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알려주는 신비스러운 샘, 성내천

화순 남산 십정(十井)을 가다 - 두번째

등록 2006.01.12 18:57수정 2006.01.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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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긷고 빨래하는 아낙들로 항상 북적거렸던 마을 공동 우물. 동네마다 어김없이 있었던 우물이 사라진 지 오래다. 집집마다 수돗물이 보급되면서 우물은 자취를 감췄다. 불과 2~3십년 전만 해도 우물은 마을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는 우물마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화순읍내에 유명한 우물이 많이 있지만 특히 남산 주변에 있는 샘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필자는 춘곡(春谷) 강동원(姜東元) 선생을 인터뷰, 남산 주변에 있는 10개의 샘의 위치를 확인한 뒤 선생의 진술을 토대로 주변 사람 등을 심층 취재했다. 이 글은 두 번째 글이다.



a 성안 마을에 있는 성내천 내부. 기상정보를 주는 신비한 샘으로 전해진다.

성안 마을에 있는 성내천 내부. 기상정보를 주는 신비한 샘으로 전해진다. ⓒ 최연종

화순읍 남산 십정(十井) 중 세 번째 샘은 화순읍 삼천리 성안 마을에 있는 성내천(城內泉)이다. 성안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이 샘은 최근 고려시대 토성으로 밝혀진 남산 바로 아래에 있어 토성과의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남산 시굴조사 결과 성안 마을 입구에 성문에 해당하는 문지(門址)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샘이다.

현재 5일장 주변에 조성된 조립식 주차장 주변이 성문으로 추정되는데 성내천은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우물은 건물지와 더불어 성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은 남산 토성의 안쪽에 있어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마을 공동우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a 화순읍 삼천리 성안마을의 성내천 외부모습. 멀리 화순군민회관이 보인다.

화순읍 삼천리 성안마을의 성내천 외부모습. 멀리 화순군민회관이 보인다. ⓒ 최연종

특히 우물 가까이 민가나 건물이 들어서는 예가 많아 우물 주변에서 유물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옛날에는 지금의 신터미널과 화순군보건소까지 남산이 뻗어 있어 있었는데 주변이 개발되면서 남산 줄기가 잘려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성내천을 보며 날씨를 예측했다고 한다.

"성내천은 비가 오려고 하면 샘 바닥에 있는 황토가 가라 앉아 물 밑까지 맑아집니다. 비가 많이 온 뒤에는 물 색깔이 붉어지지만 물맛은 변함이 없었지요."


성안마을에서 유일하게 5대째 살고 있다는 토박이 박종기(78)씨는 "샘 바닥 황토가 가라앉으면 반드시 비가 왔다"며 "성내천은 철분성분이 많아 물이 무거운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성내천은 주전자 가득 담아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은 데다 물을 마시고 병치레 한 번 없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명천(名泉)인 성내천도 물맛이 변한 적이 있다.


"1941년 성내천 물맛이 변했는데 남산 주변 10정 중 3군데 샘에서 물을 떠 부으니 물맛이 살았습니다."

a 화순읍 삼천리 4구 해대(海臺)에 있는 동네샘 동천(洞泉).

화순읍 삼천리 4구 해대(海臺)에 있는 동네샘 동천(洞泉). ⓒ 최연종

박씨는 초등학교 때 어른들과 함께 물을 직접 성내천에 떠다 부은 뒤부터 물맛이 살았다고 했다. 당시 어른들에 따르면 '물이 죽었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성내천의 원래 자리는 지금의 도로 쪽이다. 70년대에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세 번에 걸친 공사 끝에 지금의 자리를 잡았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이었으나 수돗물이 보급된 뒤로 우물의 명맥이 끊겼다.

우물 주변에 규목과 서나무 등 20그루의 아름드리나무가 있어 나무사이로 그네를 띄웠다고 전한다. 지금은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한 그루밖에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4번째 샘은 동네샘 동천(洞泉)이다.

화순읍 삼천리 4구 구 남화순역(화순고 뒤쪽)~화순역 방향에 있는 동천은 염기가 있어 물맛이 간간하다. 이 곳을 해대(海臺)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아 과거 이곳에 영산강을 타고 바닷물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a 남산 10정 위치도. 화순읍 남산 주변 300보 이내에 열개의 우물이 있었다.

남산 10정 위치도. 화순읍 남산 주변 300보 이내에 열개의 우물이 있었다. ⓒ 최연종

동천(洞泉)도 원래 위치는 바로 위쪽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철도를 내기 위해 달구지로 자재를 싣고 다니면서 샘 원래 위치에서 밑으로 10여m 옮겼습니다. 주민들이 공사를 못하게 시위를 하니까 옮겨 준 것입니다."

샘 주변에서 태어나 70년째 살고 있는 서순식(삼천리 4구 3반)씨는 당시 여섯 살 때 주민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을 생생히 기억해 냈다. 일본사람들이 샘이 철로공사에 방해가 된다며 없애려고 하자 동네 주민들이 나서서 온 몸으로 막아 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됐다는 것이다. 온 동네 주민들이 떠다가 먹은 바가지 샘으로 지금도 물을 떠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있다. 지금은 동네 주민들이 허드렛물로 쓰고 있다.

a 10정 가운데 유일하게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우물 매화천. 건너편에 남산이 보인다.

10정 가운데 유일하게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우물 매화천. 건너편에 남산이 보인다. ⓒ 최연종

십정(十井) 중 5번 째 샘은 '매화천'이다. 화순읍 삼천리 4구 화순고 바로 뒤 철로변에 있는 '매화천'(매화동)은 황성출(68)씨가 20년 전부터 지하수로 사용하고 있다.

10정 가운데 유일하게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우물이다. 황성출씨는 "옛날에는 동네사람이 다 길어다 먹었다"며 "우물가에 빨래터가 있어 빨래를 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정겨웠다"고 말한다. 물을 권하는 황씨는 아직도 식수로 이용하고 있을 만큼 물맛이 괜찮다고 했다.

a 조정현씨가 광덕리 덕촌에 있는 샘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조정현씨가 광덕리 덕촌에 있는 샘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 최연종

6번째 샘은 덕촌에 있는 이름 없는 샘으로 지금은 샘 자리에 집이 들어서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다. 매화천과는 50여m 거리에 있는데 십정원두(十井源頭) 비문을 쓴 조갑환 선생의 고택과 광덕 덕촌노인회가 바로 옆에 있다. 우물 바로 옆집에 사는 조정현(62, 광덕리 3구 덕촌)씨는 "두레박으로 길어다 먹은 샘으로 오래 전에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변해도 우물 맛은 변치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물이 사라지면서 세상이 변했다. 우물가에서 얘기꽃을 피우는 여유가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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