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와요"

5년 전 저에게 보낸 남편의 편지가 딸아이를 울렸습니다

등록 2006.01.19 13:49수정 2006.01.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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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벌을 받으면서 우는 사진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 저녁 저는 아이들에게 낮에 있었던 일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딸아이에게 그런 일련의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저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정말 딸아이가 동생과의 사이에서, 그동안 엄마 아빠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서운해 했던 것은 아닌지 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디지털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을 보면서,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정말 아빠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하고 크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이과 함께 사진을 보면서 한바탕 소리를 내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가 걱정했던 것처럼 딸아이는 그동안 벌어졌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아빠가 너희들을 얼마나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 또 우리 가족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엄마에게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가기보다는 엄마의 이름인 한명라로 살아가길 바란다는 편지를 보냈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두 아이들은 "정말이에요? 그럼 그 편지가 지금도 있어요? 어디 한번 증거를 보여 주세요"하고 정신없이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옷장 서랍 어딘가에 잘 보관되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랍장 이곳저곳을 뒤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5년 전 남편이 저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편지는 2000년 7월, 남편이 봉투에 넣어 저에게 우편으로 보낸 편지가 아니었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안방 침대 위에 소리 없이 놓고 간 편지였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뒤 침대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그 편지를 발견하고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그 편지를 아이들은 서로 먼저 읽겠다고 난리였습니다.

결국 참을성이 부족하고 성격이 조급하기 이를 데 없는 아들아이가 먼저 두 장의 편지를 대충 읽고 누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편지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딸아이가 슬그머니 눈물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딸아이를 보며 저는 "지금 은빈이 우는 거니?"하고 당황하여 물었습니다. "아니에요 엄마, 저 우는 게 아니에요"하면서도 연신 눈물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왜? 편지의 어느 부분이 우리 은빈이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하고 묻자, 딸아이는 "그냥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와요"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딸아이에게서 남편의 편지를 건네받아 읽어 보았지만, 딸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할 구절은 없는 듯했습니다. 다만 5년 전 남편이 저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이 지금도 변함없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a "한명라씨 보시오"라고 시작되는 남편의 편지

"한명라씨 보시오"라고 시작되는 남편의 편지 ⓒ 한명라

다음날 오후 저는 딸아이와 단 둘이 있을 때, 딸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은빈아~ 너 어제 왜 울었는데? 아빠의 편지 어느 부분이 우리 은빈이를 울렸을까?"

"있잖아요, 아빠가 승완이랑 저의 미래를 위해서 많은 애를 쓴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해결 능력을 갖지 못한 부모가 될까봐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하고 대답을 합니다.

딸아이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마음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아무런 생각 없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지 않고, 그 편지 속에 담긴 아빠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딸아이가 대견스러웠습니다.

평소 저는 딸아이가 눈으로 보이는 육체적인 키만 엄마보다 클 뿐, 정신적으로는 언제 철이 들려는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어느새 아빠의 깊은 마음조차 헤아릴 줄 아는, 정신적인 키까지 엄마의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딸아이를 울린 문제의 편지

한명라씨 보시오.

남자의 유형을 보면 집착성의 정도에 따라 대처하면 현명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펜을 들었소.

첫째 아내에 집착하는 사람
둘째 자식에게 집착하는 사람, 부모에게 집착하는 사람, 자신에게 집착하는 사람

각자의 장 ·단점이 있지만은 본인의 성향은 어떠할지요?

무릇 남성이라는 사람을 제쳐놓고, 본인의 스타일은 종족본능이랄까? 미래에 승완이나 은빈이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고자 무릇 애를 많이 쓰는 사람이라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모에 대한 정 또한 많다 하겠지요. 몸이 좋지 않을 때, 돈이 필요할 때, 세밀한 분석력을 가지고 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부모가 될까봐 신경을 많이 쓴다오.

최근 들어 삶이 무엇인지 문득 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소.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건강한 정신은 상대방의 실수를 웃음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하는 힘의 근원이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희생한 만큼의 대가를 가져야 된다고 보오. 재력·건강·가족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의 자신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허물은 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성과 같은 자신이 있을 때, 가족·건강·돈 모든 것이 자기 품에 안긴다는 점이오.

그렇게 되기 위해 쉽게 동요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에 무관심해 보이는 점이 나에게 가끔씩은 존재한다오.

단적으로 말해서 옆에서 누가 죽었다고 소리쳐도 표정에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 때가 나에게는 존재하고 있음을 나 또한 알고 있다오.

현재의 나의 관심은 오직 월드전자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우리 가족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쉼터의 구실을 했으면 하오.

나의 가족이 소중한 만큼 나에게는 부모가 소중하다오. 부모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 인간 홍00의 본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오.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성공한 자식의 표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나를 지탱하는 하나의 큰 힘이 된다오.

그 힘이 은빈, 승완, 아내 모든 사람에게 연결되는 근원적인 사랑의 힘일 것이오.

사소한 감정대립은 정신력 소모전이요. 만병의 근원이 되는 것임도 나는 알고 있소. 쉽게 접근하지 않고, 사람을 대할 때 쉽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음은 완고함이 될지 몰라도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은빈, 승완이 잘 키워 줘서 고맙고, 부모에 대한 지성 공양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바이오.

좀 더 자기 자신에 투자를 해서 홍00의 아내, 은빈, 승완이의 엄마가 아닌 커다란 성처럼 한명라 자신의 존재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길 바라오.

다음에 편지 합시다.

덧붙이는 글 | 10년 전 두 아이들의 벌 받는 사진 한장이 우리 가족들간의 따뜻한 사랑을 재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10년 전 두 아이들의 벌 받는 사진 한장이 우리 가족들간의 따뜻한 사랑을 재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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