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딸"에서 "반박 떼 달라"까지

'앙숙'에서 '투톱' 된 박근혜·이재오의 갈등사

등록 2006.01.13 12:35수정 2006.01.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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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12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새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의원을 선출했다. 새로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재오 의원이 박근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나라당은 12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새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의원을 선출했다. 새로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재오 의원이 박근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재오 신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96년 1월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에 입당하기 전까지는 대표적인 '운동권' 인사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1964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반대운동(6·3사태)으로 시작해서 지속적인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시절 4차례 구속됐고,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박 정권이 무너졌다.(유신이후 노태우 정권때까지 합치면 모두 5번) 이 원내대표에게 박 전 대통령은 타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화해'를 시도했지만 이 원내대표는 박 대표에 대해 강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004년 3월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 대표를 향해 "어느 날 갑자기 탤런트처럼 등장한 '독재자의 딸'이 당 대표가 되면 개인은 영광이겠지만 한나라당은 망한다"며 "박근혜가 대표가 되면 탈당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오의 공격 "박 대표는 유신체제의 한 복판에 있던 사람"

2004년 8월 29일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이재오 의원이 "유신시절 박근혜 대표를 비판하다 감옥에 갔다 왔다"며 과거사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강조했다.
2004년 8월 29일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이재오 의원이 "유신시절 박근혜 대표를 비판하다 감옥에 갔다 왔다"며 과거사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강조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당내에 유신논란이 불거지자, "박 대표는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단순한 독재자의 딸로서가 아니라 청와대 2인자로서, 실질적으로 정치에 관여했느냐 안 했느냐를 떠나 유신 체제의 중심에 있었고 긴급조치로 사람들을 마구 잡아갈 때 청와대 권력의 핵심이었다"고 더욱 강도를 높였다. "유신이 현대사를 얼마나 후퇴시켰는지, 그 당시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고통을 주었는지, 유신체제의 한 가운데에 서 있던 사람으로서 겸허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도 했다.

더불어 "5.16 쿠데타·유신독재 등의 부분은 결국 한나라당이 상속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며 "박 대표가 들어서면서 자연적으로 (한나라당은) 유신당, 쿠데타를 이어받은 당, 과거회귀당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박 대표를 연속 공격했다.


이 원내대표는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서도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박 대표 개인의 노력이 아닌, 유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재산은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의 위치를 한나라당내 비주류로 설정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한나라당을 선택해서 들어왔을 때에는 한나라당의 그런 역사를 다 알고 들어온 것 아니냐"며 "알고 선택을 한 것이지 않나, 그것을 모르고 선택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박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의 공방은 2004년 8월 말 구례 연찬회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 원내대표는 "공 때문에 과를 덮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군 중위 전력과 유신독재를 들어 "항일의 임시정부와 4·19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박 대표를 압박했다.

또, 박 대표가 유신독재 시절 5년동안 '퍼스트레이디'를 맡은 사실을 들어 책임있는 사과를 촉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방어하기 급급한 것이 한나라의 정체성이냐"며 "국가와 국민 앞에 자유민주 시장경제의 이름으로, 보수의 이름으로 보수의 이름을 더럽힌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의 직격탄 "내가 대표되면 탈당한다더니..."

2004년 8월 구례 연찬회에서 박 대표는 이재오 의원을 겨냥해 "'박근혜가 대표되면 탈당한다' 더니 안 했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지고 남을 비판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2004년 8월 구례 연찬회에서 박 대표는 이재오 의원을 겨냥해 "'박근혜가 대표되면 탈당한다' 더니 안 했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지고 남을 비판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이 의원을 직접 겨냥해 "저를 혹독히 비판하는 한 분은 '박근혜가 대표되면 탈당한다' 더니 안 했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지고 남을 비판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재철 의원이 "대표님, 수위조절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였다. 박 대표는 계속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역사에 죄가 많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박근혜가) 같은 핵심에 있었고 대통령의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총선때)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안 되는 것이고, 도와준다고 했다고 해도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이라며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치사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이 원내대표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등 4대입법 정국을 거치면서 박 대표가 지나치게 보수·우경화됐다며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지난해 1월 한일협정 문건이 공개되면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을 때 박 대표는 "역사는 역사가가 평가해야 한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6·3동지회 회장인 이 원내대표는 "당시 한일협정은 역사학자가 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 한 것"이라며 "역사적인 평가를 넘어가며 과오를 덮으려 한다면 꼼수로 밖에 보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어 행정도시특별법 국회 통과 때도 수도분할 반대투쟁을 주도하면서 박 대표와 맞섰다.

여기에 이 원내대표가 '이명박 서울시장후보' 선거대책 본부장과 이명박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친 이명박계 인사라는 점이 겹쳐지면서 당내 반박근혜 진영의 핵심으로 인식됐다.

이재오의 화해 시도 "박 대표 헌신적으로 당을 위해 노력"

그러던 이 의원은 2005년 11월 박 대표와의 공개적인 화해를 시도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강에서 박근혜 대표와 나>라는 글을 올려 "나는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인간적으로 어느 누구도 미워한 적이 없다"고 전제하고, "박 대표도 자연인으로서 미워해 본 적 없고, 인간적으로 싫어해 본 적도 없다"면서 "박 대표가 헌신적으로 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공식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이 원내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지난(2005년) 8월에 박 대표랑 두시간 정도 같이 식사 하면서 다 풀었다"고 전했다. 그는 박 대표에게 "박근혜가 대표되면 탈당하겠다"는 발언은 와전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한 기자가 "박근혜가 대표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해서 "과거 유신시대때 고통 당했던 사람들은 반대할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찬성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답했는데 앞 뒤 다 잘라서 그렇게 보도됐다는 것이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그는 반박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경보수로 분류되는 이방호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내세운 것도 그런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투표 직전에 모든 것을 박 대표와 상의해서 할 것이며, 박 대표 임기가 끝나는 7월에 원내대표를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다.

박 대표와의 갈등 우려를 잠재우려는 시도였고, 상당한 성과를 냈다. 원내대표로 당선된 직후에는 "'비주류 강경파', '반박의 대표', 이런 딱지를 오늘로 떼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같은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결과는 이후 당내 대선경쟁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명박 시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박 대표 독주체제에 대한 의원들의 피로감이 확인됐고, 친이명박쪽의 대표적인 인물로 확고히 인식돼 있는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12월 1일 서울의 한식당에서 열린 이명박 서울시장등 단체장과 서울 국회의원 및 지역위원장들과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의원이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2월 1일 서울의 한식당에서 열린 이명박 서울시장등 단체장과 서울 국회의원 및 지역위원장들과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의원이 악수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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