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4월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금동입상서산시청
신라말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인 보원사. 보원사는 2000여 명이 넘는 승려들의 독경소리가 골짜기에 가득했고 이들의 조석공양을 위한 쌀 씻은 물이 뿌옇게 흘러 내려갔을 정도로 융성했던 절이다.
크고 작은 가람(중이 살면서 불도를 닦는 집)이 많아 비가 와도 맞지 않고 각 전각을 다닐 수 있었다는 큰 절집. 백제계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5층 석탑, 1968년 출토된 금동여래입상 등을 볼 때 백제시대에 세워진 사찰로 추정될 뿐 정확한 창건연대도 알려지지 않았고 언제 왜 무너졌는지도 알 길 없는 수수께끼의 보원사.
보원사는 11세기 이후 갑자기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큰 불로 소실됐다고도 하고 갑자기 내린 큰 비로 무너져 내렸다고도 하나 모두 추측일 뿐이다.
이제 이 수수께끼가 풀릴 것 같다. 서산시가 문화재청의 '유물발굴 허가'를 받아 오는 3월부터 오는 2017년까지 보원사지 일대 3만1123평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이기로 했으며 본격 발굴에 앞서 국립 부여 문화재연구소가 3월초부터 200일 동안 금당터를 중심으로 한 3000여 평에 대한 학술조사를 한다.
발굴조사단은 발굴기간 중 출토되는 유물은 임시 전시장을 마련 전시토록 했다. 보원사지에서는 백제 6세기 중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높이 90㎝·국립 부여박물관 소장)이 1968년 4월 출토됐고 후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철조여래좌상(높이150㎝ 무릎너비 118㎝ 두께86㎝·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1918년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