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재미있는 동물 생태 탐사보고서

[새책] 윌리엄 프루이트 <와일드 하모니>

등록 2006.01.08 14:12수정 2006.01.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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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윌리엄 프루이트 <와일드 하모니> 앞표지

윌리엄 프루이트 <와일드 하모니> 앞표지 ⓒ 이다미디어

한때 미국에서 ‘알래스카 전차계획(Project Chariot)'이 세워지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1958년 알래스카 앞바다에 핵폭탄을 터뜨려 인공항구를 만들어서 냉전 상태에 있던 소련에 경고도 하며, 알래스카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존 F. 케네디를 비롯한 개발주의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었다.

그때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한 생태 동물학자가 있었다. 윌리엄 프루이트다. 지의류(균류와 조류의 공생체)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지의류를 주요한 먹이로 먹고 사는 순록들에게는 물론, 순록에 의지하는 생활을 하는 원주민 이누이트에게도 연쇄적이고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반대한 것이었다.


그 바람에 당시 알래스카대학교 동물학과 교수였던 그는 교수직 박탈과 함께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그 뒤로 오랜 세월을 캐나다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의 자연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침엽수림 연구, 타이가와 툰드라의 생물들을 쉬지 않고 연구했다.

윌리엄 프루이트가 쓴 명저가 있다. <와일드 하모니(Wild Harmony)> 한국어판(2006년 1월 이다미디어 펴냄)에는 ‘북극 동물의 삶과 생명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가 미국에서 추방당한 뒤 캐나다의 오클라호마대학교 동물학과 교수로 있을 때 탐사하고 연구한 현장 기록들이다.

미국의 <사이언스>지가 ‘최고의 실천생태학 책’이라고 극찬하였으며, 캐나다의 자연학자이며 현재 환경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인 팔리 모와트는 이 책에 이렇게 찬사를 보냈다.

‘이 분야의 고전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은 순록, 늑대, 스라소니, 말코손바닥사슴이 사는 아북극 지역인 타이가의 생태를 고스란히 재현한 걸작이다. 이 동물들을 비롯해 이 흥미로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동물들 자신의 감각을 통해 아북극이라는 혹독한 세계를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해준다. 눈신토끼의 흔적을 뒤쫓는 스라소니와 함께 그레이트노스우즈를 다녀보라. 붉은다람쥐와 가문비나무가 어떻게 공생하는지 느껴보라. 즉 그곳 주민들의 입장에서 그 땅을 체험해 보라. 이 책은 올바른 생태학과 탁월한 문장이 잘 결합된 보기 드문 역작이다.’

과연 그렇다. 이 책은 탐사보고서의 형식을 띤 논픽션이기는 하지만, 문장력과 구성이 뛰어나므로 탁월한 작가의 동물 연작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눈신토끼는 버드나무 덤불로 가서 먹이를 먹은 뒤 자신의 눈 굴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에 휘어진 어린 가문비나무 덤불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뛰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위에서 무거운 것이 그를 덮쳤다. 그의 몸은 눈이 다져져 생긴 길에 그대로 짓눌렸다. 그는 고통에 겨워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긴 이빨이 우두둑 소리와 함께 그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와 뇌에 꽂히는 순간 비명은 뚝 끊겼다.

스라소니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입술에 묻은 피를 핥더니,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성취감에 겨워 나직이 으르릉거렸다. - <와일드 하모니> ‘눈신토끼의 삶’ 마지막 단락


살벌한 먹이사슬의 현장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냉혹하고도 철저한 자연의 법칙인 셈이다. 철저한 먹이사슬에 의해 생태의 균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에 의해 동물이 죽는 데 있다. 인간이 사냥용으로 뿌려놓은 독약 스트리키닌을 먹고 순록이 죽고, 그 순록을 먹은 늑대가 죽고, 그 늑대를 갈까마귀가 먹고 날아가다 죽고, 늑대의 시체를 먹은 여우가 죽고 순록의 시체를 먹은 울버린이 죽는다. 이 장면의 마무리를 윌리엄 프루이트는 이렇게 하였다.


연못에 파문이 이는 것처럼, 독약이 놓인 곳에서부터 고통과 죽음, 파괴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와일드 하모니> ‘최고의 사냥꾼 늑대’에서

어디 독약뿐이랴. 개발을 앞세워 나가는 인간의 정책에 의해 북극과 알래스카가 몸살을 앓고 시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윌리엄 프루이트는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산성비는 나무에 붙은 지의류까지 죽인다는 점, 벌목은 생태계를 단순화시키고 쇠퇴시킨다는 점 등이 그렇다. 심지어 원주민들까지도 개인의 영달과 쾌락을 위해 북극의 야생동물을 이용하려 하고 있는 데 대해 더불어 비판하고 있다. 점점 사라져 가는 타이가와 툰드라… 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 책 속을 여행하다 보면, 생태학이 인간에게 왜 필요하며 우리가 자연에게 왜 감사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제 그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1993년에 미국은 그를 복권시켰으며 알래스카대학에서는 그에게 명예과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러나 명예회복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윌리엄 프루이트가 자신의 저서 <와일드 하모니>에서, 탐사 경륜을 바탕으로 하여 논리적으로 경고한 내용들을 해당 국가의 해당 당국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 나가야 할 일 또한 중요할 것이다.

와일드 하모니 - 북극 동물의 삶과 생명의 이야기

윌리엄 프루이트 지음, 이한음 옮김, 윌리엄 베리 그림,
이다미디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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