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가 사장님 됐으니 놀랍죠"

[인터뷰] 사회적 기업 전도사 '기부정보가이드' 정선희 대표

등록 2005.12.22 17:43수정 2005.12.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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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기부정보가이드 대표
정선희 기부정보가이드 대표오마이뉴스 남소연

기부에도 색깔이 있다. 무작정 '주는 게'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부정보가이드 정선희(44) 대표는 기부의 색깔을 부여하는 코디네이터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몇 안 되는 기부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기부와 기금 모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부정보가이드(www.giveguide.com)를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그가 요즘 부여잡고 있는 주제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기업도 적극적 의미의 기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의 정체성은 "우리는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는 미국의 사회적 기업 루비콘 제과 관리자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사회적 기업은 이윤 창출이나 효율성이라는 영리적 활동을 추구하지만 기업주나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일반 기업과는 달리 '사회적 목적'을 위해 이윤을 재투자하는 기업이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한 정부의 자활사업을 계기로 우리 나라에서도 사회적 기업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립한 자활공동체들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사회적 기업의 매력에 빠지다

정선희 대표는 왜 사회적 기업에 힘을 쏟는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정 대표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잠깐 해야 할 것 같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81학번인 그는 80년대를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다. 구로, 인천, 울산 등지에서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을 하면서 '골고루 따뜻한 세상 만들기'를 꿈꿨다.


그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91년.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진로를 바꿔야겠다고 마음 먹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잠시 취직해 대기업에 다니기도 했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96년 만 다섯살 된 아들과 둘이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할 생각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경험을 살려 '지역사회조직'을 전공으로 선택했어요. 한국에서는 10년 운동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운동(movement)을 높이 평가해주더군요. 그 덕분에 전공인 지역사회조직 공부도 어렵지 않게 했습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에는 이익 창출과 사회적 사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12기업의 사례가 소개돼 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에는 이익 창출과 사회적 사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12기업의 사례가 소개돼 있다.다우
정선희씨가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지역사회조직을 전공하며, 석사학위를 받을 당시 미국에서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들 모두가 궁극적으로 그렇듯 일자리와 자립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의식주를 해결하는 지원을 해도, 그것 자체가 근본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업은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잖아요. 비영리와 영리가 결합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자립할 수 있는 원천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기부정보가이드를 운영하던 정선희씨는 2004년 '(재)실업극복국민재단 함께 일하는 사회'의 지원을 받아 미국의 사회적 기업 16곳의 사례를 소개한 <이익을 만들고 행복을 나누는 사회적 기업>을 냈다.

여기에는 약물 중독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인 '파이어니어 인터스트리즈'가 항공기를 만드는 '보잉사'와 파트너십을 통해 성공한 사례나 노숙 청소년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활용해 아이스크림 판매에 뛰어든 '쥬마 벤처스' 등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당시 사회적 기업하면 유럽 사례에만 익숙했던 탓에 미국의 사회적 기업을 소개한 책은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게 됐다.

"미국 사례를 내놓고 났더니 자활후견협회로부터 '우리 사례도 책으로 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올해 6월부터 두 달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12개 사업장을 집중적으로 인터뷰를 해서 만든 책이 바로 <한국의 사회적 기업> 이예요."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면서 처음에는 '쪽 팔린다'며 소극적이던 직원들이 이제 "쓰레기 냄새조차 향기롭다"고 할 정도가 된 음식물 재활용업체 '삶과 환경'이나,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에 희망 없던 노숙자들이 '진짜로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만든 두부사업단 '짜로사랑', 화장실 청소로 시작해 청소용역전문업체로 발돋음 하고 있는 '함께 일하는 세상' 등 자활후견기관들이 만든 전국 12개 사회적 기업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슴도 담았지만 머리도 담았다"

정선희씨는 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많이 바꿨다고 한다. 그들이 겪었을 좌절과 역경의 깊이나 폭을 헤아리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선희씨는 그들의 삶을 눈물로만 보지 않았다.

"책을 쓰면서 어려움 가운데 살아남은 한국의 사회적 기업들이 어떻게 시장 상황을 읽고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유심히 봤어요. 그 속에서 어떤 실험들을 전개했는지, 어떻게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지 말이죠. 책에 가슴도 담았지만 머리도 담으려고 노력했지요."

정씨는 한국에서 앞으로 사회적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활 2년 후에는 무조건 '알아서 해라'(정부가 2년까지는 인건비 지원을 한다)가 아니라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인프라 구축과 지원, 그리고 성공 모델을 개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회적 기업들이 어떻게하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수익성을 갖출 수 있는지 정부에서 교육도 하고 인력도 지원해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빈곤을 해결한다'는 대의에만 충실할 것이 아니라,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해야죠. 정부와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사회적 기업이 생산하는 물품을 구입해 파트너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미국연방정부가 법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의 물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한 것도 좋은 예가 될 겁니다."

정선희씨는 사회적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대기업의 정책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절실하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요즘 사회적 공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대기업들이 많지 않습니까? 물론 전시적이고 시혜적인 활동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경영활동의 일환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 기업들이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 가운데 독거노인 간병 같은 일은 간병사들이 만든 사회적 기업 '약손 엄마'에 위탁 한다든가, 야유회나 체육대회 때 도시락 사업체인 '나눔공동체'에 도시락을 주문한다면 일자리 창출과 재투자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겁니다."

정선희씨는 <한국의 사회적 기업>이 출판된 이후 12개 기업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가장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12개 사회적 기업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두부사업단 '짜로 사랑' 사장님이 방송에 소개된 후 저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세요. 노숙자가 사장님이 됐으니까 놀라운 일이죠. 순두부 공장 개소식을 하는데 저한테 축사도 부탁하셨어요.(하하)"

"장인정신을 갖고 기부분야 개척에 나서겠다"

개인 홈페이지 수준에서 출발한 기부정보가이드가 기부에 관한 다양하고 전문적인 컨텐츠를 제공하고, 기부 컨설팅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한 데는 정선희 대표의 즐기는 정신이 한몫 했다.

남의 사무실 전전하며 운영하던 기부정보가이드에는 현재 4명(파트타임 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홈페이지가 입 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교육요청과 함께 컨설팅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2년간 돈 없이 일했지만 즐겁기 때문에 열심히 했어요. 앞으로 기부 분야에서 장인 정신을 갖고 일하고 싶어요. 대충 사무실이나 운영하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일을 맡으면 고객에게 확실한 효과를 주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정선희 대표는 느긋하다. 그러나 도전 정신은 몸에 배어 있다. 80년대 운동에 뛰어들 때가 그렇고, 30대 중반 맨 몸으로 아이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렇다. 생소한 영역인 기부문화 개척에 나선 40대의 삶 또한 그렇다.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즐긴다는 정씨. 사회적 기업 전도사로 나선 그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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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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