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야? 황태자야? 황세자야?

라디오 방송 첫 출연에 사고 내다

등록 2006.01.11 20:17수정 2006.01.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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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본 통신원과의 방송 도중 김미화씨와 통신원 두 분 모두 일본의 왕세자를 지칭하면서 왕세자, 황태자, 황세자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던데 술들 마시고 방송했습니까?"(후략)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1월 9일자 방송분에 대한 한 청취자의 게시글이다. 월요일이었던 지난 9일 오후, 나는 일본 도쿄 통신원으로서 이 프로에 음성 출연을 했다.

내가 얘기해야 할 주제는 일본의 마사코비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건 처음인 데다가 내가 얘기해야 할 대사 분량이 제법 많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깐깐하게 내용을 점검했어야 하는데 방심했던 부분이 기어이 말썽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방송 전에 원고를 한번 죽 훑어보던 나는, 좀 헷갈리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원고 내용에 일관되지 못한 호칭이 있던 것. 결국 그것이 화근을 불러오게 되었다.

"아니 왕세자? 황세자? 황태자? 어떤 게 맞는 건가? 이거 한 가지로 통일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만 깜박 최종 확인을 안 하고 넘어간 나는 난생 처음 라디오 방송을 타게 되면서 무척 당황하고 긴장해 있었다.

2차 원고를 보내고 통과된 방송용 원고를 들고 안절부절 초조를 감추지 못하는 내게 담당자는 그냥 대화하듯이 편하게 하라면서 안심을 시켰지만 나는 솔직히 점점 더 바작바작 타들어 오는 입속을 주체 못하고 있었다.


"그냥, 편하게. 아줌마가 아줌마하고 얘기하듯이 그렇게 하시면 돼요~"

아줌마끼리 얘기하듯이 편하게 하라고 한다. 그래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편하게 맛있게 얘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생방송이라고 생각하니 결코 마음이 가벼워지질 않았다.


옆에 있던 남편이 보기가 딱했던지 물을 한 컵 가져다주며 긴장을 풀라고 한다. 똑딱 똑딱 시간이 흐르고 약속된 오후 7시, 드디어 전화가 왔다. 우선 담당자가 긴장을 풀게 하려는지 이것저것 말을 시켜왔다.

"그러니까 마사코비가 굉장히 똑똑했나봐요~ 뭐 다른 뒷이야기랄까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은 없었나요?"

"네. 시기랄까. 마사코비가 하버드를 최상의 레벨로 졸업한 건 아니라는 둥, 외교관 아버지를 둔 덕에 쉽게 외교관이 된 거라는 둥 보도된 마사코비의 경력을 좀 비하시키는 뒷얘기들이 있긴 하더라구요~"

전화상이지만, 얘기를 하는 와중에도 먼 느낌으로 김미화씨의 방송 멘트가 귀에 들려왔다.

"김미화씨 목소리 들리시죠? 연결해 드리고 김미화씨가 질문하시면 그대로 나가시면 됩니다."

"네 알았습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바로 김미화씨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아주 가깝게 들렸다. 방송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각 방송사에서 그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이슈를 연중기획이라고 하는데요, 올해 MBC는 '여성의 힘, 희망 한국'이라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여성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더라구요.

지난주부터 저희 방송에서도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여성 얘기를 듣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멋진 여성들을 많이 만났어요.

세상을 바꾸는 여성, 오늘은 역설적으로… 유능한 외교관에서 황실의 며느리가 된 후, 대중 앞에서 사라진 일본의 마사코 황태자비(왕세자비...편집자 주)에 대한 얘기라구요.

일본 도쿄 임미옥 통신원입니다.

안녕하세요~ 마사코 황세자비(왕세자비...편집자 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여성 중의 하나였다구요? "


바턴을 받아 넘기듯 나도 떨리는 속내를 숨기고 웃는 얼굴로 답변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네, 그래요. 마사코비는 1963년생이고요,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베리올 컬리지에 유학한 재원입니다.

93년 결혼 당시 마사코비 이름은 오와다 마사코(小和田 雅子)이구요. 외무사무차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영어, 불어, 독일어 3개 국어가 능통했구요. 상당히 선이 굵은 이지적인 미모의 소유자였지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미화씨의 프로 방송인다운 또박또박한 질문 멘트가 돌아오고 거기에 대해 내가 또 대답을 하는, 10분 정도로 예정되었던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3, 4부 타임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잡음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문을 꼭 닫아건 안방 침대 위에서 방송이 끝나고 수화기를 내려놓자 나는 그만 침대 위로 벌러덩 뒤로 누웠다.

"야호~ 드디어 끝났다~ 어휴 진땀났네. 아흐~"

안도의 한숨을 돌리기가 무섭게 다시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수고하셨어요~ 너무 잘 하셨어요."

잘해서 잘했다는 건지, 수고를 치하하느라 하는 말인지 감이 안 잡혀 나는 그저 얼떨떨해 할 뿐이었다.

그렇게 방송이 나간 다음 날, 다시 듣기를 통해 내 목소리를 확인하려던 나는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고 그만 파랗게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앞에서 인용했듯 방심하고 넘어간 호칭의 뒤죽박죽 멘트에 대한 매서운 지적 글이었다. 아이고, 이렇게 민망할 데가… 온통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아줌마 눈높이의 쉽게 풀어 얘기하는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누가 그랬더냐.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청취자 여러분의 날카로운 지적은 결코 아줌마의 시사 수준이라고 그냥 넘어가주지 않는다는 것!

이래서 생방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깨개갱~.

덧붙이는 글 | http://www.imbc.com/broad/radio/fm/worldnus/aod/index.html
위 주소로 가시면 회원가 입후 다시 듣기를 통해 예의 방송(1월 9일자 3, 4부)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http://www.imbc.com/broad/radio/fm/worldnus/aod/index.html
위 주소로 가시면 회원가 입후 다시 듣기를 통해 예의 방송(1월 9일자 3, 4부)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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