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김씨, 두부공장 사장으로 거듭나다

사회적 기업 공동체 '짜로사랑' 김동남 대표

등록 2006.01.07 16:06수정 2006.01.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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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바닥이 없다'고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가 말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람다운 것이라고.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에는 김동남(46)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두부공장 '짜로사랑'이 있다. '짜로사랑'이란 '진짜로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김 대표를 비롯한 9명의 직원이 이끌어가는 자활공동체의 이름이다.

생산품의 모든 원료를 100% 우리 농산물만 사용해 어려운 농촌 현실에 희망을 불어넣고, 도시인에게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사회에서 소외된 수급, 노숙자들에게 자활·자립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 이들 공동체의 목표이다.

그러나 짜로사랑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러한 운영상의 좋은 취지 때문만이 아니다. 8명의 직원과 더불어 자신 또한 사장이 아닌 직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김동남 대표의 '인간 승리'와 같은 이력이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를 술로 허송세월하다 급기야 노숙자로 전락했다가, 40대에 당당한 두부공장 사장이 된 김동남씨. 새해의 시작에도 아랑곳없이 기승을 부리는 동장군과 싸우며 그를 찾아간 날, 낡은 점퍼 한 장 걸치고 바람을 맞고 서있는 그의 모습에는 절망과 희망을 몸소 체득한 이의 강인함이 엿보였다.

노숙자 김씨의 '새로운 인생'

알콜중독 노숙자에서 어엿한 두부공장 사장이 된 김동남(46)씨.
알콜중독 노숙자에서 어엿한 두부공장 사장이 된 김동남(46)씨.더불어세상
불과 3년 전만 해도 김동남씨는 술에 절어 길거리를 방황하던 노숙자였다. 그런 그가 짜로사랑과의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노숙자 쉼터 '해뜨는 집'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당시 수원희망자활후견기관에서는 노숙자와 저소득층의 자활·자립을 돕기 위해 '우리 콩두레 사업단'을 조직했는데 그것이 짜로사랑의 시초가 되었다.


말이 사업단이지 당시 상황은 8평 남짓한 공장에 중고 기계 1대, 노숙자 직원 2명이 전부였다. 당연지사 운영 상태는 엉망이었고 하루 생산량은 30모가 고작이었다. 새 삶을 살고자 마음먹었지만 당시 김씨는 '과연 이런 곳에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쉼터에 들어오기 전 김동남씨의 삶은 암울 그 자체였다. 감수성이 여리고 의협심이 강했다는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했단다. 그러다 15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20대에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알콜 중증 장애자가 되어 있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책감에 수녀인 누나의 도움을 받아 술을 끊고 어린이집 운전과 아파트 관리 일을 시작하면서 결혼도 했다. 그러나 IMF 경제 한파를 겪으면서 김씨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가정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도 헤어진 뒤 급기야 노숙자로 전락한 김씨는 일가친척과도 일체 연락을 끊고 방황의 길을 걸었다.

두부사업단에 들어왔지만 쉬이 마음을 잡지 못한 김씨는 일을 하는 동안에도 술 때문에 다섯 번이나 쓰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 하지만 그는 쉼터시설장과 수원희망자활후견기관장의 끈질긴 설득과 격려로 재기할 수 있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 하지 않았던가. 심신을 추스른 그는 '이왕 하는 일 제대로 한번 해보자. 여기서 다시 좌절할 수는 없다'는 각오로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먼저 상품의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두부 판매상과 시장 사람들을 찾아가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두부를 만드는 각각의 공정과정을 꼼꼼하게 익혀 몇십 번씩 연습했다. 그러기를 여러 날, 드디어 짜로사랑표 우리콩두레 두부를 만들게 된 것이다.

100% 우리콩으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
100% 우리콩으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더불어세상
"지금 방금 만든 거예요. 드셔보세요. 아무나 못 먹는 건데, 우리 두부 맛보시는 거 행운입니다. 정말 맛있어요."

윤기 자르르한 우윳빛 순두부를 푸짐하게 담은 접시를 기자에게 내놓으며 김 대표는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두부의 우수한 품질과 맛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2003년 드디어 수원과 서울의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두부 전량 공급 계약을 맺게 되었고 같은 해 8월 지금의 25평 공장에 새 터전을 마련해 부족한 장비와 기계를 보충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자신들에 대한 편견 없이 제품을 믿고 사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현재 짜로사랑의 우리콩두레 두부는 친환경 우리농산물 매장과 물류센터에 공급되고 있으며 지방에서 주문하는 고객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평균 월 매출액은 약 1500만 원이며 생산량은 하루 평균 2000모 정도이다.

'사회적 기업' 공동체 짜로사랑

사업단이 꾸준한 성장과 함께 안정화되면서 김동남 대표는 새로운 고민에 봉착했다.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제시해 준 두부사업단을 어떤 모습으로 키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고 그 해답으로 '사회적 기업' 형태의 자활공동체를 생각해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박탈당한 채 소외받고 있는 과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끌어안고자 한 김 대표의 의지의 표출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사회적 기업'은 미국인 케빈 맥도널드가 약물 중독자를 위한 장기주거 재활 프로그램인 트로사(TROSA)를 진행하면서 운영비 마련과 약물 중독자들의 직업훈련을 위해 만든 이사업체 '트로사무빙'에서 출발했다.

기부정부가이드를 운영하는 정선희씨의 저서 <한국의 사회적 기업>에서는 '사회적 기업'이란 이윤창출이나 효율성이라는 영리적 활동을 추구하지만 기업주나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일반 기업과는 달리 '사회적 목적'을 위해 이윤을 재투자하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회적 목적'이란 저소득 소외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나 직업훈련 제공, 자립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 제공 등을 일컫는 것으로 즉, 단순한 보조금 지급을 넘어서 수급·노숙자들이 사회 제도권 내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자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남의 고통을 돌보는 사람은 부와 권력이 있는 이가 아니라 그 고통과 슬픔을 실제로 겪은 사람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두부 만들기에 여념없는 '짜로사랑' 직원들
두부 만들기에 여념없는 '짜로사랑' 직원들더불어세상
2004년 1월 1일에 쉼터 시설장과 자활기관장은 김 대표의 뜻을 받아들이고 두부사업단의 권한을 그에게 모두 일임하였고 그 해 7월 24일 짜로사랑은 창단식을 열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나름의 경영철학과 내부규율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했다. 사업 초기에는 직원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서로 이해하고 봐주는 식이었지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무책임하고 게을리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랜 시간 수급·노숙자 생활을 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활의지와 직업정신이 희박하다. 짜로사랑의 경우에도 힘들게 일하느니 정부보조금이나 공공근로인건비에 의존하는 생활이 차라리 낫다며 금방 그만두거나 하루 종일 일하는 시늉만 하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다시 수급·노숙자로 돌아가 사회를 원망하고 남에게 의존하면서 살고 싶다면 여기서 당장 나가도 좋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재기하고 싶은 사람들만 남아라"는 따끔한 충고를 던지고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였다.

품질기준에서도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조금만 질이 떨어지는 두부가 나온 날에는 "그냥 놔두면 가져가서 나눠먹기라도 하지 않느냐?"는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폐기해 버렸다.

그 결과 현재 9명의 짜로사랑 식구들은 성실과 신뢰로 똘똘 뭉친 조직이 되었다. 두부 운송을 맡고 있는 직원 한영섭씨는 "버는 돈은 많지 않지만 사람들과 땀 흘려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과정은 정말 값지다"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노숙자입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간혹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신문이나 잡지 등 매스컴에 자신의 기사가 실리는 걸 보면서 김 대표는 뿌듯함보다 조심스런 우려를 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콜 중독 노숙자가 공장 사장이 되었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결국 '돈'이 문제지요. 저는 여전히 물질적으로는 노숙자예요. 한때 쓰레기 같이 살면서 얻은 마음의 병을 고치고 이제야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하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말하는 성공은 물질적인 부의 증대가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회로부터 제가 받은 도움을 이제 소외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동남 대표는 스스로 '짜로사랑 사회사업 추진 15년 계획'을 제시하고 올해에는 더욱 바쁘게 살 것을 다짐했다. 먼저 올해부터 2007년까지는 두부뿐만 아니라 콩을 이용한 생산 품목을 확대하고 어묵류 자체 생산을 시범 실시할 예정이다. 또 2007년에는 어린이 건강을 생각한 기능성 두유 개발을 추진, 2008년부터 2009년에는 어린이 두유의 생산과 공급을 늘려가면서 수원에 두부 전문 식당을 설립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이어 2010년에서 2011년까지는 각 사업단을 안정화시켜 기반을 확립시키고 두부 전문 식당을 각 지역에 활성화할 방침이다. 이 모든 계획이 그의 바람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졌을 때 그의 마지막 목표는 노후대책의 일환으로 직원들은 물론, 가난한 수급·노숙자들의 말년을 책임져줄 실버타운을 건설하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5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빈곤인구는 이미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8명 중 1명이 빈곤층임을 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아무런 사회적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난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김동남 대표가 이끄는 '짜로사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의 성공은 또다른 빈민의 구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깊은 절망과 맞서 희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기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짜로사랑'의 바람과 열정이 결실을 맺어 한국 사회적 기업의 모델로서 우리 사회 전체에 귀감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더불어세상>에 게재되었습니다. '사람이 희망'임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더불어세상>에 게재되었습니다. '사람이 희망'임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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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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