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200만원이면 귀족처럼 산다?

은퇴 후 동남아 이민, 그 허와 실

등록 2006.01.13 12:28수정 2006.01.1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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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퇴 이후에 삶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필리핀에서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다는 기사들이 신문과 방송까지 연이어 등장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보도는 "200만원이면 귀족 부럽지 않게 산다"거나 "200만원으로 귀족처럼 사는 법" 등 현란한 수사로 치장되어 있어 자칫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기만할 수 있어 주의가 요청되고 있다. 누구 누구가 그렇게 살고 있다더라 라는 식의 기사는 자칫 정확한 정보보다는 선정적인 문구로 사실을 왜곡해 본의아닌 이민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골프친다고? 골프 레슨비도 만만치 않아

최근 몇몇 보도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필리핀의 고원도시인 바기오시의 이민자 생활에 대한 허와 실을 짚어 보자. 바기오는 1900년 초 필리핀을 점령했던 미군들이 서늘한 기후 때문에 휴양부대를 건설하면서 계획된 아시아 최초의 계획도시이다. 미국 워싱턴 D.C.를 설계했던 도시공학자 대니얼 번햄의 도시 설계를 바탕으로 당초 2만5천 명이 거주할 도시로 건설되어 한때 필리핀 내 '작은 미국'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후 꾸준한 인구 증가를 거쳐 2005년 현재 인구가 6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초기 한인선교사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바기오에 정착하면서 교민들의 수도 꾸준히 증가해 바기오 한인회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약 5천여 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이 유학과 영어연수를 위해 온 학생들이라는 것이 바기오 한인사회의 특징이다. 현재 바기오시는 한국 태백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을 정도로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이 두텁다.

그러나 일부 보도내용과 바기오 현실이 다른 내용들도 있어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특히 200만 원으로 귀족처럼 산다는 것은 실제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삶을 귀족처럼 사는 것인지 그 기준도 애매모호하지만 운전사가 있고 집안일을 돌보는 가사도우미(메이드 또는 헬퍼)가 있다고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지 먼저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특히 필리핀 사회는 우리나라와 달리 메이드 문화가 발달해서 웬만한 필리핀 사람집에도 가사도우미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필리핀 노동법에 따라 도시마다 책정된 최저 생계비를 지급하게 된다면 가사도우미는 한달에 최소 8만 원 이상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지 특성상 그 이하로도 얼마든지 가사도우미를 구할 수 있지만 만약 가사도우미가 주인과 불미스런 일이 생겨 노동부에 고소하게 된다면 한국사람은 노동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 두어야 한다.

또한 '귀족' 같은 삶을 누리기 위해 배워야 하는 골프 레슨비도 만만치 않고 승마 같은 경우도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공부를 해야 하는 부양가족이 있다면 200만 원으로 귀족같이 사는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과연 40만 원으로 호화별장 빌릴 수 있을까?

부양자녀가 없는 은퇴 후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바기오는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지만 건강을 위해선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님도 명심해야 한다. 바기오는 평균해발 1500m에 이르는 고원 도시로 평균기압이 평지보다 상당히 낮기 때문에 심장이 약한 분들에겐 적당한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

또한 12월과 1월에는 밤낮의 일교차가 15도 이상 나기 때문에 몸이 약한 분들에겐 환절기 건강에 적신호가 올 수도 있고 지역적 여건상 우기인 5월 말부터 11월까지 거의 매일 비가 오고 오후에는 구름이 바기오 지역을 덮는 날씨를 보여 습도가 아주 높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건강 문제를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이민을 결정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일부 보도에서 인용한 것처럼 40만 원으로 3층짜리 호화별장을 빌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바기오의 부동산 비용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 바기오 외곽이 아니면 '3층짜리 호화별장'을 40만원으로 임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보도내용을 믿고 이민을 결정하게 된다면 크게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언어 문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영어 단어 50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밖의 얘기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택시를 타는 문제는 가능하겠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예를 들면 전기나 수도 문제로 관공서의 해당부서에 문의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때, 또는 사고가 생겨 해결해야 하는 상황, 각종 문서를 처리해야 할 때는 중학 영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물론 주변에 있는 다른 한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해결할 수는 있지만 주변사람들이 언제나 도와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민 결정은 현지 방문에서 시작해야

바기오는 필리핀 루손섬 북부의 교육 거점도시이다. 국립필리핀대학교(UP), 필리핀 통합사관학교(PMA), 세인트 루이스 대학교 등의 명문대학 등 7개의 종합대학이 있고, 인터내셔널 학교 등 교육기반이 매우 잘 정비되어 있어 최근 한국유학생의 숫자도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저렴한 교육비로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장기체류하거나 거주 비자를 얻는 것은 충분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필리핀에 이민을 꿈꾸고 있다면 보도 내용만 믿지 말고 직접 현지를 방문해 직접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 임금, 연중 기후, 의료제도, 교육제도, 비자 문제 등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전문가들의 조언을 거쳐 이민을 결정해야 후회없는 이민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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