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야스쿠니 참배 반대론 중대한 약점"

[중-일, 패권경쟁 달아오른다 11] 도쿄 대학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 주장

등록 2006.01.12 14:08수정 2006.01.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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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양국 정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 논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A급 전범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에서 일본 총리가 직접 참배하는 것은 전쟁 피해국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로 요약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 언론 역시 "신사 안에 A급 전범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런데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총합문화연구과)는 국내에서 발표한 한 논문을 통해, 이 같은 한·중 양국의 접근법에 중대한 약점이 숨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의 접근법은 잘못하면 총리뿐만 아니라 국왕(소위 '천황')의 야스쿠니 참배까지 합리화시켜 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4년 12월에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가 발행한 <인문과학> 제86집에 실린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야스쿠니와 식민지주의"라는 논문에서 관련 부분을 발췌·요약하여 소개하면서 여기에 해설을 덧붙이기로 한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 哲哉)

1956년 일본 후쿠시마현 출생.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철학 전공.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 연구자. 최근에는 ▲역사 수정주의 ▲ 역사 인식 논쟁 ▲ 전후 책임론 등의 대표적 논객 중 한 명으로 활약 중. 2005년 저작 < 야스쿠니 문제>는 2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책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킴.

NPO '젠야(http://www.zenya.org/)'의 공동 대표로 잡지 <젠야(前夜)>를 창간.

[주요 저서]

<국가와 희생>(2005년)
<야스쿠니 문제>(2005년)
<교육과 국가>(2004년)
<반•철학인문>(2004년)
<증언의 정치>(2004년)
<’마음’과 전쟁>(2003년)
<역사/수정주의>(2001년)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2001년)
<전쟁책임론>(1999년)
참고로, A급 전범과 관련하여 '분사'나 '합사'라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 분사(分祀)라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의 위패를 분리(分)하여 다른 곳에서 제사(祀)를 지내는 것'을 말하고, 합사(合祀)라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에 일반 전사자와 A급 전범의 위패를 합(合)해 놓은 상황에서 제사(祀)를 지내는 현재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에 A급 전범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 총리가 그곳에서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한·중 양국의 접근법에 대해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점을 지적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아래 내용에 필자의 해설을 덧붙였음을 밝혀 둔다.

첫째, A급 전범의 분사는 실현되기가 매우 곤란하다. 야스쿠니신사 측과 A급 전범의 유족들이 분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행 일본 헌법에서 정교분리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분사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일본의 전쟁 책임을 희석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주변국들이 'A급 전범'에 공격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책임을 그 14명의 A급 전범에게만 전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A급 전범을 일종의 속죄양(scapegoat)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쇼와 국왕과 일본 군인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의 전쟁 책임을 덮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A급 전범 분사론이 속죄양의 논리에 역이용될 수 있다는 점과 관련하여, 다카하시 교수는 노나카 히로무 전 내각관방장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소개했다.

"누군가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A급 전범 제위께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부탁드리고 그분들을 분사한다."(1999년 8월)


위와 같은 다카하시 교수의 주장을 들어 보면, A급 전범에 대해서만 공격의 초점을 맞추는 한·중 양국의 접근법은 자칫 일본 국왕·국민·군인·야스쿠니신사의 전쟁 책임을 '사면'해 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어느 날 갑자기 A급 전범들을 분사해 버리면,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의 전쟁 책임과 무관한 곳으로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경고다.

셋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이전 기사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에서 참배하는 것은 비단 A급 전범 때문만이 아니라 군국주의 전쟁 당시 전사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일본 군국주의를 고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변국들은 야스쿠니신사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14명밖에 안 되는 A급 전범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정말로 A급 전범의 위패를 다른 곳에 안치해 버린다면, 주변국들로서는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더 이상 비판할 명분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정부는 아무런 견제 없이 야스쿠니신사에서의 의식을 통해 자국민들을 군국주의로 재무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 군국주의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넷째, 일본 국왕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 만약 위 세 번째의 경우처럼 일본 총리가 국제적 견제 없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수 있게 되면, 일본 국왕 역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신사를 참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다카하시 교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총리의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바로 국왕의 신사 참배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인들은 국왕의 신사 참배를 '고신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일본 국왕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실현된다면, 이는 일본 군국주의의 인적 상징(국왕)과 물적 상징(야스쿠니신사)이 결합하는 이미지를 띠게 된다. 이는 일본인들이 국왕을 중심으로 군국주의적 재무장을 할 수 있는 사회심리적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A급 전범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안 된다"는 한·중 양국의 공격 논리 속에는 오히려 일본정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합리화시키는 자충수가 숨어 있다. 물론 지금 당장 A급 전범의 분사가 실현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지만, 만약 정말로 A급 전범의 분사가 실현되어 버리면 오히려 일본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 문제의 초점을 A급 전범에 맞추는 것이 위험하다면,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한·중 양국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제12회 기사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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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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