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공원 노숙자에게 내민 동전 2개

일본의 추운 겨울이 나를 슬프게 하는 이유

등록 2006.01.07 15:01수정 2006.01.0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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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에노 공원 입구의 노숙자들.

우에노 공원 입구의 노숙자들. ⓒ 임미옥

일본 도쿄의 겨울은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지만 체감 온도는 연일 영하 십도를 넘나드는 요즘의 서울 못지 않지 않다. 어느 일본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최근에 한국에 여행 간 적이 있어요. 정말 춥더군요. 그 차가운 공기란 마치 살갗이 에이는 듯한 바로 그 느낌이더군요. 일본의 추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추워도 발밑부터 추운 일본보다 덜 춥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요.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인지 발밑부터 추워요." - (다카하시 마리, 36)

실제로 살아 보니 정말 그렇다. 겨울에 맨발로 진흙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추위를 느낀다. 한국이 추우면 일본도 춥다. 실제 기온차는 크지만 그 체감 온도는 오십보, 백보다. 아니 일본이 더춥게 느껴진다. 실제 기온과는 상관없이.

요즘 같은 추위에 길모퉁이에서, 약간의 햇볕에 의지해 웅크리고 앉은 노숙자들을 보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마치 사람이 아닌 듯한 그 초췌한 몰골을 보면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도 못하면서 누군가 그 처지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도대체 경찰은 뭐하는 거야?" 그러면서….

어린 시절 1960년대 말에는 거지 행색을 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죄다 경찰이 잡아 갔었다. 그것도 긴 막대기로 등짝을 밀어가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사람들만 수용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가 노숙자들을 보면 경찰이 생각난다. 도쿄 우에노 공원 입구에 가면 경찰서 앞이고 옆이고 할 것 없이 버젓이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텐트를 치고 상주한다. 노숙은 범죄가 아닌 것이다.


그 옆을 무심한 듯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갈 곳이 있는 그들은 다들 제 갈길만 서둘고 붙박이처럼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는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은 늘 그자리에 그대로 있다.

어제 6일 낮, 근무 중의 일이다. 급히 가까운 곳의 은행을 가기 위해 외투를 대충 걸치고 길을 나섰다. 바람이 살이 에이게 차가워 대충 엉성하게 걸쳤던 외투를 꽁꽁 여미고 자라목처럼 움츠러드는 목 위로는 목도리를 칭칭 감아가며 나는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다.


갈 길을 서둘던 내 눈에 삐쩍 마른 한 노숙자가 음료수 자동 판매기 옆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이 보였다. 그 노숙자의 다른 한 손에는 두 개 정도의 찌그러진 알루미늄캔이 들려 있었다. 순간이었지만, 너무 춥고 배고픈 나머지 알루미늄 캔이라도 모아서 먹을 것을 구하려고 그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치던 나는 곧 발길을 돌려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외투 주머니에 넣은 내 손에는 동전이 만져졌다. 자판기를 보니 뜨거운 각종 음료가 110엔 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무이데스네~ 앗따카이 모노데모 잇빠이 논데요(춥네요~ 따듯한 거라도 한 잔 하세요)."
"……."

코트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던 100엔짜리 동전 2개를 그 사람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냥 고개를 까딱하며 새까만 손을 내밀어 동전을 받았다. 수염으로 뒤덮인 그의 입술에서 제대로 된 말은 새어나오지 않았지만 감사하다고 말하는듯 잠시 우물거렸다.

춥다고 겹겹이 껴입고도 코트를 꽁꽁 여미고 목도리로 단단히 휘감은 나도 이렇게 춥게 느껴지는데 홑바지에 맨발, 스웨터 한 장인 비쩍 마른 이 사람. 뜨거운 음료수라도 한 잔 뽑아 마시면 단 몇분 만이라도 덜 춥지 싶었다.

나는 그에게 값싼 동정을 베푼 것 이었다. 그는 이미 나와 초면이 아니다. 출근길의 늘 같은 장소에서 보게 되는 사람이다. 이미 일 년 가까이 그 사람은 나와 구면의 관계에 있다.

내 값싼 동정이 근본적인 해결에 전혀 도움은 되지 않을지언정 이렇게 추운 날씨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겨우 동전 정도 건네는 내 얄팍함이 더 초라하다. 그래서 더 추운 겨울.

겨울엔, 요즘처럼 추운 겨울엔 나는 슬프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겨울이 나는 싫다. 인정머리 없게 추운 이 겨울이 나는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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