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명함 "당당함 찾았죠"

샘표공장 '명함·명찰' 전시회

등록 2006.01.06 13:57수정 2006.01.0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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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에 명함 발급…사회 정체성 일깨워줘
'명찰'내 이름 석글자…권력·위치 되찾아 의미심장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 꽃다운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분홍빛 꽃이 그려져 있는 명함을 선물 받은 남우경 할머니, 자신도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어 '특별하게'란 글씨를 새겨 넣은 이양자 할머니 등 6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명함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라고 말하는 할머니들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이천시에 위치한 샘표 공장 내 샘표 스페이스에서 '이름 없는 이름 : 나는 나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전시회는 대외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명함 한 장 없이 수십년간 일해 온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마련했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그림과 글귀를 넣은 7명 노동자(남성노동자 1명 포함)들의 명함과 샘표 공장의 모든 직원들의 이름이 적힌 명찰이 전시되어 있다.

▲생애 첫 명함 탄생 =전시회를 개최한 배성미, 최영숙 작가는 전시주제로 왜 명함과 명찰을 택했을까. 명함은 사회적 정체성이 담긴 가장 제도적인 상징물이자 개인이 속한 집단, 부서명 등을 통해 자신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에 기적을 이뤄온 한국경제성장의 원동력의 중심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의 사회적 정체성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명함 한 장 없이 수십년간 일해 온 그들에게 명함 제작은 오히려 부담스러움으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극구 사양만 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명함 제작을 제의한 것은 직장 내에서 여사님으로 통하는 박금순 할머니였다. 최영숙 작가는 박금순 할머니를 통해 다른 여성노동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그들을 인터뷰한 과정을 편집한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이렇게 7명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사연이 담긴 소중한 명함을 생전 처음으로 갖게 된다.

▲명찰의 사회적 의미=디자인이 돋보이는 명함이 붙어 있는 벽의 옆면에는 명찰이 담긴 액자들이 나열돼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명찰들이다. 사람의 몸에 직접 부착되는 명찰은 명함과 어떻게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닐까. 최명숙 작가는 "명찰계급은 몸으로 말하고 몸 자체로 권력을 획득한다"며 "그런 점에서 공장근로자들은 경찰이나 군인과 같이 대표적인 명찰계급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생산력인 그들의 '몸'만으로 생산도구를 통해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 명찰은 전시가 끝나면 주인을 찾아 돌아간다.

공장 근로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미술작업을 기획 중인 샘표공장 내 갤러리 샘표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계급과 계층을 떠나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이름'이라고 말한다. 온전히 나의 것이기도 하면서 나와 남을 편리하게 구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름'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성찰해보는 건 어떨까.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열린다.

덧붙이는 글 | 전시 문의 031-644-4615, www.sempiospace.com

덧붙이는 글 전시 문의 031-644-4615, www.sempiosp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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