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풀이 끝내주는 전복해물탕 드세요

<음식사냥 맛사냥 58> 갖은 해물 들어간 제주의 '전복해물탕'

등록 2006.01.09 19:00수정 2006.01.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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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풀이 끝내주는 전복해물탕 드세요 ⓒ 이종찬

연푸른 하늘을 문 비췻빛 수평선을 마구 흔들며 맵차게 불어대는 칼바람... 저만치 말 갈기처럼 달려오는 하얀 파도를 머금으며 현기증 일도록 자꾸만 흔들리는 노오란 평지나물꽃(유채꽃)... 그 누군가의 새해 간절한 소망처럼 쌓아올린 돌탑을 포근하게 끌어안으며 가만가만 다가오는 성산포 일출봉...

바다로 수평선으로 통통통 소리를 내며 마구 달려나가고 싶어 머리에 꽁꽁 묶인 밧줄을 세차게 흔들며 안간힘을 쓰는 고깃배들... 하늘과 바다 깊이 꼭꼭 심어둔 어부의 푸른 꿈처럼 툭툭 떨어지는 끼루룩 끼루룩 갈매기 울음소리... 고인돌 같은 바위 위에 한 점 섬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놓인 누우런 호박 한 덩이...

그곳에 '하늘이 내린 풍경'이 있다. 이름 하여 전복해물탕 전문점 <하늘이 내린 풍경>(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소재). 땡겨울인데도 앞마당 텃밭에 노오란 평지나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이 집에 들어서면 확 트인 커다란 유리창에 성산포 일출봉과 싯푸른 제주 앞바다가 금세라도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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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겨울인데도 노오란 유채꽃이 피어 있다. 저만치 보이는 땅이 성산 일출봉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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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의 봄을 느끼려면 제주 성산포 주변으로 가라 ⓒ 이종찬

경치 좋은 곳에서 음식을 먹으면 소화도 잘 된다

"전복해물탕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나요?"
"그야 당연히 살아있는 전복과 각종 해물이 들어가지요."
"해물이라면?"
"삶은 문어, 소라, 모시조개, 꽃게, 새우, 미더덕, 홍합 등이 들어갑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전복해물탕은 속풀이에도 아주 좋지만 건강에도 그만이랍니다."

2006년, 개띠 해 1월 1일 오후 1시. 새해 첫 날 제주도에서 먹는 첫 점심은 무언가 분위기가 있는 집을 찾아 평소에 먹지 못했던 그 어떤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남제주군을 빙빙 돌다가 언뜻 눈에 띄어 들어간 곳이 바로 '하늘이 내린 풍경'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음식점이었다.

지난 해 7월 1일에 문을 열었다는 이 집 주인 강추향(44)씨는 "싱싱하게 살아 꿈틀대는 전복을 넣은 해물탕은 제주도가 아니면 쉬이 맛보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어 성산포와 제주 앞바다, 유채꽃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정말 하늘이 내린 풍경 같지 않아요?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 음식을 먹으면 소화도 아주 잘 되지요"라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는다.

처림표에는 전복해물탕 중(中)이 3만5천 원, 대(大)가 4만5천 원이라고 씌어져 있다. 기자가 "가격이 왜 이리 비싸요?"라고 묻자 강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그 비싼 전복이 3~4마리나 들어가는 데다 싱싱한 해물은 또 얼마나 푸짐하게 들어가는 데요? 적은 것 하나를 시켜도 2~3명은 너끈하게 먹을 수 있어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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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전복이 살아 꿈틀거리는 전복해물탕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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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해물탕에는 전복, 소라, 문어, 모시조개, 꽃게, 왕새우, 홍합, 미더덕과 매운고추, 마늘, 대파가 들어간다 ⓒ 이종찬

뜨거운 가스불 위에서 마구 꿈틀거리는 전복

강씨에게 전복해물탕 적은 것을 하나 시켜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노오란 평지나물꽃이 짙푸른 바다와 성산포를 흔들고 있다. 아니, 바다가 성산포와 노오란 평지나물꽃을 흔들고 있는 것인지, 성산포가 바다와 노오란 평지나물꽃을 흔들고 있는 것인지 헛갈린다. 그 위로 연푸른 하늘을 휘저으며 천천히 날고 있는 하얀 갈매기 몇 마리….

아름답다. 깔끔한 실내에 앉아 바라보는 창밖은 하늘이 내린 풍경 그대로다. 그래. 새해 첫 날 하늘이 내린 풍경 속에 들어앉아 제주도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맛깔스런 전복해물탕을 기다리고 있는 이 순간은 너무나 행복하다. 하긴 행복이란 게 별 게 있겠는가. 남들이 볼 때에는 별 게 없는 것 같아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순간이 바로 행복 아니겠는가.

한동안 남제주 성산포의 아름다운 풍경에 포옥 빠져 넋을 놓고 있는데, 강씨가 밑반찬을 주섬주섬 식탁 위에 올리기 시작한다. 배추김치, 갓김치, 어묵조림, 가오리젓갈. 밑반찬의 가짓수는 단촐하다. 하지만 하얀 그릇에 깔끔하게 담겨 있는 밑반찬들이 보기에도 아주 맛깔스럽게 보인다. 그 중 가오리젓갈이 짭쪼름하면서도 뒷맛이 몹시 구수하다.

하늘에 내린 풍경과 가오리젓갈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홀짝 들이키고 있는데, 어느새 보기에도 푸짐한 전복해물탕이 식탁 한가운데 떡하니 올려진다. 가스렌지에서 새파란 불꽃이 치밀어 오르자 냄비 한가운데 해물의 군왕처럼 올려진 싱싱한 전복이 '앗 뜨거라'라는 듯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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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은 살아있을 때 건져 먹어도 되고 끓여 먹어도 된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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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해물탕은 건강에도 아주 좋지만 숙취해소에도 그만이다 ⓒ 이종찬

미끌미끌 쫄깃쫄깃 씹히는 감칠맛이 아주 뛰어난 살아 꿈틀대는 전복

"전복은 포옥 익혀서 드셔도 맛이 좋지만 싱싱하게 살아 있는 지금 드셔도 맛이 참 좋아요. 평소 저희 집을 찾는 손님들은 저렇게 살아 꿈틀거리는 전복을 우선 몇 개 드시고, 나머지 전복 몇 개는 삶아 드시지요. 전복해물탕의 참맛은 살아있는 전복도 맛보고, 삶은 전복도 맛보는 것에 있어요."

강씨의 말처럼 냄비 위에서 마구 꿈틀거리는 싱싱한 전복 하나 꺼내 살을 발라놓는다. 이어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전복을 입에 넣자 금세 입 안 가득 상큼하고도 짭쪼름한 바다내음이 가득하다. 전복을 자근자근 깨물기 시작하자 미끌미끌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도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감칠맛이 그만이다.

연붉은 알이 가득찬 발가스럼한 왕새우의 속살을 발라먹는 맛과 꽃게의 속살을 빼먹는 맛도 기막히다. 쫄깃하게 씹히는 문어, 예쁜 껍질 속에 젓가락을 포옥 꽂아 살을 쏘옥 뽑아먹는 소라, 껍질째 손에 들고 후루룩 후루룩 빼먹는 홍합과 모시조개,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속에 오도독 씹히는 미더덕. 소주 한 병이 금세 비워진다.

어느새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송송 배어나면서 한동안 더부룩했던 속이 확 풀린다. 붉으죽죽한 전복해물탕 국물에 하얀 쌀밥을 말아 잘 익은 갓김치를 척척 걸쳐 먹는 맛도 별미 중의 별미다. 게다가 맛깔스런 전복해물탕이 놓인 식탁 곁 창 밖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풍경이 전복해물탕 속에 빠진 것인지 전복해물탕이 풍경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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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와 새우, 소라의 살을 빼먹는 맛도 끝내준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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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전복과 꽃게 ⓒ 이종찬

"저희 집 전복해물탕의 맛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티없이 맑은 제주 앞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물을 그날 그날 바로 바로 쓰는 데 있어요. 부재료 또한 매운고추와 대파, 마늘, 소금밖에 안 쓰지요. 사실, 다른 재료를 잡다하게 많이 넣으면 해물 본래의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사라지거든요."

잊을 수 없는 맛과 아름다운 풍경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에 가면 땡겨울에도 노오란 평지나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겨울 속의 봄을 만끽할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싯푸른 제주 앞바다가 선물하는 시원하고도 쫄깃거리는 깊은 맛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하늘과 바다와 사람이 모두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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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들머리 반듯한 돌 위에 누우런 호박 하나가 그 누군가의 소망처럼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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