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식모들>표지문학동네
옛날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이 되고 싶었던 곰과 호랑이는 동굴 안에서 고행을 하는데 호랑이는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곰은 고행을 견딘 끝에 여자가 된다. 그리고 그 후 곰은 단군과 결혼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동굴에서 도망나간 호랑이는 어떻게 됐을까? 동물의 왕으로 사는 걸 만족했을까? 혹시 다시 인간이 될 기회를 찾지 않았을까?
박진규는 <수상한 식모들>에서 호랑이들이 인간이 됐다고 상상한다. 그들도 곰처럼 여자가 됐는데 정통이 아닌지라 곰의 자리, 이른바 ‘안주인’자리를 빼앗지는 못한다. 그러면 호랑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호랑아낙이 된다. 호랑아낙이 되어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간다. 그런데 근현대로 되면서 호랑아낙들과 출생이 비슷하지만 생각이 다른 여자들이 나타난다. 이른바 ‘수상한 식모’다. 복수를 꿈꾸며 그 일환으로 부르주아 가정을 뒤흔들고자 하는 여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소설의 맛을 살리는데 상상력이 한몫해야 한다는 걸 상기한다면 호랑아낙과 식모를 앞세운 <수상한 식모들>은 안정한 영역에 자리를 잡았다. 곰과 호랑이의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재해도 존재감이 없었던 여자들과 그녀들의 복수를 상상해냈다는 것은 분명 기발한 것이다. 곰에 이어 호랑이도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케 했으니 분명 그 상상력은 한몫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상력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허무맹랑한 것이 있는가 하면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상상력이 다른 것처럼 상상력에도 ‘등금’이 있다.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해야 소설의 맛깔스러움이 한껏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상한 식모들>은 어떤가? 맛깔스럽다. 대개 유부남의 불륜 대상이 된다는, 상상 같지도 않은 상상만 일으키던 식모를 개성 있게 만들어냈고 그것을 기반으로 역사까지 흔드는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냈으니 맛이 생명력을 얻은 듯하다.
<수상한 식모들>의 주인공 신경호는 불쾌한 기억을 갖고 있다. 기억의 장면은 누군가 자신을 향해 쥐를 갖고 장난 같은 걸 쳤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경호도 모른다. 그저 그것을 생각하며 가위눌림 같은 현상을 겪거나 기절을 한다. 그런데 우연히 경호는 그 누군가를 떠올린다. 식모다. 한창 자신의 집이 잘 나가던 시절에 집안일을 하던 식모라는 걸 기억해내고 이때부터 <수상한 식모들>의 상상력은 사방팔방으로 뻗어가기 시작한다.
상상력의 초반부는 무게가 없어 보인다. 가볍다. 장난 같이 보일 정도다. 하지만 경호가 식모를 만나면서부터 점차 무게가 생기기 시작한다. 사방팔방으로 뻗어가기 시작하던 것도 틀을 갖게 된다. 이것을 가능케 한 틀은 무엇인가? 경호가 식모와 거래를 하면서 생긴 틀이다. 경호는 얼굴만 빼고 돌이 된 식모를 만나고 왜 쥐를 갖고 못된 장난을 쳤느냐고 따진다. 식모는 정색을 하며 장난이 아니라 운명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은 무엇을 말하는가. 식모는 경호에게 식모들의 역사, 정확히 말하면 수상한 식모들의 역사를 기록해달라고 한다. 물론 이것을 위해서는 호랑아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경호가 그걸 해줄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상한 식모들>에서 쥐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쥐는 수상한 식모들이 부릴 수 있는 것으로 어린 시절, 귀에 들어간 쥐는 아이의 꿈이나 감수성을 먹으며 아이를 흑백세계의 논리만 이해하게 만든다. 아니면 꼬리에서 발산하는 몽롱한 호르몬으로 감수성을 얽히고설키게 만들기도 한다.
쥐는 심지어 시간과 공간의 구성을 해체하기도 한다는데 수상한 식모의 쉬운 표현에 따르면 “갈가리 찢어진 역사책의 문구들이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엉덩이와 아랫도리를 내밀어서 교접”하는 것이다. 이것을 더 쉽게 표현하자면 ‘과거를 보게 되는 것’인데 어쨌든 경호는 쥐를 이용해서 수상한 식모들의 과거를 보게 되고 이때부터 <수상한 식모들>의 상상력은 틀을 갖추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러한 <수상한 식모들>의 상상력은 확실히 놀랍다. 해석이 새롭다는 것이 그렇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에서도 상투적인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 그렇다. 마치 소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또한 그 상상력은 유쾌함으로 연결된다. 때문에 막힘이 없다. 계곡을 내려가는 물줄기처럼 멈추지 않고 뻗어나가는데 지켜보는 것으로도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문학상 수상작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수상한 식모들> 앞에서 그 말은 편견이 된다.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무장한 <수상한 식모들>, 기억에 남을 유쾌한 잔치를 마련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문학동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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