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요정, 빙어 속살 맛보셨나요?

<음식사냥 맛사냥 60> 향긋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오이맛 '빙어무침, 회'

등록 2006.01.23 19:26수정 2006.03.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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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별미 빙어무침 드세요 ⓒ 이종찬

얼음장 밑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는 민물의 요정 '빙어'

눈 시리도록 짙푸른 하늘 아래, 금세라도 쩌어엉~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하얀 얼음장 밑 티 한 점 없는 맑은 얼음물 속을 떼지어 미끄러지는 민물의 요정 빙어. 그래. 누가 빙어를 민물의 요정이라 불렀는가. 요염하고도 날쌘 몸놀림으로 헤엄치고 있는 빙어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물의 요정이 아름다운 춤을 추는 듯 눈이 부시다.

빙어의 몸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은빛 비늘 또한 마치 얇은 비단옷을 걸친 듯 곱고 아름답다. 가늘고 긴 몸매에 가볍게 걸치고 있는 그 얇은 비단옷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빙어의 속살 또한 티 한 점 없는 물빛 그대로다. 언뜻 물이 빙어를 물결로 삼아 멋들어진 춤사위를 뽐내고 있는 것만 같다.

몸 길이가 약 15cm인 빙어는 겨울철 얼음낚시의 대명사이자 겨울철 맛의 대명사다. 빙어는 산 채로 초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쫄깃하고 고소하게 씹히면서 입 안 가득 향긋한 오이내음을 풍겨주는 깔끔한 맛이 그만이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빙어를 오이맛이 나는 고기라 하여 '과어(瓜魚)'라 불렀다.

빙어(氷魚)라는 이름은 조선 끝자락 실학자였던 서유구(1764~1845)가 <전어지>(佃漁志)에 '동지가 지난 뒤 얼음에 구멍을 내어 그물이나 낚시로 잡고, 입추가 지나면 푸른색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얼음이 녹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여, 얼음 '빙'(氷) 물고기 '어'(魚)자를 따서 '빙어'라 불렀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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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조리전문점 '합천호관광농원'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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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붙은 첨성대 모양의 황토난로가 독특하다 ⓒ 이종찬

합천호 빙어는 고기가 연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겨울철 합천호에는 빙어가 물 반 고기 반이라 할 정도로 많이 잡히지예. 특히 1급수의 합천호에서 사는 빙어는 고기가 연하고 비린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전국의 미식가들이 즐겨찾는 것은 물론 일본으로까지 수출을 하고 있어예. 빙어는 산 채 초장에 찍어 먹거나 회무침을 해도 향긋한 오이맛이 좋고 튀김요리를 하면 별미 중의 별미지예."

지난 14일(토) 오후 5시. 여행작가 김정수(35) 선생과 함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장소에 갔다가 찾은 빙어요리전문점 '합천호관광농원'(경남 합천군 대병면 성리 산51-5). 합천호 수문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 주인 김옥란(48)씨는 "저희 집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팀이 식사를 하고 간 곳"이라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는다.

김씨는 "저희 집은 빙어(겨울)와 은어(여름) 조리뿐만 아니라 메기매운탕, 황토쇠고기, 한방오리, 촌닭백숙, 솔잎수제비를 비롯한 양식까지 다 있다"라며, "1만8천 평의 대지 위에 찜질방과 민박집, 연회장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손님 500여 명이 몰려와도 즐겁게 식사하면서 MT나 야유회를 맘껏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독특한 지붕과 독특한 모양의 건물을 눈여겨 바라보다가 깔끔한 실내로 들어서자 한 쪽 벽에 첨성대를 닮은 황토난로가 바알간 장작불을 입에 물고 타닥타닥 타고 있다. 저만치 합천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에는 연인인 듯한 남녀가 은빛으로 파닥거리는 빙어 한 마리를 손에 쥔 채 화알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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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는 칼슘과 비티민이 풍부하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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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무침에 있는 빙어가 파닥파닥 튄다 ⓒ 이종찬

빙어 잘못 먹으면 마누라한테 쫓겨난다

차림표에는 '빙어무침, 회, 튀김 3만 원'이라 적혀 있다. 3만 원만 내면 합천호에서 금방 건져 올린 싱싱한 빙어회와 빙어무침, 빙어튀김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옳커니 싶어 주인 김씨에게 빙어조리와 소주 한 병을 갖다달라고 하자 김씨가 빙그시 웃으며 "빙어를 드실 때 옷 조심하이소"라며 귀띔한다.

살아 팔딱거리는 빙어가 초장에 온몸을 묻힌 채 파닥파닥 뛰다가 자칫하면 옷에 시뻘건 초장을 덕지덕지 묻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득 우스개 이야기가 하나 떠오른다. 누군가 초장에 찍은 빙어를 먹다가 실수로 옷에 떨어뜨렸는데, 마누라가 그걸 보고 어떤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왔느냐고 닦달했다는 그 이야기. 후후후.

그렇게 한동안 빙그시 웃으며 합천호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김씨가 다가와 빙어무침과 빙어회, 빙어튀김을 탁자 한가운데 올린다. 이어 김씨가 "빙어무침부터 빨리 드이소, 빙어가 죽고 나면 맛이 떨어져예"하며, 파릇파릇한 상추와 깻잎, 시뻘건 초고추장, 열무김치, 호박나물, 땅콩조림, 어묵볶음 등을 주섬주섬 늘어놓는다.

근데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 시뻘건 초고추장과 함께 뒤섞여 있는 은빛 빙어들이 파닥파닥 튀기 시작한다. 그중 힘센 빙어 몇 마리는 어느새 하얀 종이가 깔린 탁자 위에 툭툭 떨어진다. 초고추장이 묻은 빙어가 떨어진 그 자리. 그래, 그 자리가 흡사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입술을 찍어놓은 것과 참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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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는 상큼한 오이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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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회 ⓒ 이종찬

땡겨울에 맛보는 상큼한 봄나물 같은 맛

"빙어가 제 아무리 맛이 있다 해도 회맛은 초장맛 아닙니까? 이 집 초장을 만드는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이 있습니까?"
"저희 집 초고추장은 사과, 배 등 자연에서 나는 무농약 과일 10여 가지를 주재료로 삼아 장독에서 오래 숙성시켜 만들지예.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이 저희 집 초장맛은 그리 맵지가 않고 새콤달콤한 게 독특한 감칠맛이 난다고 그러지예."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발그스레한 빙어무침 속에서 파다닥거리는 빙어 한 마리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들어 상추 위에 올려 쌈을 싸 입에 넣는다. 살아 파닥거리는 빙어를 통째로 씹으면 비린 맛과 함께 약간 쓴 맛이 나지 않을까. 지레 짐작하며 몇 번 씹자 향긋한 오이맛이 입안 가득 맴돌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다시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물그릇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빙어 한 마리를 손으로 집어 초고추장에 찍는다. 빙어가 마구 파닥거린다. 얼른 입에 넣거나 서둘러 상추나 깻잎에 싸지 않으면 초고추장이 옷에 몽땅 다 튀어버릴 것만 같다. 이크, 싶어 초고추장 묻은 빙어를 상추나 깻잎에 쌀 겨를도 없이 얼른 입에 넣는다.

향긋하고 고소하다. 빙어무침과는 또 다른 맛이 입안 가득 맴돈다. 무슨 맛이랄까. 땡겨울에 맛보는 상큼한 봄나물 같은 맛이랄까. 아니면 밭에서 금방 따낸 싱싱한 오이를 바지에 쓱쓱 문질러 한 입 가득 베어 먹는 그런 맛이랄까.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맛보는 빙어튀김도 바삭바삭한 게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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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거리는 빙어를 상치에 싸서 먹는 맛도 그만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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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회는 손으로 집어먹어야 한다 ⓒ 이종찬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손님들이 아무리 빙어를 내놓으라고 해도 내놓을 수가 없어예. 합천호에 빙어가 있어야 잡을 것 아입니꺼. 그리고 소한과 대한 사이인 요즈음에 잡은 빙어가 가장 빛깔도 예쁘고 맛이 좋습니더. 빙어 이것도 동지 지나서 잡은 빙어와 소한 지나서 잡은 빙어, 입춘 가까이 잡은 빙어가 모두 빛깔이 다르고 맛도 틀리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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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튀김도 바삭거리는 게 뒷맛이 깔끔하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서대구 나들목-화원 톨게이트-고령, 해인사 방향-합천읍-합천호-수문 맞은 편-합천호관광농원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합천행 버스를 타고 합천읍에 내려 군내버스를 타고 합천댐에 내려 수문 맞은 편을 찾으면 된다.

※SBS 'U포터뉴스', '고향아이'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서대구 나들목-화원 톨게이트-고령, 해인사 방향-합천읍-합천호-수문 맞은 편-합천호관광농원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합천행 버스를 타고 합천읍에 내려 군내버스를 타고 합천댐에 내려 수문 맞은 편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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