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 죽어야 골고루 얻어먹는다"

<음식사냥 맛사냥 59> 선비의 지혜가 담긴 맛깔스런 '진주 헛제삿밥'

등록 2006.01.16 17:55수정 2006.01.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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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런 진주 헛제삿밥 드셔 보셨나요? ⓒ 이종찬

진주 헛제삿밥에는 해산물이 뜸뿍 들어간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예로부터 음식, 하면 맵고 짜고 가지 수도 몇 되지 않는 경상도 음식보다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차려져 나오는 전라도 음식을 손꼽았다. 이는 경상도에는 전라도 곳곳에 널려 있는 드넓은 평야가 거의 없고, 봉우리가 높고 계곡이 깊은 산이 많은 탓일 게다.

게다가 야트막한 산을 개간하여 그렇게 겨우 지은 농작물을 양반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깡그리 수탈까지 해 갔으니 경상도 민초들에게 먹거리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또한 그 때문에 경상도 민초들은 산나물이든 콩잎이든 채소든 일단 먹거리가 생기면 아껴 먹고 오래 먹어야 했다. 경상도 음식이 짜고 매운 것도 아마 이 때문이었다고 어림짐작된다.

하지만 경상도 음식이라고 해서 다 그렇게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경상도에서도 음식, 하면 전라도 음식 못지않게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차려내는 곳이 진주다. 예로부터 진주, 하면 전통문화와 음식을 손꼽는다. 그중 진주를 대표하는 네 가지 음식은 진주비빕밥, 진주 냉면, 진주 헛제삿밥, 진주 교방음식이다.

특히 진주의 헛제삿밥은 여러 가지 나물만 들어가는 안동 헛제삿밥과는 달리 여러 가지 나물과 함께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다. 게다가 안동 헛제삿밥은 따로 따로 그릇에 담겨 나오지만 진주 헛제삿밥은 한 상에 같이 차려져 나온다. 화학 조미료와 고추장을 일체 쓰지 않는다는 것도 진주 헛제삿밥만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숨겨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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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면 갈전리에 위치한 '진주 헛제삿밥'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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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음식이 푸짐하게 나오는지 상다리가 부러질 듯 하다 ⓒ 이종찬

"단체로 오면 진주 헛제삿밥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어예"

"진주 헛제삿밥은 조선 시대 유생들이 밤늦도록 글을 읽다가 배가 출출해지자 꾀를 내어 만든 음식이라고 합니다. 배는 고프고, 밤늦게 음식을 만들게 되면 그 냄새가 이웃에 풍겨 가난한 서민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는 거죠. 그때 유생들이 실제로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를 지냈다며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나눠 먹은 음식이 헛제삿밥의 원조입니다." -진주시 박용덕 관광진흥담당

지난 13일(금) 오후 1시. 여행작가 김정수(35) 선생과 함께 경남 진주시에서 1박2일 동안 실시하는 '한류상품 팸투어'에 갔다가 처음 들어갔던 진주 전통음식전문점 '진주헛제삿밥'(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1121). "손님들이 원하기만 하모 제사상 차림도 차려주지예"라고 말하는 이 집 주인 이명덕(58)씨는 "20여 년 앞 어머니가 하시던 것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귀띔한다.

이씨는 "20명 이상 단체로 오면 한 사람 당 1만5천 원씩을 내고 진주 헛제삿밥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어예"라며, "헛제삿밥 만드는 설명을 30분 정도 들은 뒤 손님들 스스로 준비된 재료로 헛제삿밥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며 웃는다. 기자가 "그러다가 손님들이 여기저기에 헛제삿밥집을 차리면 어떡할 거냐?"고 묻자 "6~70년 된 맛을 쉬이 따라오겠어예?" 한다.

널찍하고 깨끗한 안방에 들어서자 길다란 상 위에 빼곡히 놓인 금빛 놋그릇 속에는 육전과 서대전(소 앞다리에 붙은 고기로 만든 전), 쇠고기 꼬지조림, 밤, 대추, 연뿌리로 만든 전, 도라지전, 돼지 편육, 시루떡 등이 푸짐하게 담겨 있다. 그 곁에 있는 커다란 놋대접 속에는 고사리, 도라지를 비롯한 7가지의 나물이 저마다 예쁜 색을 빚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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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놋대접에 담긴 깔끔한 음식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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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헛제삿밥에는 일곱 가지 나물이 들어간다 ⓒ 이종찬

진주 헛제삿밥은 음식이지만 또 하나의 전통 예술품이다

아름답다. 음식이 아니라 무슨 예술품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듯하다. 한동안 깔끔하고도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이씨가 하얀 쌀밥 한 그릇과 여러 가지 건어물로 조리한 탕국을 올린다. 이어 막걸리가 가득 담긴 커다란 항아리에 표주박 하나를 띄워 상 한가운데 놓는다.

집에서 손으로 직접 빚었다는 막걸리의 노르스럼한 빛깔이 참 곱다. 표주박으로 막걸리를 떠내 묵직한 금빛 놋그릇에 담아 입에 대자 달착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에 흙내음 같은 게 물씬 풍긴다. 이어 일곱 가지 나물이 담겨 있는 놋그릇에 밥과 탕수를 넣고 쓰윽쓱 비비자 절로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간다.

그래. 이젠 적당히 비벼졌으니 어디 맛 좀 볼까. 10여 년 앞에 먹었던 그 안동 헛제삿밥 맛을 떠올리며 진주 헛제삿밥을 놋수저에 가득 떠서 한 입 넣자 향긋하면서도 아삭아삭 씹히는 나물 맛이 더없이 달다. 그래. 안동 헛제삿밥이 이른 초봄의 맛이라면 진주 헛제삿밥은 깊어가는 봄 맛에 바다 맛이 하나 더 들어 있는 듯하다.

헛제삿밥을 한 입 가득 입에 넣고 기분 좋게 씹다가 꿀꺽 삼킨 뒤 떠먹는 탕수국 맛도 입 속을 몹시 깔끔하게 만든다. 틈틈이 마시는, 누룩내가 훅 풍기는 막걸리 맛도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다. 묵직한 놋 젓가락으로 막걸리 안주 삼아 집어먹는 육전과 서대전, 쇠고기 꼬지조림, 각종 전과 떡 등도 저마다 독특한 빛깔과 맛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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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밥과 탕수국물을 약간 넣어 비벼먹는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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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악 비비기 직전의 진주 헛제삿밥 ⓒ 이종찬

"예로부터 고을 주(州)가 붙은 곳은 음식이 유명하다"

"맛이 어때예?"
"조상님 제사 지내고 난 뒤 먹는 그 맛 그대로구먼."
"저희 집은 화학 조미료와 고추장은 일체 쓰지 않아예. 화학 조미료는 나물 스스로 가지고 있는 향긋한 맛을 떨어지게 하지예. 그리고 고추장을 쓰면 헛제삿밥 고유의 맛이 나지 않고 비빔밥 같은 맛이 난답니다. 간혹 저희 집에 와서 고추장을 찾는 사람도 있긴 있어예. 하지만 일단 맛을 보고 나면 그런 말이 쑤욱 들어가버리지예."

이 집 주인 이명덕씨가 진주 헛제삿밥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7가지로 나눠진다. 나물 장만하기와 생선 찌기, 산적 만들기, 전 부치기, 국 끓이기, 과일 장만하기, 상 차리기가 그것. 그 중 헛제삿밥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나물 장만하기와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져 나오는 상 차리기에 대해 알아보자.

이씨는 "나물 장만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사리와 산채를 물에 불려 손으로 꼭 짠 뒤 기름에 볶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무는 채를 썰어 참기름에 볶고, 시금치는 데쳐 무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상 차리기에서는 맨 앞 줄에 밥과 나물 그릇, 탕국을 놓고 그 다음에 생선, 전, 고기류를 놓은 뒤 맨 뒷 줄에는 떡과 과일 등을 놓는단다.

진주시 박용덕 관광진흥담당은 "예로부터 고을 주(州)가 붙은 곳은 음식이 유명하다"며, "진주는 '북 평양 남 진주'라 할 정도로 교방문화가 발전한 곳이며, 음식문화도 따라 발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진주 헛제삿밥에 대해 우스개 소리로 "사람이 죽어도 좋은 곳에서 죽어야 골고루 얻어먹는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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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색깔도 예쁜 게 참 맛있게 보이죠?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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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헛제삿밥 집에서 직접 담근 막걸리 맛도 아주 깊다 ⓒ 이종찬

"경상도 음식이 이러니 저러니 하지 말고 고마 진주로 오이소. 진주에 와서 헛제삿밥이나 비빔밥 같은 음식을 한번 먹어보면 그런 말이 절로 입 속으로 쏘옥 말려 들어갈 겁니다. 사실, 임금님들이 먹었다는, 대장금 요리에 나오는 교방음식 같은 경우는 전라도에서도 쉬이 먹어보기 힘든 귀한 음식이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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