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로 번 돈, 봄에 병원 다 갖다줘"

비금도, 시금치로 전국에 알린다

등록 2006.01.05 15:08수정 2006.01.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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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리 포구의 한 식당, 아침 배를 기다리며 4명의 사내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거지탕에 밥을 말아 김치를 얹어 몰아넣는다.

목포에서 오는 도선이 닿는 뱃길이 이곳 외에도 수도 선착장이 있다. 가산리 포구는 농협이 운영하는 배가 닿는 곳이지만, 수도포구에 닿는 배는 개인업자가 운영하고 있다. 농협배는 주로 농수산물을 유통을 목적으로 1992년에 운행을 시작해 봄부터 가을까지는 소금을, 겨울철에는 시금치를 운반한다. 지난 해 12월 26일에도 15kg 박스를 가득 채운 15톤 트럭 5대가 이곳에서 뭍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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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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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시금치로 겨울을 보낸다

마을에서 직접 잡은 소라 내장탕이 뭍에서 잡은 것보다 맛이 있다는 식당 여주인의 너스레를 들으며 옆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시금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주인이 가져온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한 수저 몰아넣었다. 아침 6시에 나와 일출을 보고 염전을 비롯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9시 배 시간에 맞춰 시금치를 내가는 모습을 보기 달려왔다.

차가운 속으로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옆 사내는 마저 남은 국물을 마시고 시계를 힐끔 쳐다보며,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는 듯, 주인에게 커피 한잔 주라고 소리친다. 그가 비금 시금치를 싣고 서울로 가는 트럭 운전수였다.

"어제는 시금치 값이 얼마나 나왔어요."
"3만 원대. 좋은 것은 4만 원대, 최고로 좋은 것은 4만5천 원대."

"도초 것보다 잘나오는가요."
"도초 것은 가격도 아니여."

"2만5천원은 가격도 아니제. 최하가 3만 원 정도께."
"못해도 1, 2만원은 차이가 나제."

운전기사의 비금시금치 자랑에 옆에 있던 식당 여주인도 거든다. 올해는 작황이 좋았는데 눈이 많이 오고 일기가 안 좋아서 논 시금치는 많이 죽어 버렸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시금치는 논보다는 밭, 특히 모래가 섞인 사질토양에서 자란 것이 좋다. 특히 비금도처럼 게르마늄 토양에서 자란 시금치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시금치이다.

"여그는 시금치 없그만."
"비싼께 누가 준다요."
"가격이 너무 많이 나온께. 갖다 먹으라고 해도 미안하제--"
"얼마나 힘든 줄아-요."
"요렀게 날 따술 때는 안--껏도 아니-여."
"눈보라 치고 바람 불 때 엎드려서 따는 것 봐-바-."
"돈도 돈이지만 주란 소리 못혀-."

식당 주인은 시금치 농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에서 갖다 먹으라고 해도 시금치를 어떻게 키우는지 잘 알기 때문에 선뜻 받지 못한다. 설 명절에 고향을 방문한 자식들도 마찬가지란다.

겨울 시금치를 재배하는 주민들은 동지섣달 그믐도, 정월 초하루도 땡땡 얼어붙은 밭에서 시금치를 따고, 선별을 해 깨끗이 세척한다. 명절에 고향을 방문해 이런 부모님들을 보면, 보내준 시금치를 받아 냉큼 먹을 자식들은 없을 것이다. 왜 아침밥상에 시금치가 없냐고 물었던 내가 오히려 무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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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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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서울 농산물 시장을 지배한 비금 '섬초'

비금도에는 언제부터 시금치를 이렇게 재배했을까. 비금도는 시금치보다는 '소금'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구림리, 지당리, 나배리 등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염전이 발달했지만 수대리, 내월리 등 서부지역은 수심이 깊고, 산이 많아 염전개발이 쉽지 않았던 지역이다.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시금치 재배가 발달해 있다. 비금도에 시금치가 소개된 것은 1958년 죽림리 최남산씨가 종자를 구입해 재배를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어 1970년대 이후 시금치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1992년 차를 싣고 섬과 뭍을 오갈 수 있는 철부선 운항이 시작되면서 섬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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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농협에서 유통에 뛰어들기 전에는 개인들이 선박과 차량을 이용해 유통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농원회라는 작목회를 조직하여 유통의 어려움을 부분적으로 극복했지만 근본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았다.

목포까지 뱃길로 2시간 이상을 가야하고, 다시 서울 농산물시장으로 유통해야 하기 때문에 몇 사람의 시금치 재배농민들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작목반에 가입되지 않는 농민들은 판로가 더욱 어려웠다. 이러던 차에 철부선 운행을 시작한 비금농협에서 시금치 유통에 적극 나서자 판로 걱정을 하던 농민들이 너도나도 겨울작목으로 시금치 재배를 시작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비금농협은 비금도 시금치를 1996년에 '섬초'로 상표등록을 했다. 처음에는 '섬시금치'로 등록하려고 했지만 용산시장과 가락동 시장상인들 사이에 이미 '섬초'로 알려져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홍보효과도 있고, 브랜드화하자는 취지에서 그대로 등록을 했다. 지금은 비금 '섬초'하면 농산물 시장은 물론 전국 백화점에서도 알아준다.

그 결과 비금농협이 첫 유통을 시작한 1992년 첫해 비금농협이 집계한 시금치 판매금액이 45억이었지만, 매년 5억여 원씩 증가하더니, 2004년에는 80억의 실적을 올렸고, 지난 2005년에는 100억을 예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농협이 얻은 수수료만 해도 3-4억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은 서부지역은 물론 동부지역에도 많은 주민들이 겨울 시금치를 재배하고 있으며, 논에도 보리 대신 시금치를 재배하고 있다. 현재 비금도는 1000여 농가 700여ha에 시금치가 재배되고 있다. 비금도 전체가 1700여 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움직이기 어려운 고령자나 전업으로 바다 일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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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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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비금도는 시금치 재배에 적당한 서늘한 기후이며, 겨울철에도 생육할 수 있는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 시금치는 봄, 여름, 가을에 파종을 하는데, 다른 지역이 봄과 여름에 파종을 해 시장에 내는 반면에 비금도는 가을 파종을 해 겨울에 출하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재배 품종들이 재래종으로 성장력을 떨어지지만 맛이 좋아 소비자들이 선호하고 있다. 특히 청정해안의 점질토질인 게르마늄 성분을 갖고 있고, 해풍 등 기후여건이 적합해 다른 지역의 시금치에 비해서 당도가 높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겨울철 벌어서 봄철에 병원에 갖다 준다

"봄철에 목포 병원에서 허리가 구부정해서 다니는 사람들."
"전부 비금도에서 시금치 작업하는 사람들이라고 혀."
"조금씩 벌어서 병원에 다 갖다줘."

비금 동부에 사는 박대두(69)씨. 아침 일찍 찾아가 비금도의 최초의 염전 자리를 안내해 달라는 말에 함께 나서며 하는 말씀이다. 가산에서 목포를 시금치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 바로 왔기 때문에 아침 9시가 조금 넘었을 시간인데, 송곳 같은 아침 갯바람에 맞서며 쪼그리고 앉아서 시금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비금도에서 만난, 2000여 평에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는 할아버지(68) 할머니(67) 부부, 작년에 500만원 소득을 올렸다. 작년에는 작황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보통 1000여만 원은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보통 낫보다 작은 시금치 낫으로 상품성이 있는 시금치만 캐내 집으로 가져가 다듬고 선별하여 세척한 후 다음날 내 보낸다. 공력도 많이 들어가고 잔손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이 더디다. 잘 해야 하루에 15kg 대여섯 박스 작업을 해서 내보낸다.

염전 일을 하지 않는 노령의 주민들은 시금치가 제일 큰 벌이이다. 시금치 팔아서 자식들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다 보내고, 이제 노인들 용돈벌이라도 한다고 엄동설한에 갯바람을 맞지만 건강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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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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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시금치로 해외시장 노린다

비금 '섬초'로 시금치가 유통되기 시작한 지 10년을 맞고 있다. 농협이 적극적으로 유통에 개입을 하기 시작했지만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근 도초도에도 비금도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양의 시금치가 재배되어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도초도의 시금치는 '섬초'와 달리 농협을 통해 '섬 시금치'로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비금도의 시금치에 비해서 낮은 가격에 유통되고 있어 도초도 주민들의 늘 불만이다. 똑같은 지역에서 다리 하나 건너 재배될 뿐인데 가격차이가 이렇게 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대형 운반선도 비금농협과 도초농협이 각각 운행하고 있다. 두 농협이 공동으로 할 수 있지만, 조직 특성상 쉽지 않다는 것이 관계자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시금치 재배농민들이 대부분 60-70대의 노인들이다. 그리고 고질적인 관절병을 앓고 있다. 비금 농협에 강영삼씨는 하루 속히 '대형유통센터'가 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비금과 도초를 아우르는 시금치(농산물) 유통센터가 지어져, '선별', '가공', '저장'을 통해 노동력을 절감하면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금치 밭에서 캐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선별과 세척 등은 자동화하고, 출하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금과 도초 등 인근 지역을 묶어서 시금치 단지를 조성해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 진출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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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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