리는 것은 '기억'이라는 대뇌 활동이 선입관과 같은 요소에 의해 영향 받거나 다른 기억과 겹쳐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범죄학 개론에선 사건 사고 현장을 보면 반드시 메모하라고 가르칩니다.

기억이 이렇게 허약하기 때문에 특정 집단에서 특정한 기억만 반복해서 상기시킬 경우, 없던 적개심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극적으로 이게 작용되는 사례는 별 탈 없이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이 사이좋게 지내다가 수백 년 전의 원한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약탈과 강간을 일삼게 되었던 발칸반도(구 유고 연방)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한 집단이 경험한 특정 기억만을 반복해서 주입시켜 없던 원한까지 만들어내는 이 일련의 과정을 미국의 정치학자 허버트 허쉬(Herbert Hirsh)는 '기억의 정치'라고 불렀습니다.

2004년 10월 4일, 시청 앞 광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과 아들 손자 군대 안 보낸 분들 간에는 아마존 강과 고비 사막만큼의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분들이 한쪽은 시청 앞 잔디밭에, 한쪽은 단상 위에 앉아 계시더군요.

이 말도 안 되는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때 잔디밭에 앉아계시던 분들을 조금 이해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분들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경제 재건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하루에도 여러 번 맹세하면서 살아온 세대"입니다. 또한 일제 시대에는 살아남기 위해 창씨개명과 같은 일상적 수준의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원죄도 가지고 있지요.

또한 이 분들은 열심히 일하면 '선진 조국 창조'가 저절로 되는 줄 알던 분들입니다. 한 2~3억쯤 열심히 모아 가전제품 대리점 하나 차리면 자식들 모두 대학은 물론 결혼까지 시키고 당신들의 노후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으로 살아오신 분들이죠.

그러나 정보 통신 사회에 들어서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터넷이라는 걸 통해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이 팔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전제품 대리점들은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 양판점에 끼어 거의 파리만 날리고 있죠. 거기다 대통령도 인터넷에서 활약하던 이들이 주도해 뽑았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일 겁니다.

물론 집사님과 목사님의 인도 하에 천국 행 패밀리 티켓을 챙기러 오신 아주머니들도 꽤 많았습니다만, 그 분들은 집회 중간에 자리를 떴습니다. 집회 이후, 광화문의 술집들을 줄 확실하게 세운 군복과 반짝반짝 빛나는 군화를 신은 일단의 노병들이 점거한 것은 꽤 많은 분들께서 보셨을 겁니다.

그 현장에서 계속 반복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자신들을 '좌익'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정치 세력이 국회의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좌파 정권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그 군복 입은 노병들에게 어떤 작용을 했을까요?

한국 전쟁 당시에 좌우익이 서로 가했던 엄청난 피의 보복을 연상시키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과거사 진상 규명으로 당신 세대들의 성과를 없던 것으로 취급한다'는 주장도 가끔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특정 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계속 반복해 자극함으로써 그 분들이 젊었을 때도 등골 빼먹었던 이들이 다시 정치권력을 차지하겠다는 거침없는 욕망을 드러냈던 자리가 그 집회였습니다.

이렇게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없이 '친일파 단죄'를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일제에 열심히 부역하고, 군사 정부 시절에 열심히 협조함으로써 대학 총장과 국무총리까지 않을 수 있었던 이들의 정치 기반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일'의 문제를 단순화시켜 놓고 볼 수 없는 건 순전히 이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한, 아직도 살아 있는 친일파들이 순진한 양반들을 인간 방패 삼아 정치적 재기까지 꿈꾸게 만드니까요. 이 복잡한 현실은 당기면 당길수록 풀 수 없는, 엉클어진 실타래와 같습니다.

동북공정이 단순히 역사 도둑질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했다면 어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역사 문제에만 집중해서 정치적, 경제적 파장에 대한 대책은 지금까지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일상적 수준의 친일'이라는 원죄를 가지고 있는 우리 위의 세대와 대화를 함에 있어 '기억의 정치'라는 구도를 놓치고 '친일'이라는 문제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남는 것은 충돌밖엔 없습니다. 그것도 진짜 친일파들이 우리의 부모들을 인간 방패로 삼는 것을 뻔히 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할 수 있다면, 한일 시민 단체가 손을 잡았기에 0.4%의 일본 학생들만 불량 교과서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길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그 세대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을 대단히 힘들어하는 세대입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일갈에 입을 다물어야 했던 분들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산입니다.

그 분들은 아픈 시대를 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통증을 느낄 수 있나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 분들의 삶에 대한 작은 이해는 이 말도 안 되는 '기억의 정치'를 끝내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분들은 우리의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이기도 하고, 우리의 부모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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